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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새벽 ‘양진호’와의 첫 만남

2년 전 어느 새벽, 박상규 <셜록> 기자는 한 남자가 건넨 서류를 받았다. ‘대학교수 폭행 사건’ 전말이 담긴 문건이었다. 이 사건을 지난 2년간 들여다본 박 기자가 ‘양진호 회장’ 취재기를 보내왔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19일 월요일 제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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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마저 모두 문을 닫은 새벽길은 어두웠다. 옆에서 걷는 낯선 남자는 별말이 없었다. 걷다 보니 경의선 철길에 닿았다. 철길 옆에 곧 쓰러질 듯한 삼겹살집이 여전히 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졸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놀라서 깼다.

어색한 두 남자 사이에서 돼지 목살은 천천히 익었다. 서로의 입은 그보다 더 늦게 열렸다. 소주 두 잔쯤 마셨을 때 그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또라이 양진호 회장과 한번 붙어보시겠습니까? 보통이 아니니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박 기자도 또라이라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또라이끼리 한번 제대로 붙어보시죠.”

남자는 자신이 갖고 온 문서 내용을 짧게 설명했다.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한 대학교수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 집단폭행한 이야기, 싸늘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쫄리면(겁나면) 안 하셔도 됩니다.”

‘쫄렸다.’ 그가 내 눈을 보며 살짝 웃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했을 거다. 그 비웃음에 오기가 생겨 마음과 다른 대답을 했다.
ⓒ연합뉴스
11월7일 폭행과 강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가져온 서류 두고 가세요.”

그가 먼저 일어났다. 남자는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도청 가능성이 있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검은 밤, 혼자 집으로 가면서 몸이 으스스 떨렸다. 새벽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그 남자의 문서를 읽어봤다.

“머리채를 잡고 무자비하게 때리다가 양진서(양진호 동생)는 구타당해 꿇어앉아 있는 대학교수에게 ‘양진호의 신발을 핥아’라고 강요하며 구타. 대학교수의 얼굴에 10여 차례 가래침을 뱉으며 수치심이 들게 하였음. 양진서는 교수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잡고 ‘처먹어!’라고 소리치며 대학교수 얼굴에 묻은 가래침을 손으로 쓸어 담아 입에 처넣었음.”

‘대학교수 폭행 사건’의 전말이 담긴 서류였다. 딱 세 페이지 읽고 덮어버렸다. 제보자가 왜 전화 불가를 말했는지 이해됐다. 양진호, 그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2년 뒤, ‘양진호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보도는 이렇게 출발했다. 제보자와 나는 직접 연락하지 않았다. 제보자가 신뢰하는 A기자를 거쳐 의견을 전달했다. 양진호 회장의 도청을 우려한 그는 자기 전화기에 내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취재 시작한다는 뜻을 A기자를 통해 제보자에게 전했다. 제보자는 예상 밖 사인을 전해왔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폭행당한) 교수-양진호 사이의 소송, 검찰 수사 등을 지켜보자.’

소송과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니? 취재와 보도가 한없이 미뤄질 게 뻔했지만, 제보자의 뜻을 따라야 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탐사보도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빨리 보도해 끝을 보려는 욕심을 억눌러야만 가능한 일이다. 기다림, 또 기다림, 끝이 안 보이는 허망한 기다림, 탐사보도는 기다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10월30일 <셜록> <뉴스타파>는 양진호 회장이 전직 직원을 폭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양진호 회장 동태, 위디스크 상황, 디지털 성범죄 세계 등을 알아보면서 때를 기다렸다. 1년이 가고 2년이 흘렀다. 2018년 9월, 드디어 제보자에게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다. 양진호 회장의 대학교수 집단폭행 교사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거라 했다. 제보자는 이걸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린 다시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그가 내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양진호는 칼도 쓰는 사람이에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박 기자, 쫄리면 ‘뒤지셔도’ 됩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뒤지’라니. 목구멍으로 넘기던 삼겹살 조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소리쳤다.

“아, 거 참 한다고 했으면 그렇게 아시지, 왜 자꾸 사람을 떠봐요!”

그는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보자는 내게 ‘미션’ 하나를 내렸다. 양진호 회장의 불법행위와 디지털 성범죄 카르텔을 폭로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산 하나를 꼭 넘어야 한다고 했다.

“양진호 회장의 교사로 집단폭행을 당한 대학교수를 설득해야 합니다. 치욕스러운 자기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되는 걸 원치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어요. 대학교수를 설득해보세요. 그게 시작입니다.”

그 교수가 일하는 대학으로 향하는 KTX 기차표를 끊었다. 미리 연락하면 피할 게 뻔했다. 미리 수업 시간을 파악해 강의실 앞에서 기다렸다. 지난 10월 초 일이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강의실 앞문, 뒷문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교수는 천천히 나왔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온 박상규 기자입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교수님, 다 알고 왔습니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교수는 빠른 걸음으로 학생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학생들 틈에서 정면을 보며 빠르게 걸었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연합뉴스
11월2일 경찰이 위디스크 운영사 이지원인터넷서비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입니까? 양진호 회장이 보내서 왔습니까?”

“양진호 회장 쪽 사람 아닙니다. 교수님이 겪은 일을 알고 찾아온 기잡니다.”

“녹음하겠습니다.”

“편하신 대로요.”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손에 쥐고 녹음을 시작했다.

“저 따라오세요.”

이번에도 학생들이 많은 야외 벤치였다. 교수와 정면을 바라보면서 나란히 앉았다. 그는 많이 불안한지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자기를 지켜보는지 찾는 듯했다.

“누가 보냈고, 왜 왔습니까?”

“교수님, 이대로 가만히 계시면 더 크게 당하십니다. 양 회장이 교사한 집단폭행 곧 무혐의 나온다고 합니다.”

교수에게 빠른 말로 상황 설명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0분. 교수는 곧바로 다른 수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는 내 모든 말을 녹음했다. 여전히 내 정체를 의심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자기 전화기를 양 회장이 도청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마친 뒤 교수에게 내가 쓴 책 <지연된 정의>와 명함을 건넸다.

“구글에서 저를 검색해 알아본 뒤,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시면 연락주십시오.”

10분은 금방 끝났다. 교수는 강의실로 향했다. 나는 다시 KTX역으로 향했다. 나흘 뒤 그 교수에게 메일이 왔다.

“판단이 서질 않네요. 서로가 원하는 게 다르겠지요? 그것들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습니다. 무기력하게 외면하며 그저 (양 회장에게) 천벌이 내리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무 악해서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실 것 같단 생각이 며칠 전 들었습니다. 다녀간 후 구글에 여러 가지 검색을 했습니다. 혹시 저를 도와줄 수는 있는지,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 뭐라도 잡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교수님이 물으셨죠. 도와줄 수 있느냐고,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느냐고. 결심해주시고 용기를 내주면,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같은 배를 탄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 논의를 거쳐 결정한 뒤에 선생님을 찾아뵌 겁니다.”

10여 차례 메일을 더 주고받았다. 10월9일 한글날, 교수가 일하는 대학에서 다시 만났다. 나와 제보자가 하려는 일을 설명했다. 교수는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취재 결과를 제보자에게 알렸다. 그가 처음으로 좋은 말을 해줬다.

“오, 일을 제법 하시네요.”

제보자가 다음 ‘미션’을 줬다.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박 기자, <셜록> 혼자 보도하면 뒷감당 가능하시겠어요? 애써 보도했는데 파장이 없으면 양 회장에게 우리만 당합니다. 방송사 하나 끼고 갑시다. 방송사 좀 섭외해보세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저도 좀 보호해주십시오. 공익 제보자 보호 프로그램… 뭐 그런 거 좀 알아봐주세요.”

나라고 왜 단독 보도 욕심이 없겠나. 하지만 때로는 욕심이 일을 그르치는 법. 양진호 회장은 1000억원대 자산가이면서 인맥이 화려했다. 주먹은 물론이고 칼도 쓰는 사람이다. 한 번에 제대로, 기선을 제압해야 했다. 한 공중파를 찾아가 내가 쥐고 있는 사건과 취재 내용을 브리핑했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벌어진 사건도 아니고, 중소기업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까지 보도하기는 좀 그런데요.”

시민단체도 난색을 표했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를 찾아갔다. 김 대표는 5분 만에 협업에 합의했다. 공익 제보자 보호 프로그램 가동은 실패했다.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왔건만, 우라질! 제보자가 세 번째 ‘미션’을 줬다.

‘사라진 폭행 피해자 강○○를 찾아라.’

그때까지 <셜록> <뉴스타파>가 확보한 동영상은 두 개였다. 양진호 회장이 전 위디스크 직원 강○○씨를 폭행하는 것과 닭을 마구 죽이는 ‘공포의 워크숍’ 장면.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려면 어떻게든 강씨를 찾아야 했다.

<뉴스타파> 쪽에서 강씨를 먼저 찾았다. 그는 가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바다 한가운데, 섬에 살고 있었다. 10월19일 그가 사는 섬으로 향했다. 인터뷰 때 강씨가 말했다.

“여기까지 온 배경에는 양진호 회장도 있어요. IT 업계에 계속 있으면 양 회장과 부딪힐 게 뻔하잖아요. 양 회장이 왜 그렇게 저를 때렸는지, 그것도 모멸감 느끼게 왜 모든 직원 앞에서 그랬는지… 그걸 생각하면 아직도 밤잠을 설쳐요.”

강씨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약 2시간 동안 자신이 겪은 일과 심경을 밝혔다. 그는 <셜록> <뉴스타파>와 끝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뉴스타파>와 협의해 보도 시점을 10월30일 오후 1시로 잡았다. 양진호 회장이 강씨를 폭행하는 영상과 인터뷰를 먼저 터트렸다. 독자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모든 이슈를 양진호 회장이 집어삼켰다. 10월31일 오후 1시, 두 번째로 ‘공포의 워크숍’을 보도했다. 또 양진호 회장이 모든 이슈를 잠식했다. 나와 <뉴스타파> 취재팀 모두 이틀 밤을 새웠다. 11월2일 교수 폭행 사건을 보도했다. 사실상 이걸로 게임은 끝났다. 시작이 너무 강렬했다.

피해자가 자기 목소리로 말할 때

양진호 회장은 11월7일 오후 경찰에 체포됐다. <셜록> <뉴스타파> 첫 보도 이후 9일 만이다. <셜록> <뉴스타파> <프레시안>은 이후 양 회장이 직접 디지털 성범죄 영상 업로드를 관리한 정황과 실질적으로 모든 직원을 도청한 사실을 폭로했다. 양진호 회장이 다시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와 웹하드 카르텔, 양진호 회장 비호 세력 등 앞으로 보도할 게 많다. 양 회장 구속과 상관없이 진실 보도는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이 사건을 2년간 들여다봤다. 뿌듯하고 감동적인 순간은 양진호 회장이 경찰 포토라인에 섰을 때가 아니다. 장기 탐사보도의 감동 포인트는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취재에 응한 교수와 강○○씨가 변화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 위축된 모습이었다. 인터뷰 초반엔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기도 했다. 그러다 인터뷰가 끝날 땐 목소리는 물론 태도에서 안정감이 보였다. 이제 두 사람은 떨지도 울먹이지도 않는다. 온전한 자기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말하고, 사회 부조리를 강하게 비판한다.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 취재원과 오래 만나고 교감하면서 그들의 변화 모습을 직접 보는 것. 탐사보도의 진짜 맛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속보의 순간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고, 단신 처리로는 결코 맺을 수 없는 관계의 깊은 맛. 탐사보도는 그렇게 중독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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