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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아현지사 화재는 무엇을 말하나

2000년대 중반 이후 KT는 장비 집중과 부동산 개발에 매달렸다. 통신장비를 한곳에 몰고 투자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매각했다. 케이블 매니저 업무 외주화로 통신망 관리는 부실해졌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2018년 12월 08일 토요일 제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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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고층빌딩이 들어선 충정로 사거리에서 골목으로 빠지는 길목에 자리 잡은 6층짜리 건물이다. 겉보기에 왜소한 이 건물 하나에 인터넷 회선 21만 개와 무선통신 기지국 2800개가 연결돼 있다.

11월24일 오전 11시께,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났다. 서울시 서대문구·마포구·용산구 일대와 은평구·중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부에서 KT 통신망이 마비돼 주말 동안 통신 대란이 벌어졌다. KT에 가입된 무선전화, 유선전화, 초고속 인터넷, IPTV 서비스가 두절됐고, KT 회선으로 카드 결제를 하는 상점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경찰에서도 KT 유선망을 사용하고 있어서 서울 용산·마포·서대문·남대문 경찰서와 관할구역 파출소에 112 신고 시스템이 차질을 빚었다. 119 연결이 지연되는 사이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통신장애를 겪은 지역은 서울시 면적 6분의 1에 해당한다. 2010년 이후 KT는 용산구 원효지사를 비롯해 인근에 있는 지사 4곳에서 나눠 관할하던 통신망과 통신설비를 아현지사로 몰아넣었다. ‘장비 집중화’라 부를 수 있는 이 과정은 KT의 사업전략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통신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이동통신 업체들은 비통신 영역으로 진출할 방법을 고심한다. KT가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개발이었다.
ⓒ시사IN 이명익
11월26일 오전 KT 아현지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관계기관의 합동감식이 벌어지고 있다.

공기업인 한국통신으로 출발한 KT는 각 지역의 노른자위 땅에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유선전화가 보급되던 1960 ~1970년대는 통신장비가 비쌌다. 장비당 회선을 짧게, 많이 연결하기 위해 시내 중심부에 한국통신 전화국을 세웠다. KT가 전국에 보유한 전화국 부지는 440여 개다. 이후 통신장비 성능이 개선되고 장비가 소형화되면서 필요 공간이 대폭 축소됐다. 이에 따라 KT는 통신장비를 한곳으로 집중하고 투자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매각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개발에 나선다. 서울 강남의 영동전화국과 동대문의 을지지사 자리에 고급 호텔이 들어섰다. 영등포 전화국은 오피스텔로 개발됐다.

ⓒ시사IN 이명익
KT 화재 피해자들이 11월28일 보상 및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전설비나 비상시설은 ‘장비 집중화’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를 키웠다. 소방법에 따르면 통신사업용 지하 통신구가 500m 이상인 경우 스프링클러 설치를 규정하고 있지만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는 500m 미만이었다.

아현지사는 왜 ‘D등급’으로 남았나


KT 아현지사에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통신을 우회할 수 있는 백업 시스템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통신시설을 A·B·C·D 등급으로 나누는데 아현지사는 중요도가 가장 낮다고 할 수 있는 D등급이다. A·B·C 등급은 과기부가 전수 점검을 하지만 D등급은 사업자가 자체 점검하게 돼 있으며, 백업 시설을 둘 의무도 없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까지 포함해 서울 시내 중요통신시설 114개 중 90개, 전국 915개 시설 가운데 835개가 D등급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화재가 KT에서 났지만 다른 통신사도 사정이 비슷하다. 오히려 장비 집중화 정도는 후발주자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심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신시설 등급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른 방송통신재난관리 기본계획의 ‘중요통신시설 지정기준’에 따른다. 재난 발생 시 피해 범위를 기준으로 A등급은 서울 전역과 수도권·영남권·호남권 등 ‘권역 규모’, B등급은 광역시·도 규모, C등급은 시·군·구 3개 이상 규모에 해당한다. 중요통신시설에 대한 등급 분류는 각 통신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시행해 과기부에 신고하게 되어 있다.

정부 관리·감독 체계의 허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피해 규모로 보면 KT 아현지사는 C등급에 해당하지만 D등급으로 남아 있었다. A등급에 속하는 지사는 모니터링 직원이 24시간 상주해야 하는 등, 등급이 올라갈수록 통신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 통신사 처지에서는 등급 상향을 꺼리게 된다. 아현지사로 다른 지사의 통신장비가 합쳐진 이후 등급 평가를 다시 했는지 묻자 KT 홍보실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등급 평가는) 정부에 주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주기를 공개하기는 어렵다. 통신구와 관련된 정보는 보안이 굉장히 까다롭다.”

인력 감축도 사고 원인의 한 축으로 꼽힌다. 2002년 민영화를 계기로 KT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KT 연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한국통신 정규직 직원 수는 5만6600명이었으나 민영화 한 해 뒤인 2003년에는 3만7650명, 지난해에는 2만3420명으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직군이 통신망 신설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케이블 매니저(CM) 직군이다. 케이블 매니저 직군 신입 공채는 1997년이 마지막이었다. 해당 업무는 외주화돼 대부분 협력업체 직원들이 맡고 있다. KT 아현지사 케이블 복구 작업에 투입된 인원도 협력업체 소속으로 알려졌다. 이해관 KT 새노조 대변인은 이번 사고를 “예고된 인재”라고 말했다. “한국통신 시절부터 같이 일한 동료들과 ‘이렇게는 오래 못 간다’는 얘기를 했다. 기초가 무너지는 게 보였다. ‘장비 집중화’라는 이름으로 설비를 한곳으로 모으면서 정작 사고가 나면 대피할 수 있는 뒷문(백업 시설)은 만들지 않았다. 동시에 케이블 매니저 업무는 모두 외주화하면서 정작 통신업체의 기본인 통신망 유지·관리는 부실해졌다.”
ⓒ시사IN 이명익
11월26일 KT 협력업체 직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화재 현장에서 통신시설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사고 이후 통신을,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공공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11월28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KT 불통사태 관련 통신공공성 확대 및 피해보상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본부장을 맡은 조형수 변호사는 “통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큰 재난이 오는 것을 확인했다. 통신사들이 이익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통신 재난으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과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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