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성의 시대〉천정환 지음푸른역사 펴냄

“경계 허문 총체적 지식이 새로운 부와 권력 낳는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지식포럼’의 화두였다. 세계적 석학과 정부 및 비정부기구 대표, 기업 대표를 비롯해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비 275만원씩 내고 ‘세계 최고의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인 이 ‘지식 축제’에 참여했다고.

저자는 지식과 지식경제, 그리고 지식의 문화사와 근대적 지식 주체의 문제를 종횡하기 위한 서두에서 먼저 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 따져본다. ‘지식은 돈이다’라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 발상과 사고, 그리고 그 실행이 ‘앎의 문제’에 대한 사회사적 관심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발상을 뒤집으면, 돈이 안 되면 지식도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지식이 언제나 돈이 되고 권력이 되었던 건 아니다. 학자의 대명사인 괴테의 파우스트만 하더라도 무대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이런 한탄을 늘어놓지 않았나.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똑똑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요컨대 파우스트가 보기에 지식은 쓸모가 없으며 헛되고 헛되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파우스트는 시대를 잘못 만났을 따름이겠다. 이 대단한 ‘석학’은 철학가(철학자가 아니다!)에다 변호사에다 의사, 게다가 목사까지 겸업할 수 있을 테니 대번에 부와 권력을 쥐고 세계지식포럼의 초빙 강연자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지식의 가치는 역사적으로 변화해왔으며 또 지식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값이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문화사로서의 지식사’는 이러한 지식 가치의 변동 과정을 다루면서 동시에 지식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선 지식 주체의 문제, 곧 ‘누구의 지식인가’를 문제 삼는다. 천재적인 개인과 권력의 시혜를 통해 이루어진 ‘지성사’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소유한 지식과 그 앎-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지성사’다.

이 새로운 지성사가 드러내주는 바에 따르면 ‘대중지성’은 인터넷 시대의 전유물도 그 부산물도 아니다. 1900년대의 민간학교와 1920년대의 독서회와 야학, 그리고 1970년대 노동야학과 1980년대 대학가의 ‘학회’ ‘세미나’의 전통을 저자는 ‘자율적인 앎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자 했던 대중지성의 역사라고 새롭게 자리매김한다. 이 땅의 대중은 “책을 불태우고, ‘표현’을 금지하며, 문체를 억압하고, 시키는 대로만 글을 쓰게 했던” 봉건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군부독재에 맞서 끊임없이 대중지성의 공간을 확보해왔다. 부와 권력을 낳는 지식만이 아닌 소통과 연대를 위한 지식도 있다는 걸 책은 웅변한다.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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