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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살인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

10월2일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당했다. 사우디 왕실은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의 사망으로 왕세자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20일 화요일 제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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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다. 외신은 연일 대서특필했고 중동 정세도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한 언론인의 죽음이 이렇게까지 세상을 뒤흔든 적이 있었던가?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 외신의 보도는 점차 잦아들고 있지만 여운은 길고 짙다. 언제 어떻게 다시 발화할지 모르는 불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자말 카슈끄지는 왕족은 아니지만 작지 않은 영향력을 지닌 가문 출신이다. 터키계인 그의 할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국왕의 주치의였다. 그의 삼촌 아드난 카슈끄지는 세계적인 무기상이었고, 사촌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연인이었던 이집트의 도디 알파예드다. 터키와 아랍 전역을 넘나드는 가문의 네트워크는 카슈끄지의 보이지 않는 힘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수학한 그는 일찍이 언론에 투신했다. 유력 왕자들과의 교분도 두터웠다. 그는 왕국의 비밀정보경찰(무카바라트) 총수와 주미 대사를 역임한 투르키 빈 파이살 왕자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정보 당국의 생리를 잘 이해하는 기자이자 정보 요원이었던 셈이다. 왕실과 가까운 인사들 중에서도 무게감이 남달랐던 이유다.
ⓒAFP PHOTO
10월2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자말 카슈끄지 사망 사건 진상규명 요구 시위’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사우디 왕세자 마스크를 쓰고 손에 피가 묻은 분장을 하고 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진주로 냉전의 봉쇄 구도가 흔들리자 미국과 사우디는 소위 무자헤딘 운동을 독려한다. 무신론의 표상 붉은 군대와 싸우기 위해 이슬람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이때 카슈끄지는 지하디스트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오사마 빈라덴 등 지도급 인사를 몇 차례 인터뷰한다. 하지만 소련과 싸우는 지하디스트들에게 공감하던 초기의 생각은 후일 많이 달라졌다. 냉전 이후에도 그들의 폭력성이 지속되자 비판 기조로 돌아섰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반테러 논조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서방과 아랍을 넘나들면서 그의 관록은 쌓여갔다. 동시에 보수 이슬람 전통주의를 고집하는 왕실에 대한 비판도 조금씩 강해졌다. 물론 금도를 넘지는 않았으나 사우디 국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국제사회의 정서를 담기 시작했다. 2011년 사우디의 보수 이슬람 통치 이념인 살라피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일간 <알와탄> 편집장에서 해임되며 반골 이미지가 굳어졌다. 2015년 그는 세계적 부호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바레인에서 출범시킨 위성방송 ‘알아랍’의 채널 책임자를 맡았다. 하지만 첫 인터뷰가 바레인 반정부 시아파 인사였기에 개국과 동시에 폐쇄된다.

그는 이처럼 순수한 자유주의 언론인도, 반정부 투사도 아니었다. 권력을 지향하다가 굴곡을 겪으면서 정치 이념이 변한 언론인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유력 가문 출신으로 왕실의 지근거리에서 움직이다가 밀려난 인물이다. 박탈감 때문이었을까, 왕실의 미래 권력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작년 9월 사우디 왕실을 신랄하게 비난한 끝에 자발적 망명을 택했다. 그가 투르키 빈 파이살 왕자나 왈리드 빈 탈랄 왕자를 모셨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현재 왕실 권력과 내심 껄끄러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AP Photo
2011년 1월29일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통화를 하는 모습.

사건 발생 초기, 사우디는 암살 연루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드러나는 정황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 들어간 카슈끄지가 영사관 직원들과 뜻하지 않게 다투다가 충돌이 격해지며 갑자기 사망한 우발적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관을 방문한 민원인이 직원과 폭력을 행사하며 다투는 일은 흔치 않다. 아무리 다툼이 있었다 해도 흔적도 없이 죽어 없어진다는 것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진상조사를 철저히 해서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겠노라 선언했다. 궁금증은 계속 남는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왕세자의 살해 지시?

설명하기 복잡한 사건을 접할 때 곱씹어볼 만한 질문이 있다. ‘이 일로 누가 이익을 얻는가?(cui bono?)’이다. 모든 것이 모호할 때는 결국 득을 보는 사람을 찾아내면 원인을 가늠할 수 있다. 카슈끄지는 왕세자의 예멘 개입이나 광폭의 반테러전을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그의 사망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익과 부합된다는 시선에는 설득력이 있다. 서른세 살 왕세자의 미숙함과 경솔함을 파헤치던 이가 사라진다면 왕세자는 속이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왕세자가 직접 살해를 지시했다고 결론 내리기도 쉽지 않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오히려 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위험을 알면서도 왕세자가 직접 살해를 지시했는지, 아니면 아랫사람들이 왕세자의 심기를 알아서 헤아려 진행한 일인지 아직 알 길은 없다. 왕실 입장에서는 사건의 전모가 무엇이든 이 사건을 과잉 충성에 의한 과실치사로 종결하려 할 것이다. 권력의 정점은 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았을 것이다.

세상은 들끓었다. 아무리 사우디가 중세적 절대왕정이라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쇄도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큰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돌았다. 10월 말 왕세자가 의욕을 갖고 추진한 대규모 미래 투자 구상(FII) 콘퍼런스에 미국 및 서방의 유력 인사가 대거 불참하면서 행사는 빛을 잃었다. 대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존재감이 크게 드러났다. 비전 2030을 내세워 국가 개조를 주도하던 왕세자에게 해외투자의 부진은 분명 악재다. 개혁이 좌절되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정치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개혁 이미지의 추락이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이는 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위기 요인이다.
ⓒAP Photo
이란 제재가 복원되고 사우디가 위축되면서 터키는 이 기회에 중동 내 존재감을 높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위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반면 사우디 내 여론은 좀 다르게 읽힌다. 아랍 권위주의 국가에서 반정부 인사를 탄압해온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론 통제와 유언비어 발본색원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엄포 때문일까? 현지에서 받는 충격의 강도나 반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사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극적 쟁점으로 부각했지만 그 역시 반정부 인사 탄압 논란에 휩싸여 있지 않던가? 물론 해외 자국 공관에서 무작정 살인했다는 범행 수법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악하다. 사우디 왕실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여전히 참수와 투석형이 시행되는 현지 분위기를 감안하면 국민들은 이 무도한 상황조차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왕실 권력 승계 과정에서 돌발 변수는 없을까? 현재로서는 별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살만 국왕이 전력을 다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 안정화 및 공고화에 더욱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혹여 왕세자와 라이벌 관계인 왕자들이 이번 기회를 틈타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령인 살만 국왕으로서는 현 왕세자를 대체할 여력이 없다. 지난 3년간 거의 전권을 내주면서 미래 권력으로 작정하고 세워놓았던 터라, 다른 사람으로 바꾸기란 쉽지 않다. 사건 직후 왕세자의 동생인 서른 살의 칼리드 빈 살만 주미 대사의 급거 귀국이 눈길을 끌긴 했으나, 아직 교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물론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왕실의 비밀스러운 내막을 밖에서 짐작하기란 어렵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던 내밀한 역학관계가 갑자기 돌출하면서 왕실의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이번 암살은 가뜩이나 민감한 중동 정세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폭발력이 있는 국제정치적 사건이다. 미국과 관련된 중동의 삼각 패권 경쟁 구도에서 보면 이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우디, 터키, 이란이 역내 패권을 경쟁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돌발 변수다. 일단 일을 저지른 사우디가 가장 수세에 몰린 것은 논외로 하고, 제일 득을 본 나라는 터키다. 이란은 내심 웃고는 있겠지만 딱히 상황에 개입할 여지는 없는 편이다.

미국, 사우디 압박할 수 있을까

트럼프 미국 정부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 및 자유 등의 가치 외교에 시큰둥하다 해도 반정부 언론인 살해까지 묵과하기는 어렵다. 의회와 언론이 떠들썩하게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형태로든 사우디 왕실을 압박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이 사우디를 내칠 수는 없다. 자칫 사우디가 반미 또는 탈미 노선으로 비껴가면 중동에서 미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뿐이다. 실제로 지난 투자 콘퍼런스 당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진출 의지를 부각하며 미국에 간접적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스라엘도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이란 전선의 잠재적 협력 파트너인 사우디 왕실을 적극 엄호하는 입장이다.

미국과 각을 세우다가 경제제재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터키는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강력한 증거 확보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상황을 제어하고 있다. 사건의 명확한 경위를 알기 힘든 미국이나 여타 국가들은 터키 측 발언과 입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일을 저지른 사우디로서도 터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정부 혐의로 구금되었던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전격 석방하면서 미국에 화해 신호를 보냈다. 11월5일 이란 석유 금수조치에서 터키는 예외 국가로 인정되었다. 터키는 사우디 고위층의 범죄 사실을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국왕이나 왕세자를 특정하지 않는다. 일종의 회유 섞인 압박인 셈이다. 터키는 미국으로부터 제재 완화, 그리고 사우디로부터 또 다른 반대급부를 얻으려 하는 이중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란 제재가 복원되고, 사우디가 도덕적으로 위축되면서 터키는 이 기회에 중동 내 존재감을 크게 높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행보도 궁금하다. 사우디 왕실의 대미 관계가 악화될 경우 러시아가 그 자리를 파고들려 할 수도 있다. 물론 사우디의 안보 및 경제 토대는 미국과의 협력체제에 맞게 구축되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왕세자가 향후 개혁 군주의 이미지 대신 폭군의 성정을 더 강하게 드러낼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혹시라도 미국과 유럽이 왕세자를 더 이상 품기 힘든 임계점에 다다르면 러시아와 사우디 왕실 간 연대 가능성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대통령이 아무리 자기 국민을 괴롭히고 학살해도 러시아는 든든히 정권을 지켜주었다. 숱한 권위주의 정부는 러시아를 주목한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이른바 ‘권위주의의 축(authoritarian axis)’이 중동에서 조금씩 선명해지는 이유다. 어쩌면 사우디 왕실도 러시아를 유심히 보고 있을지 모른다.

개혁 군주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젊은 세대의 인기를 얻어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사건을 무리 없이 수습해서 계속 비전을 품은 젊은 개혁가의 권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아니면 차제에 무자비하게 권력을 탐하는 폭군 이미지로 변신할 것인가? 아직 확정된 미래는 없다. 왕세자는 여전히 두 성정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는 확고한 개혁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래적인 폭군도 아니다. 권력에 목마른 서른세 살 마키아벨리스트로 비친다. 그는 불과 4~5년 전만 해도 자신에게 이런 권력이 주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버지 살만 국왕이 즉위한 이후 숨 가쁘게 권력의 정점으로 치달아오다 보니 때론 서투르고, 때론 성급했다. 그리고 심지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살인 사건에 오르내리기까지 한다. 일인 권력으로 급부상했지만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임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찻잔 속 태풍일 수도, 나비효과를 일으켜 거대한 정치 변동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 그가 어떻게 처신하며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가 관건이다. 최대한 정중히 사과하고 도의적이든 무엇이든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온다면 기대할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더 험난한 위기를 만날지 모른다. 선택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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