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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피플’ 들고 온 허클베리핀

허클베리핀의 신보 <오로라 피플>을 복류하는 정서는 슬픔이다. 이소영은 허클베리핀 역사상 가장 깊고 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제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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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매서웠다. 일찌감치 해는 떨어졌고, 거센 바람이 온몸을 때리듯 지나갔다. 확실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제주 김녕의 해변이었고,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이 바다였다. 춥고 어두워서 바다와 하늘을 구분할 수 없었다. 일을 마치고 온 그의 손에는 회 한 접시가 들려 있었다. 맛있는 회와 그가 즐겨 듣던 음악을 안주 삼아 새벽까지 소주를 들이켰다.

내가 아는 한, 허클베리핀의 이기용은 천생 예술가형 인간이다. 그는 그 누구와도 다른 자기만의 민감한 촉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을 온몸으로 받아낸 뒤에야 무언가를 창조하는 타입의 작곡가다. 1998년의 1집 <18일의 수요일>부터 갓 발매된 신보 <오로라 피플>까지를 아우르는 정서 하나가 있다면 이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칠리뮤직코리아 제공
허클베리핀이 7년 만에 정규 앨범 <오로라 피플>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난 시간 이기용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영역인 까닭이다. 다만, 이기용 같은 예술가는 자신의 경험을 어느 순간 뽑아 올려 우리에게 삶의 어떤 진실을 이야기해준다. <오로라 피플>에서 허클베리핀은 모든 드라마가 끝난 뒤에야 찾아오는 진짜 슬픔을 노래하고, 연주한다.

<오로라 피플>을 복류(伏流)하는 정서는 슬픔이다. 드넓은 사운드의 공간감이 돋보이는 첫 곡 ‘항해’는 물론이요, 팝적인 선율을 담고 있는 모던 록 ‘Darpe’에서조차 슬픔은 어김없이 침투해 있다. “이슬 어린 노래로 안녕을 말해도/ 내 속에 너는 남아 있어…. 넌 나의 버려진 폐허에서/ 다시 넌 살아난다”라는 가사를 보라.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슬픔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삶에 틈입한다. 쉽게 견딜 비법도 없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슬픔,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슬픔을 토로하라. 그러지 않으면 슬픔에 겨운 가슴은 미어져 찢어지고 말 테니.” <맥베스>의 대사다. <오로라 피플>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언제나 붙어 있지

“그땐 정말 지옥과 연옥을 왔다 갔다 했죠.” 이기용의 고백이다. 2015년 어느 날 이기용은 보컬리스트 이소영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고 한다. “소영아, 난 음악을 안 하면 안 되겠어. 네 목소리 아니면 안 되겠어. 네가 나의 모든 노래를 불렀잖아. 네가 불러야겠어.”

과연 그렇다. 음반의 절정이라 할 ‘오로라’와 ‘오로라 피플’에서 이소영은 허클베리핀 역사상 가장 깊고 진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슬픔이 서려 있는 이 곡들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가 조지 맥도널드가 쓴 것처럼 ‘아름다움과 슬픔은 언제나 붙어 있는 것’이라면 <오로라 피플>의 수록곡들은 그에 대한 예시로 모자람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도 아니면 오스카 와일드의 저 유명한 다음 격언은 어떤가. “슬픔이 있는 곳에 성지(聖地)가 있다.”

2015년 싱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를 설명하면서 나는 이렇게 적었던 바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체험이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함에 맨몸으로 노출되었던 자가 써 내려간 육필 수기. 이 곡이 먼저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6집은 허클베리핀 역사상 가장 깊이 있는 앨범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바로 그 6집이 <오로라 피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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