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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댄스화를 신고 한 시간이나 춤을 추다니

댄스화를 제대로 갖추니 아주 편했다. 회전할 때 좋았고 뒤꿈치도 안정감이 있었다. 4개월쯤 지나 댄스복 바지와 상의까지 모두 갖춰 입었다. 드디어 댄스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제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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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새로 배울 때 사람들은 장비 구입을 고심한다. 춤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댄스스포츠를 한다 하니 사람들은 대뜸 “그럼 반짝이 옷 입고 춤춰?”라고 묻는다.

장비 고민은 대개 두 가지이다. 첫째는 돈 부담, 둘째는 뭘 얼마나 사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다. 나는 일단 장비 없이 시작해보고 신중하게 구입하는 알뜰족이다.

처음에는 그냥 편한 옷에 편한 신발로 시작했다. 금방 포기할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옷과 신발을 사는 건 무모한 일 아닌가. 편한 옷에 바닥이 얇은 운동화를 골라서 신고 갔다. 발뒤꿈치를 드는 동작이 편하려면 신발의 윗부분은 물론 밑창까지 부드럽게 휘어져야 하니까. 딱딱한 구두나 바닥이 두꺼운 운동화는 금물이다. 그 정도는 안다.

흔히 청바지가 춤추기에도 편한 옷이라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뻑뻑한 청바지는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기에 결코 편한 옷이 아니다. 춤추다 보면 다리에도 땀이 나는데 그때부터 신축성 없는 청바지는 엄청 불편한 족쇄다. 마찬가지 이유로 꽤 신축성 있다 싶은 쫄바지도 막상 입고 춤을 춰보니 다리가 편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또 자신이 뚱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헐렁한 통바지를 입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아니올시다’이다. 자신의 다리 움직임을 선생님이 눈으로 보아야 가르칠 수가 있다. 다리 움직임이 드러나는 슬림 디자인의 옷이어야 한다.

한 달쯤 지나자 슈즈를 사고 싶어졌다. 흔히 ‘댄스화’라 부르는 댄스스포츠 전용 구두다. 일반 구두보다 부드러워서 꺾임이 좋고 발이 편하지만, 발레의 티칭화처럼 덧신 수준의 신발은 아니다. 발뒤꿈치 부위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끈으로 발목을 꽉 잡아줘야 다치지 않는다. 모양도 고전적으로 얌전하다. 그래서 운동화처럼 펑퍼짐하고 편하진 않지만 구두치고는 아주 편한 편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닥인데, 일반적인 고무 밑창이 아닌 가죽 스웨이드를 붙인다. 고무 밑창은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요철이 있다. 보행에는 좋지만 춤에서 자주 나오는 회전을 하려면 바닥의 저항이 심하다. 흔히 섀미 가죽이라고도 부르는 가죽 스웨이드는 적절히 미끄러워 회전하기 좋다. 하지만 물과 오염에 약하므로 외출용으로는 신을 수 없다.

댄스스포츠 여자 선수들의 슈즈를 보면 어떻게 저런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출까 싶을 정도로 굽이 높다. 발목을 꽉 묶으니 그런 동작이 가능하긴 하지만, 초심자는 쉽지 않다. 나는 평소에도 2~3㎝의 납작 굽만 신는 사람이니 하이힐은 언감생심이다. 3~4㎝의 낮은 굽을 선택했다. 라틴댄스용은 샌들처럼 앞과 옆이 개방돼 있고, 모던댄스용은 일반 정장 구두 스타일이다. 앞은 막히고 옆은 개방된 라틴·모던 겸용 슈즈도 있고, 구두끈을 매는 남성 슈즈 스타일로 여자 사이즈가 나오기도 한다. 가격은 7만원대가 가장 흔하고, 장인들이 모여 있는 수제화 거리에 가면 4만~5만원에도 맞출 수 있다. 낡은 건물의 위태로운 층계를 올라 2층 작은 가게, 오로지 댄스화만 직접 만들어 파는 곳에 가면 그 정도 가격으로 가죽 맞춤구두를 살 수 있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최근 화제가 된 수제화 장인들의 헐값 공임(工賃)을 보고서 조금 납득이 갔다.

내가 댄스화를 신고 한 시간이나 춤을 추다니

댄스화를 제대로 갖추니 아주 편했다. 특히 회전할 때 좋았고 뒤꿈치도 안정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내가 구두를 신고 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20대에도 3㎝ 이하의 납작한 신발만 신었고, 50대를 넘으면서는 어떤 구두도 불편하다 느낄 정도로 발과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 내가 댄스화를 신고 한 시간이나 춤을 추다니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새 구두를 신을 때마다 고역이었던 발뒤꿈치 통증이 없다. 이건 신세계다! 여자들은 다 알 것이다, 여자 정장 구두가 얼마나 불편한지. 나는 구두를 신을 때마다 발뒤꿈치가 까져서 늘 반창고를 갖고 다녔다. 최근 항공사나 공항 면세점 여직원들의 험악한 발 사진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강수진처럼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도 아닌데, 발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강수진 못지않다. 휴식 없이 딱딱한 바닥에 서서 일하느라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이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여자 구두도 한몫한다. 구두를 많이 신는 여자들의 발뒤꿈치는 모두 거듭되는 상처에 두툼한 군살이 잡혀 있고, 좁은 볼 때문에 발가락이 겹치고 무지외반증이 생기며 뼈마디에 옹이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희한하게 댄스화는 처음 신을 때부터 뒤꿈치가 아프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게 의문이다. 왜 다른 구두는 이렇게 만들지 않을까? 볼도 약간 넉넉해서 앞부분이 그렇게 꽉 조이지 않았다. 이후 나는 구두를 모두 바꾸었다. 염천교 가게에 가서 무난한 디자인에 낮은 굽의 댄스화를 맞추고, 바닥에 고무창을 붙여달라고 했다. 일반 외출용으로 주문한 것이다. 운동화보다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장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피 나고 아픈 발뒤꿈치에 신경 쓰는 일에서는 확실히 해방되었다.

댄스화를 구입하고 2개월쯤 지나 댄스복 바지를 샀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보니 댄스 인구가 많긴 많은 모양이다 싶었다. 공연용 의상은 수십만 원의 화려한 옷들이지만 그냥 간단한 디자인의 연습용 바지는 2만원 이하로도 살 수 있다. 까만색 나팔바지 스타일을 골랐다. 댄스복 바지를 입으니 세상 편했다. 일반 바지에 비해 신축성이 엄청나게 강해 다리를 크게 움직여도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진작
사 입을걸 싶었다.

그리고 다시 2개월쯤 지나 드디어 댄스복 상의를 샀다. 상의를 사는 일은 좀 더 망설임이 컸다. 공연용이 아닌 연습복들도 모두 반짝이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입어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디자인이다. 그러나 희한하게 춤을 배운 지 5~6개월쯤 되자 그런 옷을 입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름이 되니 반팔의 편안한 티셔츠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댄스복 바지를 입어보니 상의까지 갖추어야 더 편하게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까만색 셔츠를 골랐다.

와! 엄청 편했다. 신축성은 물론이거니와 몸을 크게 움직여도 옷이 들뜨지 않았다. 팔을 높이 올려도 밑단이 기어 올라가 허리가 드러나는 불상사가 없다. 춤출 때 신경 쓰이지 않도록 만든 옷인 셈이다. 게다가 안쪽은 망사를 덧붙여 땀이 흘러도 척척 달라붙지 않았다. 몸에 적절히 밀착되어 파트너 손에 옷이 걸릴 일도 없었다(가오리 같은 소매의 옷은 자칫 파트너에게 방해될 수 있다). 왜 댄스복을 갖춰 입나 싶었는데 입어보니 이해가 됐다. 그래서 결국 나는, 6개월 만에 모든 장비를 갖추게 됐다. 다 합쳐도 10만원 정도이지만 이제는 장비 때문이라도 금방 그만둘 수 없다.

댄스복 상의까지 모두 갖춰 입고 나타난 날,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드디어 댄스의 세계에 들어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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