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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매체는?

가장 혁신적인 디지털 미디어 중 하나인 <래플러>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노골적인 언론 탄압을 받고 있다. 존립 위기에도 불구하고 뉴스룸에는 활기가 넘쳤다.

마닐라/글 임지영 기자·사진 윤무영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2월 04일 화요일 제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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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러(Rappler)

설립
:2012년 1월
규모:80여 명(멀티미디어 리포터, 멀티미디어 프로듀서, 소셜 미디어 프로듀서, 디자이너, 데이터 리서처 등)
출판 방식:웹사이트(rappler.com) 및 페이스북(구독자 377만여 명), 트위터(팔로어 304만여 명), 인스타그램(팔로어 30만8000여 명)
운영 방식:설립자 마리아 레사를 비롯한 기자들이 래플러 지주회사(Rappler holdings)의 지분 34.42%를 소유. 최대 주주(Dolphin Fire Group)가 31.2% 소유. 창업 초기 편집과 경영권의 독립을 보장하는 협정에 주주들이 서명. 수익은 기업 광고, 네이티브 광고, 해외 정부나 단체의 보조금(자연재해 플랫폼 아고스 제작 지원 받음), 후원금 등
수상:미국국제언론인센터(ICFJ)의 국제 저널리즘 훈장, 세계신문협회(WAN)의 ‘자유황금펜’ 상, ‘처벌받지 않음 시리즈(Impunity Series)’로 인권언론상(Human Rights Press Awards) 영어 멀티미디어 부문 대상 등


ⓒ시사IN 윤무영
<래플러>는 짧은 시간에 필리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매체로 자리 잡았다. 영화 <스타트랙>의 우주선 내부 모양을 본뜬 형태의 원형 책상을 중심으로 <래플러> 기자 및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지난 10월30일, 사이판을 강타해 큰 피해를 준 태풍 ‘위투’가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 상륙했다. 수도인 마닐라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텔레비전에선 시속 213㎞로 진입하는 위투의 위력에 대한 뉴스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왔다. 필리핀 최대 민영방송사 ABS -CBN이 연일 태풍의 진로를 예측했다. 필리핀에 올해 들어 열여덟 번째 태풍이었다. 한 달 전에도 태풍 망쿳으로 100여 명이 숨졌다.

같은 시각, 필리핀의 온라인 미디어 <래플러(Rappler)> 역시 여느 언론사와 비슷하게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는 기사를 홈페이지 상단에 배치했다. 태풍 관련 뉴스마다 딸려 있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당신 지역의 날씨는 어떻습니까? 아고스(Agos)를 통해 상황을 보고하거나 @rapplerdotcom으로 문의해주십시오.’ 아고스라는 단어를 클릭하자 새로운 창이 뜨며 필리핀 지도가 등장했다. 지도 곳곳에 ‘긴급’ 표시가 떠 있었다. 태풍이 상륙한 북부 록사스 지역을 확대하니 누군가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떴다. “구조선, 구호물자, 식수가 필요합니다. 강이 가까워 집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 옆에는 연락처가 남겨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필리핀 북부 캘링가 지역에선 물에 잠긴 초등학교 사진이 올라오는 등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이용자들이 <래플러>의 트위터 계정으로 소식을 알리면 지도에 위치와 상태가 업데이트되었다. 태풍의 진로나 피해 정도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뉴스와 현장의 소식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재난 보도였다.

ⓒ시사IN 윤무영
<래플러> 뉴스룸 곳곳에는 유리벽으로 된 회의실이 있다. 유리벽에는 취재 구상이나 아이디어를 메모한 흔적이 남아 있다.
<래플러> 법인 등록이 취소된 까닭

<래플러>는 필리핀 언론의 최전선이다. 동남아시아 언론을 대표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정부로부터 노골적인 언론 탄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현재 가장 혁신적인 디지털 미디어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렇다.

필리핀의 언론 환경은 아시아 그 어느 지역보다 극단적이다. 1986년 이후 살해당한 저널리스트만 160여 명이다. 2009년 11월에는 필리핀 마긴다나오 주에서 선거를 취재하던 기자 32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2018 언론자유지수에서 필리핀은 지난해보다 6단계 하락한 133위를 기록했다. 전체 180개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필리핀 기자협회(NUJP)에 따르면 ‘필리핀판 도널드 트럼프’라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2016년 5월 이후 지금까지 저널리스트 12명이 살해당했다. 그동안 두테르테 대통령은 언론을 상대로 악의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해왔다. 2016년 5월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살해된 저널리스트 대부분은 무언가를 했으며 뭔가 잘못하지 않으면 살해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들이 부패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의미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GMA 뉴스의 여성 앵커에게 성희롱하듯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이런 말도 했다. “당신이 개××라면 저널리스트라는 이유로 죽음을 면제받지 않는다.” 이후에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최대 일간지인 <인콰이어러>와 ABS-CBN 방송국 기자를 향해 “창녀의 자식(sons of whores)”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교황이나 미국 대통령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막말은 언론사에도 예외가 아니었고, 이는 현 정부의 언론관을 보여준다.

ⓒ시사IN 윤무영
<래플러> 설립자 중 한 명인 채이 호필레나 탐사보도 책임자
<래플러>가 두테르테 정권 아래에서 언론 탄압의 상징이 된 건 지난 1월이다.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래플러>의 법인 등록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외국인의 국내 언론 소유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필리핀 헌법은 외국인의 언론사 운영을 금지한다. 외국계 회사에 채권을 매각했던 사실을 문제 삼았다. <래플러>는 재무적 투자에 불과하다며 반발했다. 외국인이 경영이나 편집에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래플러>의 법인 등록 취소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소속 기자들은 대통령궁 출입도 금지당했다. 1980년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집권 시기 이후 처음이었다. 그 같은 조치의 배경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래플러>는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전부터 그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매체 중 하나다.  

마닐라의 대표적 상업지구인 패시그 시티에 위치한 <래플러> 편집국을 찾은 날, 뉴스룸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웃음과 박수 소리 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존립 위기를 맞은 언론사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활기가 느껴졌다. <래플러> 뉴스룸의 상징인 원형 책상이 눈에 띄었다. 설립자인 마리아 레사 편집국장이 좋아하는 영화 <스타트랙>의 우주선 내부 모양을 본뜬 형태다. 그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핵 소사이어티(hack society)’ 행사였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그룹별로 아이디어 경연을 벌이는 자리다. 핵 소사이어티는 유엔계발계획(UNDP)의 지원을 받는 연례행사로 빈곤, 기후변화, 미디어와 민주주의 등을 주제로 다룬다. 외부 전문가와 <래플러> 구성원들이 심사위원이다. 뉴스룸을 방문한 시각, 한 팀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발표하고 있었다. 질문이 쏟아졌다. <래플러>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스테이시 드 지저스는 “오늘만 그런 건 아니다. 뉴스룸에서 워낙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우리끼리도 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평소에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래플러>는 필리핀에서 최초로 순수하게 온라인을 기반으로 설립된 매체다. 2011년 페이스북 페이지로 시작해 2012년 1월 홈페이지를 열었다. 시작은 CEO 겸 편집국장인 마리아 레사의 아이디어였다. CNN 동남아시아 지국장 출신인 그는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의 베스 프론도소와 함께 종전과 다른 방식의 매체를 모색했다. ‘시민 참여 시대에 텔레비전이 어떻게 변할까?’ ‘저널리즘은 어떻게 변할까?’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을까?’ 주간지와 방송국 등에 몸담았던 동료 두 명도 합류해 고민을 나눴다. 설립을 함께 구상한 네 사람은 모두 언론사 경력이 있는 여성이다.

ⓒ시사IN 윤무영
스테이시 드 지저스 <래플러>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마리아 레사는 지인이던 은행 임원, 인터넷 기업가 등을 만나 초기 투자 자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시사 주간지 <뉴스 브레이크>와 함께 온라인 기반의 매체를 만들기로 방향을 정했다. 필리핀은 지난해 기준 SNS 접속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17분, 세계 1위에 이를 정도로 인터넷 이용률이 높은 나라다. 미디어 회사 ‘돌핀 파이어’와 온라인 사업을 지원하는 ‘해치드’도 투자에 합류했다. 창업 초기 주주들은 기자들에게 편집권과 경영권을 보장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현재 기자들이 회사 지분의 34.42%를 소유하고 있다. 최대 주주도 32%를 넘지 않는다. 매체의 독립성을 고심한 끝에 마리아 레사가 CEO와 편집국장을 겸했다. 

<래플러>는 스스로를 ‘소셜 뉴스 네트워크’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데 영감을 주며, 사회적 변화를 위해 행동하도록 한다.’ 2015년에는 유엔에 기반을 둔 세계 정상회의 어워드(WSA)가 선정한 ‘최고의 디지털 혁신’ 40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성공적인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고 짧은 시간에 필리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온라인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 기사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나요?’


두테르테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 시작한 건 2016년, 그가 대선에 출마하면서다. 2016년 대선은 그동안의 선거와 전혀 달랐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스테이시 드 지저스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교묘하게 이용한 선거였다. 두테르테 캠프가 SNS에서 영향력 있는 유명 인사를 스카우트해 갔다. 모카 우손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섹시 댄서로 유명한 그를 비롯해 팔로어가 많은 유명 인사들이 두테르테 편에서 사실관계가 다른 뉴스나 정보를 퍼다 날랐다”라고 말했다. <래플러>는 얼마 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정치적 무기가 되었는지 살펴본 ‘프로파간다 시리즈(Propaganda Series)’를 내보냈다. 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가짜 뉴스의 흐름을 분석한 뒤 페이스북 계정 26개가 300만명이 넘는 이용자에게 가짜 뉴스를 전파한 사실도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 본사에 해당 계정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가짜 뉴스 중에는 ‘<래플러>가 미국 CIA의 소유’라는 내용도 있었다. 2017년 <래플러>는 전 세계 56개국 팩트체커 225명이 가입한 국제팩트체킹연대(IFCN: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의 회원이 되었다.

또 하나 주목받았던 보도는 두테르테의 ‘마약전쟁’을 비판한 ‘처벌 없음 시리즈(Impunity Series)’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직후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경찰은 곳곳에서 마약중독자를 즉결 처형했다. 지난 9월 경찰은 마약중독자 5000여 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인권 단체는 1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래플러>는 마약중독자의 죽음을 상세히 다뤘다. 6개월 이상 추적한 결과 경찰이 갱단에게 살인을 외주화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하고 실제 살인 청부업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마약중독자를 죽이기 위해 돈을 받고 고용된 업자들이 있고 경찰과 그들 사이 커넥션이 있다는 증언까지 들었다. 경찰은 이전까지 그런 사실을 부인해왔다.
ⓒAP Photo
2017년 8월18일 경찰이 마닐라 시내에서 마약 관련 혐의로 사살된 용의자의 시신 주변을 조사하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이 보도를 진영 논리로 ‘해석’했다. <래플러>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탐사보도 분야 책임자인 채이 호필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두테르테와 그의 지지자들은 우리가 그를 싫어해 무작정 비판한다고 한다. 어느 날 소셜 미디어에 마약중독자에게 죽임을 당한 모녀의 참혹한 사진이 올라왔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우리에게 너흰 왜 이런 거에 대해서는 안 쓰느냐고 비난했다. 출처를 따지다 보니 브라질에서 온, 가짜 사진이었다. 우린 진실을 보도할 뿐이다. 두테르테 대통령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래플러>의 강점은 탐사보도에만 있지 않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스테이시 드 지저스는 그들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축약했다. ‘뉴스, 테크놀로지, 커뮤니티’다. 그는 <래플러>가 미디어 회사이자 테크놀로지 회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필리핀에서 온라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매체라는 의미다. “선전물이나 가짜 뉴스가 돌아다닐 때 우리는 온라인 세계를 잘 알기 때문에 정확한 출처를 조사하고 데이터를 바로잡을 수 있다.” 최근에는 데이터를 시각화해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를 위해 데이터 저널리즘을 다루는 리서치 팀을 따로 두었다.

또 다른 특징은 뉴스 생산 과정에 독자들의 참여를 이끈다는 점이다. <래플러>는 ‘아랍의 봄’ 당시 소셜 미디어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데 주목했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면 기사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노력 끝에 아고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아고스는 시민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가 자연재해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돕는 플랫폼이다. 재해가 잦은 필리핀 사회에 적합한 서비스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또 다른 아이디어 중 하나가 감정 측정기(mood meter)이다. <래플러>의 모든 기사에는 ‘이 기사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나요?(How does this story make you feel?)’라는 감정 측정기가 달려 있다. 기사를 읽고 난 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행복, 슬픔, 화남, 상관 안 함, 짜증 남, 즐거움, 두려움, 영감을 얻음 등 8가지 기분이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선택도 알 수 있다. 많이 선택한 ‘감정’일수록 크게 표시된다. <래플러>의 스테이시 드 지저스는 “기사에 대한 압도적인 생각이나 기분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어떤 기분인지 알면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전쟁을 다룬 기사에는 ‘화남’의 반응이 선명했다.

기사 생산 과정은 기존 매체와 비슷하지만 좀 더 간결하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 기자와 온라인에 밝은 젊은 기자, 둘의 파트너십이 핵심이다. 대학, NGO, 정부기관, 시민단체 등 이른바 커뮤니티 그룹의 도움도 중요하다. 가령 젠더 이슈의 경우, 두테르테 대통령이 여성 비하 발언을 할 때 시민단체가 <래플러>에 그의 발언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짚어준다.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다루기 어려운 지역 뉴스를 해당 주민에게 직접 받기도 한다. <래플러>의 시민참여형 모델을 설명할 때 한국의 <오마이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 12명으로 시작한 <래플러>는 6년 만에 80여 명 규모로 늘어났다. 처음엔 직원 1인당 책상 하나를 썼지만 협업이 수월하도록 큰 책상으로 바꾸었다. 기자들은 기사, 사진, 영상, 편집 등 1인이 멀티플레이를 한다. 취재진이 <래플러>를 방문한 날도 기자들 몇 명이 영상 편집과 동시에 기사 작성을 하고 있었다. 뉴스룸 곳곳에 유리벽으로 된 회의실이 있었다. 취재 구상이나 아이디어를 메모한 흔적이 그대로 보였다.   




대통령 관련 행사 취재 금지당했지만…

정부의 언론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광고 수익이 줄었다. 스스로의 강점인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네이티브 광고를 제작하는 것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각종 플랫폼도 제작한다. 아고스는 자연재해에 관심이 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등에서 기금을 지원받았다. ‘핵 소사이어티’ 같은 행사도 지원금을 받는 통로다. 후원금도 받는다.

<래플러>는 현재 법인 등록 취소에 불복해 제소한 뒤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궁 출입만 금지당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를 취재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다.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아직 두테르테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다. <래플러> 설립자 중 한 명인 채이 호필레나는 “법치는 창밖으로 버려졌다. 지금껏 경험했듯 그들은 기회를 잡으면 정당한 절차 없이 우리를 문 닫게 할 것이다. 하지만 쉽게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원칙과 상식을 따르면 된다. 우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언론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위기를 돌파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우려대로 위기는 금세 왔다. 11월11일 필리핀 검찰은 <래플러>를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스룸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그날 행사의 수상자가 정해지고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문득 <래플러>의 의미가 떠올랐다. ‘토론하기(rap)+파도 만들기(ripple).’ ‘언론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시아에서 <래플러>가 전에 없던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미 거스르기 어려운 거대한 물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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