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땠는지는 또렷이 기억난다. 처음 들은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확실히 좀 이상했다. 영화 속 음반 제작자 레이 포스터(마이크 마이어스)가 이 노래를 처음 듣고 하던 푸념이, 그때 내 머릿속에도 똑같이 맴돌았다. 랩소디? 그게 뭐야? 스카라무슈? 갈릴레오? 이게 다 뭔 소리야?
하지만 레이 포스터가 끝내 용납하지 못한 그 알 수 없는 가사가 내겐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 중학생이었을 그때의 나에게, 어차피 팝송이란 처음부터 알아먹지 못할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가사만 이상한 게 아니어서 모처럼 친구들의 의견이 갈렸다. 그중 한 녀석이 대충 이런 얘기를 했다. “얘들은 정직하지 못해. 기계로 사운드를 너무 만져. 연주 실력이 안 되니까 이런 장난이나 치는 거라고.” 퀸이 벚나무를 찧은 것도 아닌데 때아닌 정직함을 요구하는 친구가 좀 이상했지만, 듣고 보니 또 그런 것도 같았다. 녀석은 ‘딥 퍼플’ 아저씨들과 ‘메탈리카’ 형님들을 고수로 모신 반면,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퀸은 듣기에 좋다는 이유로 하수 취급을 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퀸을,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낮잡아 보았다. 그런 헛똑똑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휴대전화 대리점 앞 춤추는 풍선 인형처럼 마구 휘둘리던 나였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퀸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친구 몰래 앨범을 사 모았다. 멜로디는 끝내줬고 리듬은 신이 났지만, ‘고결하지 못한 상업주의’ 밴드의 음악을 듣는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친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퀸을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남몰래 그레이의 채찍질에 환희를 느끼는 아나타스타샤와 같은 마음으로, 나는 한때 퀸을 비밀스럽게 사랑한 뒤 줄곧 추억으로만 간직했다.
그렇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었다. 나이도 급식처럼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만 가져다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게 되는 연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모르는 노래가 한 곡도 없었다. 첫 곡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부터 마지막 곡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까지, 영화에 쓰인 퀸의 스물 몇 곡을 모두 아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밤마다 은밀한 채찍질로 아로새긴 ‘프레디의 50가지 그림자’가 생각보다 훨씬 짙게 내 몸 깊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영화에서 내가 느낀 건 그래서 반가움이었고, 동시에 즐거움이면서 이내 그리움이 되었다가 결국엔 고마움이 남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 또래 관객은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다. 소싯적에 애써 찾아 듣지 않았는데도 영화 〈맘마미아〉 시리즈의 ‘아바’ 노래가 별로 낯설지 않은 것처럼, 퀸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에게 그들의 노래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대체로 귀에 익은 것이다.
수많은 영화에 사용된 퀸의 음악들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뒤 태어난 젊은 관객에게조차 퀸의 노래는 낯설지 않다. 수많은 영화에서 친구들의 우정을 묘사한 장면마다 으레 ‘유어 마이 베스트 프렌드(You’re my best friend)’가 나오고, 뭔가 중압감을 느끼는 주인공들은 어김없이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가 흐르는 가운데 계속 중압감을 느껴 버릇한다. 각종 스포츠 경기장에 늘 울려 퍼지는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퀸은, 서랍 깊이 넣어둔 일기장이 아니라 늘 책상 위에 꺼내놓는 포스트잇이었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줄곧 현재의 밴드였다. 역시 그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파워일 것이다.
정말 노래가 좋아서라면, 공연을 즐기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실제 공연 영상을 찾아보는 게 낫다는 사람도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스펙터클은 언제나, 스토리텔링의 가지 끝에 열렸을 때 제일 달다는 걸. 그러기엔 그 가지가 지나치게 밋밋하고 앙상하다는 비판도 읽었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와 ‘일부 평면적인 캐릭터 묘사’를 ‘옥에 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의도한 ‘신의 한 수’였을 거라고, 짐작하는 쪽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을 빼면 그저 모든 걸 적당히 만들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사연 많은 인생도 적당히, 그의 성정체성도 적당히, 메리와 짐과 프레디의 관계도 적당히, 그가 에이즈와 벌인 사투까지 그저 적당히만 담아냈다. 그렇게 거의 모든 면에서 적당히만 하기로 마음먹은 덕분에 이 영화가 지금처럼 적당한 흥행에만 머물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제작자와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처음부터 의도한 바였다. 퀸의 이야기가 담긴 가족 영화. 프레디 머큐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는 대중 상업영화.
이상하게 나는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건 ‘프레디 머큐리 전기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멋진 인생은 언젠가 꼭, 제대로, 절대 적당히만 다루지 않겠다는 태도로, 누군가 다시 만들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엔 여기까지. 그들이 정직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정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항변하는 데까지. 음악영화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해야만 하는 걸 하며 사는 관객들의 숨통을 잠시나마 트여주는 역할까지. 싱어롱 상영관에서 함께 떼창을 부르면서 ‘에~~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프레디 머큐리의 퍼포먼스에 소리 높여 화답하는 그 짜릿함까지. 바로 거기까지. 〈보헤미안 랩소디〉가 잘 해주어서 흐뭇했다. ‘고결하지 못한 상업주의 밴드’를 이토록 고결한 이슈로 다시 소환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마웠다.
글쎄. 프레디 머큐리도 이 영화를 좋아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과감했어야 한다며 불평하고 있을지도. 그러나 이 영화가 상영되는 한국의 지금 극장 풍경만은 분명 좋아할 것이다. “전설이 되겠다”던 스스로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된 현장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프레디가 ‘에~~요’, 영화 속 한 장면에서처럼 나지막이 읊조리며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다행히 나의 상상 속에서는 영화에서만큼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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