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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림가기에는 홍콩 서민의 음식이 있다

홍대 앞 림가기는 홍콩 서민의 음식을 내놓는다. 맛에 예민한 한국인 남편과 중국인 아내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이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2월 05일 수요일 제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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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인이 아니에요.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거예요.” 짐작대로였다. 취재의 다리를 놓아준 지인도, 식당 살림 전반을 책임지는 중국인 아내 방휘(方輝·팡후이) 사장도 조이준 주방장이 얼마나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지 누누이 강조했다. 음식점이 잠시 쉬는 오후 3시 조이준 주방장은 부직포 위생모와 합성수지 앞치마를 두른 채 나타났다. 멋 부린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의 몸에서 습기와 열기가 묻어났다. 온종일 탕면의 탕국을 돌보기 때문이다.

첫 만남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모든 대답은 무뚝뚝하고 짧았다. 사진 촬영도 한사코 마다했다. 그나마 아내 사진 찍는 것을 막지 않은 게 최선의 배려였다. 그 덕분에 오기가 생겼다. 홍콩 음식에 남다른 내공을 보이는 기술자가 내뱉은 ‘그냥 먹고살려고’에 깃든 속내를 파고들고 싶었다.

한국인 남편(주방장)과 중국인 아내(사장)가 꾸려가는 ‘림가기 (琳嘉記)’는 서울 홍대 앞에 있다. 분주하고 시끄럽기 이를 데 없는 큰길이 아니라 조붓한 뒷골목이다. 이 뒷골목에서 림가기는 ‘홍콩 뒷골목 요리’를 판다. 홍콩식 전병인 ‘창펀(腸粉)’, 홍콩식 쌀국수, 홍콩식 오리구이를 낸다. 이 단출한 차림에 이끌려 한국인은 물론 중국 관광객과 유학생,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매일 만석이다. 주방 입구에는 태극기, 오성홍기, 홍콩 깃발이 나란히 걸려 있다.

ⓒ시사IN 신선영
림가기의 단출한 메뉴.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콩식 창펀, 닭고기 쌀국수, 오리 쌀국수, 오리구이.

“홍콩식 창펀(전병)은 집에서 하긴 좀 어려워요.” 이 집을 대표하는 음식인 창펀을 가지고 서로 말문을 열었다. 너무 무르지도 너무 찐득하지도 않은 림가기 창펀의 반죽은 찜기에서 순간적으로 익히는 게 비결이다. 쌀로 만드는 분식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귀한 사례다. 단골인 초콜릿 가게 카카오봄 고영주 제과사는 림가기 창펀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선 보들보들한 식감. 그리고 창펀을 소스에 푹 적시는 순간 이루는 맛의 조화가 기가 막혀요. 독창적인 맛의 세상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음식이랄까요?”

조이준 주방장에게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홍콩에서는 그저 매일 먹는 아침밥이죠. 날마다 먹고 싶어야 제대로 된 창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불린 쌀을 맷돌에 갈아 받은 전분으로 만든 음식이에요. 쌀 전분으로 죽 같은 반죽을 만들어서 그걸 찜통의 김으로 부치는 거예요. 기름에 지지는 게 아니라.”

그런데 이 반죽은 딱 하루밖에 쓸 수가 없다. 하루 안에 삭아버린다. 그래서 쓸 만큼만 만들어 하루 안에 다 쓴다. 너무 흐물거려도, 너무 쫄깃해도 안 된다. 너무 두껍거나 얇아도 불합격이다. “비법은 없어요. 매일 쌀 전분을 받아서, 개서, 그때그때 후다닥이죠.”

쌀국수에 대한 설명도 간단했다. “우리 집 탕국의 바탕은 오리고기와 돼지 뼈예요. 매일 푹 고면 돼요.” 뽀얀 국물은 쌀국수 사리와 어울려 특유의 물성과 질감을 이룬다. 면발은 탱글탱글하고, 표면이 매끄럽고, 쌀의 단맛도 끝에 남고, 바로 끊어지지 않으면서 씹을 때 마지막으로 한 번은 잇새를 튕기는 특유의 촉감이 있어야 한다. “사실 저나 아내가 바라는 홍콩식 쌀국수를 말자면 제면을 해야죠. 그런데 공간도 인력도 안 돼요. 할 수 있는 데서, 조건에 맞춰서 할 수밖에 없어요. 이제 더 할 말이 없는데···.”

한·중 부부가 홍콩 식당을 연 진짜 이유

조이준 주방장이 버릇처럼 ‘더 할 말이 없어요’를 되풀이할 때마다 아내인 방휘 사장이 속뜻을 풀어준다. 그런데 아주 유창한 한국어는 아니다. “12년 전에 결혼했어요. 남편은 서울 사람, 저는 중국 하얼빈 사람이에요.” 그랬다. 부부 가운데 누구도 홍콩 출신이 아니었다. 조 주방장은 원래 한식 요리를 했고, 방 사장은 집안 어른이 큰 중식당을 운영했다. 한식에 관심이 많던 친척을 돕느라, 조선어를 할 줄 아는 방 사장이 통역 노릇을 하다 조 주방장을 만났다.

둘은 부부가 된 뒤에 여행 삼아 1년 반이나 중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분위기에서는 둔황, 풍경에서는 쑤저우에 반했다. 그러다 음식에서, 부부는 홍콩에 반했다. 아예 식당을 차리면 어떨까 싶을 정도였다. “아마 우리가 홍콩 사람보다 더 홍콩을 좋아할걸요? 말없이 부지런한 남편이 주방에 있고, 아내인 내가 홍콩 맛과 중국 분위기를 지키면 괜찮은 식당이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홍콩’이라는 지역을 택한 사연은 따로 있었다. 세 번째 만남에서 부부가 아차 싶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중국 사람이 한식당에서 일하면 깔보잖아요. 중국 사람이 한국에서 ‘한국식 중국집’을 열면 또 깔봐요. 홍콩 식당을 열면 안 그럴 것 같더라고요. 좀 이색적이니까, 잘하네 못하네 소리도 안 나올 거고. 사실 마음고생 하기 싫어서 홍콩 요리를 택한 거예요.”
ⓒ시사IN 신선영
중국 하얼빈 출신 방휘 사장은 한국인 남편과 함께 식당 살림 전반을 책임진다.

림가기의 닭고기 쌀국수(焗鷄米粉)를 처음 맛보는 손님은 다들 놀란다. 잘게 찢은 고기가 국수 위에 고명으로 올라가 있는 게 아니라, 다리 하나가 통째로 올라가 있다. 이게 원래 홍콩식이다. 닭고기든 오리고기든 뼈째로 올려서 발라 먹는 재미를 즐긴다. 뼈와 살코기 사이에 밴 양념을 쪽쪽 빨아먹는 맛을 즐기는 것이다. 뼈째로 나오면 고기 향도 더 짙어진다. 그런데 한국 손님들은 이렇게 뼈째 붙은 고기를 불편해한다.

조 주방장은 “우리 어렸을 때는 다 잘 발라 먹었잖아요”라며 안타까워한다. 과연 그랬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순살만 즐겨 먹는다. 그러다 뼈를 발라 먹는 재미 혹은 좋은 육향과 나쁜 누린내를 구분하는 감각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말 홍콩식으로 하자면 닭이든 오리든 돼지든 내장을 써야 해요. 내장이 내는 좋은 가금류의 향, 고기의 향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선 내장 쓰면 냄새 난다, 누린내 난다고 싫어하지요.”

림가기의 또 다른 대표 메뉴는 오리구이다.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손질한 오리를 숙성고에 넣고 서서히 수분을 날린다. 이후 몸통에 양념을 발라 다시 숙성시킨다. 오리 껍질과 살 사이에는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래야 껍질을 바삭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리고기를 내놓을 때 몸통에 바른 소스를 한 종지, 홍콩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실 소스를 한 종지 같이 드려요. 뼈와 뼈 사이, 뼈와 살 사이에 농축된 소스와 기름의 맛도 음미해보세요. 소스는 그냥 짜기만 한 게 아니라 숙성되면서 밴 깊은 맛이 있어요.”

오리구이는 주문을 받아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한 마리를 통째 손질하기 때문에, 숙성에 시간이 많이 든다. 화덕에 구워서 오리 기름기가 가장 먹기 좋은 상태로 좍 돌게 하기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북경 오리(베이징덕)는 예쁘게 저민 고기를 예쁘게 썬 파와 전병에 싸서 먹는 고급 요리라고 생각하죠. 우리 집 오리구이는 홍콩 서민들이 편안하게 뼈째 뜯어 먹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숙성하고 껍질과 살 사이에 바람을 불어넣어 만다는 정성은 똑같아요.”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방휘 사장이 좀 더 솔직해졌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해서 좋다고 했다. 다만 뭘 먹을 때는 조금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자리가 언제 나느냐고 너무 보채지 말고, 이 낯선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물어도 보고 말이다. 아주 유창한 한국어는 아니지만, 방휘 사장은 손님에게 그런 설명을 일일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냥 ‘먹고살려고’ 한다는 음식점에서 우리는 요리의 기본과 자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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