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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노동자에 귀를 기울이면

연구실에서 곰팡이 개발에 매진하던 캐런 메싱은 노동자 건강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변모했다. 그는 노동자와 정책 결정권자 간의 공감 격차를 줄여야만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제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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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영예로운 아이비리그 학생은 카페테리아에서 형편없는 종업원이었다. 쟁반·냅킨·식기를 준비하고, 음식 주문을 받아 주방 직원이 각각의 주문을 식별할 수 있게 외치고, 열 개 이상의 접시와 소스를 정확한 위치에 놓고,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요리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은 “지적 능력에 대한 상당한 도전”이었다. 두 명 이상의 주문을 처리할 수 없었던 그는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지적인 능력 면에서 굴욕감을 느꼈다. 그 후 ‘얌전하게’ 졸업했고, 당시만 해도 ‘고객으로만’ 저임금 노동자를 만나게 될 줄 알았다.

다수의 연구자들이 그러하듯 캐런 메싱 캐나다 퀘벡 대학 명예교수(75) 역시 연구실에서만 머무르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모기를 퇴치하는 곰팡이 개발에 매진하는 일도 매우 쓸모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박사 학위 주제인 ‘하등 유기체의 분자유전학’이 지역사회에 무슨 필요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도 지역공동체를 위한 자원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이름을 올렸을 때, 삶의 이력은 이전과는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역의 제련 공장 노동자들이 방사선 노출 문제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궁금해하며 단지 ‘과학자’라는 이유로 그를 만나러 왔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던 캐런 메싱은 그 문제를 들고 ‘유능한’ 동료 과학자들을 접촉했다. “과학적 호기심에서든, 인간적인 의무에서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직접 공부하며 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그는 덕분에 노동자들 옆에서 “그들의 작업환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연구자로서는 드문 ‘행운’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시사IN 이명익
캐런 메싱 캐나다 퀘벡 대학 명예교수.
ⓒ시사IN 신선영

특히 메싱이 지난 40여 년간 해왔던 연구는 오랫동안 일하는 과정에서 다치고 병들 수 있는 신체를 남성의 몸으로 간주해온 편견을 반박하고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성 노동과 건강에 대해 ‘학술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메싱이 해온 연구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스로는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더 낫게 만든 것 같지는 않다”라고 고백한다. 메싱은 과학자나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을 ‘공감 격차’라 지적하며, 이 격차를 줄여야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요 연구 내용을 담은 <반쪽의 과학> (한울, 2012)과 일종의 회고록인 <보이지 않는 고통>(동녘, 2017)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11월5일 대한직업환경의학회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캐런 메싱 교수를 만났다.


첫 일정으로 한국 여성노동의 역사를 다룬 영화 <위로공단>을 보고 서울 구로디지털단지를 방문했다.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였다. 여성들이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용기를 보여주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영화 <위로공단> 속 상황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캐나다 퀘벡에서도 1930년대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요즘 세 번째 책을 쓰고 있는데 큰 주제가 ‘연대’다.

당신의 삶은 “교수 양반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느냐”라는 한 여성 노동자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사실상 ‘실패담’에 가깝다.

새 책에 들어가는 이야기도 실패담으로 시작한다(웃음). 고전 영화를 보면 몽둥이로 노동자를 폭행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오늘날은 노동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다른 형태의 폭력은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일하는 여성은 여전히 언어폭력, 이를테면 ‘저 여자는 너무 시끄럽다’ ‘징징댄다’ 같은 부정적인 형용사와 싸워야 한다.

ⓒ시사IN 이명익
마트 계산대에 의자를 놓자는 운동이 10년째 이어지지만 아직 정착이 안 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노동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조건을 연구할 때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야 한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그 제안이 국제 보건학회에서 ‘주류’로 인정받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


연구자들이 분석 방법에서 성별 차이를 두면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은 다행스럽다. 이에 대한 해결이 더디게 이뤄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 간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 남자가 우월하다는 결론밖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 차이를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통신망 정비업체를 연구한 적 있다. 이 회사는 여성 직원이 30명인 데 비해 남성 직원은 1000명이 넘는 곳이었다. 노동조합 의뢰로 여성 노동자 중 5명을 인터뷰했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아무 문제 없다”라고 말한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선 어렵사리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곤 했다. 통신망을 수리하러 갔다가 남성 고객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상사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직장 내에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 직장 상사는 이후 남성 직원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을 때 비밀을 지켰다. 직장에서 강간을 당했거나 매일 성적인 농담에 시달린다는 여성들의 고백도 나왔다. 이 여성들을 만나면서 왜 세 번째 시간이 되어서야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는지 생각해봤다. 사회적 압력은 여성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자신의 피해를 사소한 일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일하는 여성에게 압력을 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생각해야 한다. 이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여성 노동에 관한 연구가 비과학적이고 감성적이라는 편견, 선행 연구의 부족, 정부의 예산 삭감 같은 많은 장애물과 싸우면서, 쉽게 요약되거나 생략되는 여성의 삶과 노동을 가시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의 파급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책과 연구 부분을 분리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하는 연구가 다른 연구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이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절대 직접적으로 정책을 변화시킬 수는 없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이다. 우리 몫은 지역사회와 정부가 연구 결과를 활용해서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힘을 싣는 것이다. 물론 이때 연구자가 ‘실제 상황’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부분에서 실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연구자의 어떤 질문은 당사자가 직장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당신은 1976년 그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연구 책임자가 꼭 남성일 필요는 없지 않나’를 깨닫고 여성 동료와 함께 스스로 책임자가 되었다.

여성이 실수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이라는 것 자체로 수치심을 갖게 하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 여성이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모두가 알게 되고 그 실수로 자신의 전부를 판단받기 때문이다. 실수한다고 해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경험을 말했다가 오히려 본인이 처벌받거나 낙인찍힐까 봐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그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미투 운동’이 보여주듯 우리는 그런 두려움을 깨고 나올 수 있다.

25년 전 당신은 “여성의 고용 상태와 관련해 가장 놀라운 것은 여성이 아직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사실이다”라고 썼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하다.

임금은 건강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다. 여성의 업무는 여성이 일하는 공간을 떠난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결혼한 여성은 어떤 직업을 가질까 고민할 때 아이 돌보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남성은 여성보다 임금을 많이 받는 데다 육아와 가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할 수 있다. 경제력에서 부부간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거다. 이혼 가정의 경우에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가족을 돌보는 시간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적이기 쉽고 근로시간이 긴 직업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임금이 낮은 경우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도 낮다고 느끼기 쉽다.

계산대에 의자 놓기 같은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노동자 건강에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현실은 관행을 고집한다. 한국만 해도 마트 계산대에 의자를 놓자는 운동이 10년째 이어지지만 아직 정착이 안 되고 있다. 의자만 있지 앉지는 못하는 식이다.

캐나다 퀘벡에서는 1989년 마트 내 여성 계산원에게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01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서점 판매원이 앉을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었다. 서점 주인이 즉각 항소했으나 패소했다. 우리의 연구 결과가 영향을 미쳐서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는 의자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는 건 연구나 판결과는 또 다른 문제다. 경영진도 그렇지만 모든 노조가 여성 노동자의 삶의 질과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의자 하나 놓는 데 29년이나 걸린다는 게 말이 되나? 왜 이렇게 해결이 더딘가? 계산원이나 판매원을 사소하게 취급하고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자신이 당사자이거나 차별을 경험해야만 차별받는 상대에 공감할 수 있는 걸까? ‘공감 격차’를 줄이는 노력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두 가지 정도가 중요할 것 같다. 무엇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관심이나 동기가 있는가이다. 나는 연구자이기 때문에 어떤 책임감 이전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장 관리자였던 아버지는 나처럼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공장 내 남성 노동자를 연구할 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팀 내 학생 중 노동자 가정에서 성장한 학생이 있었고, 그들이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나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황을 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라도 현실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처럼 연구 대상의 상황을 연구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에는 다양한 계층과 계급의 사람이 ‘섞여’ 있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구조적인 면도 짚을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 관련 연구는 예산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이미 유명하거나 안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연구에만 투자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보수 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는 동안 노동 관련 연구 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잦았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연구가 타격을 받기 쉬운 환경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도 고심해야 한다.

부모가 당신에게 끼친 영향과 균형이 절묘했던 것 같다. 당신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비교해 “네가 저들보다 똑똑하다”라는 말로 당신에게 의문을 심어줬다면, 어머니는 “네가 다니는 대학의 비싼 학비는 저 여성 노동자에게서 나왔다는 걸 명심하렴”이라고 말하며 당신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1908년생인데 당시 북미에서는 지금보다 더 여성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어려운 시대였다. 어머니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였으나 그 때문에 커리어를 쌓거나 정체성을 내세우기 어려웠다. 예술가였던 어머니는 1930년대에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반영한 그림이었다. 당시에는 수용하기 힘든 가치였기 때문에 그림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아버지는 항상 착실하게, 바르게, 조심스럽게 살았다. 나 역시 아버지처럼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긴 시간 동안 생각해왔다. 어머니가 다방면에서 옳았다는 것을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과학은 실증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래서 보편적인 답을 줄 수 있다는 어떤 ‘신화’가 있다.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때 너무 많은 ‘객관’을 요구받는다.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 소수자인 경우 더욱 그렇다. 과학은 태생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 내기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과학은 분명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경험을 공론화할 방법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노동자가 연구에 접근하고 그들의 통찰력을 과학에 적용할 수 있어야 과학 역시 발전할 것이다. 실제로 과학의 어떤 부분이 노동자에게 영향 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자본은 과학의 공감을 ‘구매’할 수 있다. 과학이 법적 다툼 과정에서 노동자를 처벌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연구자는 책임감 있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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