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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교수와 ‘자녀’ 학생

국정감사에서 부모-자녀 관계인 같은 대학 교수와 학생의 사례들이 공개됐다. 이럴 경우 학점 부여, 논문 지도 및 심사, 장학금 수여 등에서 특혜를 받지 못하도록 관리·감독하는 내부 시스템이 없다.

이대진 (필명·대학교 교직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제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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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구속됐다. 쌍둥이인 딸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다. 셋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교사로, 두 딸은 학생으로. 교무실 금고에 시험지가 보관돼 있는 중간·기말 고사 며칠 전, 아버지가 평소 하지 않던 야근을 하며 교무실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보다 관심은 못 받았지만,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부모-자녀 관계인 같은 대학 교수와 학생의 사례들이 공개됐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수업 8과목을 수강하면서 모두 A+를 받은 아들, 아버지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아버지의 책임·감독하에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는 경우 등이 지적됐다. 국정감사 대상인 국공립 대학에서 나온 사례이다. 사립대까지 범위를 넓히면 부모-자식의 ‘부적절한 관계’는 훨씬 많을 수 있다.

ⓒ박해성 그림

교수들의 양심을 믿었기 때문일까. 많은 대학이 친인척 관계인 소속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입학 전형 과정에서는 지원자와 친인척 관계인 재직자를 파악하고 입시 비리를 차단하는 절차가 작동한다. 사전에 학교 측에 신고하도록 하고 전형 단계에서 해당자의 참여를 제한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특정 교수와 친인척 관계인 학생이 입학한 다음 학점 부여, 논문 지도 및 심사, 장학금 수여 등에서 특혜를 받지 못하도록 관리·감독하는 내부 시스템이 현재는 전혀 없다.

특히 같은 학부(학과)에 부모와 자녀가 속한 경우, 심지어 부모가 지도교수인 경우는 매우 위험하다. 국감에서 드러난 사례처럼, 자식이 대학원생이면 석사 또는 박사 학위 논문을 부모가 심사하고 졸업시킨다. 감시의 눈이 많은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은 연구실 운영과 학생·논문 지도에서 교수에게 사실상 전권을 준다. 지도교수(부모)는 실험실 학생들(그중 한 명이 자녀)의 연구과제 참여 정도와 기여도에 따라 인건비 명목으로 월급을 지급한다. 둘은 가끔 함께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투고한다. 이 학생의 재학 기간 동안 교수-학생 관계가 공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대학의 채용에서도 친인척 이슈는 관심을 받은 바 없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비정규직까지 포함하면 기존 구성원과 친인척 관계인 사람이 응시해 실제 채용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대학 행정 업무가 일반 기업에 비해 험하지 않고 안정적이면서 출퇴근이 일정해 구직 중인 친인척에게 “○○○에 채용 공고가 났는데 지원해보라”고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전임 교원에 비해 채용 과정이 느슨한 비전임 교원이나 비정규직 자리에 소속 교수의 배우자가 근무하는 일도 적지 않다. 우리 대학도 부랴부랴 구성원 사이의 친인척 관계를 조사했더니 알려진 것보다 그 수가 많았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하려면

물론 부모-자녀가 같은 대학에 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같은 직장에 친인척이 재직 중인 것만으로 부적절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사회적 신뢰가 낮은 한국에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담보하려면 촘촘하고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연구하거나 함께 연구하는 경우가 있다” “친인척 관계를 스스로 밝히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친인척 관계를 미리 알기가 쉽지 않다”는 식의 해명으로는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믿는 이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친인척 관리가 필요한 건 대통령이나 정치인만이 아니다. ‘연구세습’ ‘고용세습’ 같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마음에 안 들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대학 구성원들에게 공과 사를 철저하고 투명하게 구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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