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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아베가 무너뜨린 언론의 위상

아베 정권이 장기 집권하면서 일본의 언론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일본신문협회’와 ‘기자클럽’ 중심 취재 문화는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도쿄/글 김동인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astoria@sisain.co.kr 2018년 11월 13일 화요일 제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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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신문의 위상과 규모는 아직 견고하다.’ 일본 미디어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다. ‘세계 언론 동향(World Press Trends)’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일본 성인 인구 1000명당 신문 발행 부수는 399.9부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위 인도(317.4부), 3위 독일(222.6부)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도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에서 “일본 신문은 여전히 매일 4000만 부 이상 팔리고 있으며, 신문의 95% 이상은 정기구독으로 판매된다”라고 발표했다. 공영방송 NHK는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취재진을 파견했고, 주요 신문사가 소유한 민영방송 역시 일본 미디어의 중추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광풍이 전 세계 미디어의 기반을 뒤흔드는 2018년 현재, 아직까지 일본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미디어)’는 굳건히 버티는 모습이다.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 레거시 미디어 역시 점차 허약해지고 있다. 신문 구독률이 줄어들고 있다. 일본신문협회에 따르면 2000년 1.13부였던 가구당 구독률은 2017년 0.75부로 감소했다. 2007년까지 총 4700만 부 수준을 유지하던 종합일간지 발간량은 10년 만인 2017년, 3800만 부대로 떨어졌다. 레거시 미디어를 접촉하는 시간도 줄었다. 2006년 1인당 미디어 접촉 시간은 텔레비전 171.8분, 신문 32.3분, 잡지 19.5분이었지만 2018년 조사에서는 텔레비전 144분, 신문 15.9분, 잡지 12.3분으로 나타났다. 2017년 잡지 시장도 전년 대비 10.8%나 감소했다(일본 출판과학연구소 통계).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일본 언론은 기자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각 매체 기자가 출입처 정보를 독점하는 구조다. 사진은 한 기자회견장 모습.


언론의 자유도 침식당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장기 집권하면서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 자유 침해 사례가 조금씩 드러난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일본은 2018년 67위를 기록했다. 2017년보다 소폭(5계단) 상승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다. 2010년 11위, 2011년·2012년 22위이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2013년 53위, 2014년 59위, 2015년 61위로 급락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2년 연속 7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일본 의회가 2013년에 통과시킨 ‘특정비밀보호법’의 존재가 일본 저널리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특정비밀보호법은 일본 행정부가 ‘특정 비밀’로 지정한 기밀을 누설할 경우 최고 1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법이다. 내부고발자(공무원)는 물론, 언론인(민간인)도 예외가 없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인 후지이 세이지 씨는 “이 법으로 인해 관료가 알아서 핵심 문서를 없애는 일이 많아졌다”라고 설명했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정권은 노골적으로 미디어에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까지 일본 언론은 정권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2014년 12월, 일본 중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아베 정부는 이례적으로 각 언론사 정치부에 “선거 보도를 공평하게 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당시 공문을 받았던 한 주류 일간지 소속 정치부 기자는 “일본에서 이런 공문을 보내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공평’을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정권의 압력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도쿄 신문> 사회부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도 “미국에서 트럼프가 그런 공문을 보냈다면 미국 언론사들이 모두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각 언론사 국장급들은 얌전하게 (정부의) 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2012년 한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아베 신조는 ‘거리 인터뷰(길거리 이원 생중계. 스튜디오에 있는 정치인에게 질문하는 코너)’에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이 연이어 등장하자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시민만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냐”라는 불만을 표출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한 한 기자는 “이후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비판적인 시민’과 ‘(정권을) 지지하는 시민’의 숫자를 맞추기 시작했다”라며 일본 미디어가 아베 정부 아래서 ‘기계적 중립’에 매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신문협회’와 ‘기자클럽’ 중심 취재 문화도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기자클럽은 한국의 ‘출입처 기자단’과 비슷한 개념이다. 기자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각 언론사 기자가 각 출입처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구조다. 비판적인 이들은 이러한 폐쇄적인 취재 환경이 관료 의존성이 강한 ‘발표 저널리즘’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회사 단위 가맹체인 일본신문협회 역시 폐쇄적인 산업구조를 고착화한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신문협회 가입 없이 새 매체를 창간하는 게 불가능했다. 황성빈 일본 릿쿄 대학 미디어사회학과 교수는 “산업구조 전반에 걸쳐 정부의 간접적인 통제가 가능하다. 일본에서 신문사는 방송국을 소유한 거대 미디어 복합기업이다. 정부의 미디어 산업정책 없이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는 데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독특한 산업구조 아래서 생겨난 논란 중 하나가 바로 ‘편집권 독립’의 의미다. 일본에서 편집권 독립이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자의 언론 자유’가 아니라 ‘경영자가 자기 소유 미디어의 편집권을 행사할 권리’로 인식된다. 이는 일본신문협회가 1948년 발표한 ‘신문편집권 확보에 관한 성명(일명 편집권 성명)’에 근거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등 주요 언론사 노동자들은 제국주의에 편승해 전쟁 선전에 주력한 각 언론사 경영진을 대상으로 언론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당시 연합군의 정책적 목표(일본을 반소·반공주의의 최전선으로 만들기 위해 산업을 정상화하는 것)와 배치됐고, 언론사 사주와 경영진에게 편집 주도권을 유지시키려 했다. 연합군의 지원 아래 설립된 것이 일본신문협회이며, 이들은 곧바로 ‘편집권은 경영자의 몫’이라는 ‘편집권 성명’을 발표한다.

ⓒ시사IN 이명익
일본에서 PC·태블릿·스마트폰을 이용해 미디어에 접촉하는 비율이 올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위는 스마트폰을 보며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들.

이런 배경에서 각 언론사에 소속된 개별 기자가 권력에 대항하기란 어려웠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노조가 있는 언론사도 드물뿐더러, 노조가 경영진의 편집 방침에 대항한 사례 역시 찾기 어렵다. 한국의 ‘언론노조’와 같은 산별노조도 없다. 주류 미디어 소속 개별 기자는 오히려 일본 사회에서 임금수준이 높은 엘리트 직장인에 가깝다. 2017년 기준 일본 40대 초반 남성 직장인의 평균 연봉은 약 564만 엔(약 5547만원)이지만, 같은 연령대 주류 신문사 기자의 연봉은 1000만 엔을 넘는다. 전 <아사히 신문> 탐사팀 출신인 기무라 히데아키 기자는 “주류 미디어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직원이다. 개별 기자 입장에서 기성 미디어에 안주하는 게 안정적이다. 내가 퇴사할 때도 일부 기자들이 회사 이메일이 아니라 자기 ‘개인 이메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더라. 개별 기자들이 일본 사회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탐사보도 역시 정권이나 대기업을 겨냥하기보다는 살인 사건 같은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큰 권력을 상대하는 저널리즘과 작은 기업·개인을 상대하는 저널리즘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모치즈키 기자는 “경찰에서 사건 보고를 할 때 보면 기자들의 질문이 매우 활발하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기자도 많다. 그러나 정치부 기자회견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와타나베 마코토 <와세다 크로니클> 편집장도 “일본 미디어의 특징은 약자한테는 세게 비판하고, 강자한테는 약하게 비판한다는 점이다. 범죄자는 기사를 내더라도 기자에게 위협이 돌아오지 않는다. 기업 비리도 작은 기업은 심도 깊게 파고드는 반면, 큰 기업에게는 덤비지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도 기존 언론사 기자들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2006년, 한 사람이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 같은 레거시 미디어를 접촉하는 시간은 전체 미디어 접촉량 가운데 약 80%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8년에는 처음으로 PC·태블릿·스마트폰을 이용해 미디어에 접촉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쓴 야스다 고이치 기자는 "탐사보도의 위기다. 종이매체가 줄면서 취재비용도 삭감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독자를 모으는' 기사가 늘고 있다. 시간과 돈을 쓰고 기사를 만드는 시스템이 무너져가면 기자들의 취재력도 떨어진다. 소송부담을 우려해 '미지근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언론사를 지탱하던 개인 구독이 줄어들면서 광고에 대한 의존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일부 기자들은 언론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진다며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수 정당의 장기 집권, 온라인 영향력 확대라는 배경에서, 기형적으로 파생된 현상이 바로 ‘산케이 세대의 등장’이다. 일본 온라인 저널리즘은 한국과 비슷하게 포털과 메신저 앱이 주도하고 있다. 야후재팬과 라인 뉴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여전히 포털 등에 뉴스를 제공하는 데 소극적이다. 주요 신문사의 온라인 대응도 ‘유료 구독 모델(페이월)’을 최우선으로 추진한다.

“일본 온라인은 ‘극우의 공간’”


반면 ‘넷 퍼스트’를 강조했던 극우 <산케이 신문>은 야후재팬이나 MSN 등에 자사 기사를 적극적으로 게재했다.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가장 쉽게,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기사가 혐한을 중요한 키워드로 삼는 <산케이 신문>이었다. 온라인에서, 특히 젊은 세대에서 <산케이 신문>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됐다. <산케이 신문>의 특징을 ‘애드버킷(Advocate) 저널리즘(특정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한 황성빈 교수는 “진보가 온라인 세계를 주도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 온라인은 ‘극우의 공간’이다. 여기서 생겨난 ‘넷우익’을 주류 언론들은 방관해왔다”라고 말했다.

일본 저널리즘은 전통적인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극우 미디어가 주도권을 쥔 ‘완만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물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일본 공영방송을 연구해온 정수영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과거에 비해 허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일본 공영방송의 보도의 질과 일본 저널리스트들의 이른바 ‘장인정신’은 우리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간지-잡지-단행본으로 이어지는 매체 선택 폭도 여전히 넓고, 전통적으로 읽기 문화를 강조한 덕분에 일본 독자의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해독 능력) 수준도 높은 편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에서 만난 한 기자도 “지역신문의 구독률이 높은 점은 여전히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처럼 급격히 언론 산업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앞서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가 곧 일본 언론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언론 산업의 기초체력이 당분간 버텨주겠지만, ‘장기 침체’ 국면에서 일본 언론이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저널리즘을 이끌어온 일본 저널리즘의 위상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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