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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난민 아동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지난해 말까지 법무부에 난민 신청서를 낸 만 0~17세 아동은 총 1332명(누적)이다. 난민 아동들은 지금 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국내 난민 아동의 삶은 결코 풍요롭거나 안락하지 않았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8년 11월 08일 목요일 제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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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하나 올라왔다. ‘난민 아동수당 웬 말이냐? 난민법 폐지하라.’ 청원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 출산율 평균 1.2명, 무슬림 출산율 평균 8.4명.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는 평균 12만원에 저들은 기본생계비 138만원(4인 가족)에 아동수당으로 84만원을 가져간다. 결국 일 안 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놀고먹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혈세로 IS 전사를 키우려는 것인가? 난민법 폐지하고, 불법 체류자 추방하라. 인도적 체류자 추방하라.” 대한민국 국민 2만7454명이 이 청원에 동의했다.

ⓒ시사IN 윤무영
기니에서 온 나디아 가족.
난민 인정 소송에서 아빠는 3심까지 패소했고, 엄마와 나디아와 에피아는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청원이 올라온 때는 제주 예멘 난민을 둘러싼 갈등이 격렬하던 지난 초여름이었다.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 500여 명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난민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다.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와 동영상이 인터넷과 SNS를 뒤덮었다. 예멘 난민으로 시작된 혐오 정서는 예전부터 한국에 들어와 살던 난민 전체로, 또 그 가운데 ‘우리의 복지 혜택을 축내고 있을지도 모를’ 난민 아동에게까지 번졌다.

‘난민 아동수당 반대’ 청원자가 썼듯, 한국에는 적지 않은 난민 아동이 살고 있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으려면 성인 난민과 마찬가지로 자신(혹은 부모)의 조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해 난민 신청서를 내야 한다. 대개 거절당하고 일부가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는다(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신청자 중에 난민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강제 추방했을 경우 생명의 위협 등을 받을 수 있어 한시적으로 머물게 해주는 제도다). 아주 소수만이 난민으로 인정받는다(아래 <표 2> 참조). 지난해 말까지 법무부에 난민 신청서를 낸 만 0~17세 아동은 총 1332명(누적)이다. 그 가운데 335명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고 213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이 가운데 2만7454명의 청원을 이끌어낸 ‘아동수당 수급 대상 난민 아동’ 수는 훨씬 더 적다. 아동수당은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지급되는데, 만 0~ 4세 난민 인정 아동이 총 79명에 불과하다(<표 7>).

이 100명 미만 난민 아동에게 주는 아동복지 예산에 분노하는 목소리는 청와대 청원을 시작으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졌다. 아이 엄마들이 가입한 ‘맘카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야말로 밑 빠진 독에 난민인데 아동수당도 못 받고” “우리 가족도 일 안 하고 세금도 안 내고 그냥 난민 할까 봐요” “뱃속 아이 출산만 하면 촛불 들고 뛰쳐나갈 거예요. 어휴, 열불 나”.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마저 외면당하는 난민 아동들은 지금 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일 안 하고 놀고먹는 난민 부모 밑에서 풍족한 삶을 누릴까? 정말 우리의 혈세로 IS 전사로 자라나고 있을까?

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간접 취재, 연구 보고서 등으로 접한 국내 난민 아동의 삶은 결코 풍요롭거나 안락하지 않았다. 전쟁, 학살, 박해로 얼룩진 모국에서 겨우 벗어나 생존을 위해 문을 두드린 이곳 한국에서 아이들은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들의 이름은 ‘난민’ 아동이 아닌 그저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다(기사에 나오는 난민 아동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시사IN 윤무영
나디아(4)와 에피아(3)는 <뽀롱뽀롱 뽀로로>를 즐겨 본다.
엄마는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 동영상 속 나디아는 ‘갑순이’가 되었지만

나디아(4)는 <뽀롱뽀롱 뽀로로>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크롱을 가장 좋아한다. 나디아도 크롱처럼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다. 엄마가 손님들과 이야기할 때 슬쩍 엄마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방 가운데에서 빙그르르 춤을 췄다. 토끼 귀 모양 머리핀을 꽂은 채 “깡충깡충”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디아의 동생 에피아(3)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림을 가리키며 “멍멍이” “야옹이”를 반복했다. 한창 말을 배울 시기의 자매네 저녁 풍경은 여느 한국 가정처럼 분주하고 시끌벅적했다.

나디아 엄마(30)와 아빠(37)는 기니에서 왔다. 부족 간 다툼과 대통령 반대 시위 참여 이력 때문에 부모는 그곳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군인들이 집에 난입해서 무차별로 폭행하고 불을 질러 나디아 엄마는 화상까지 입었다. 여성들은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살기 위해 먼 나라로 도망 왔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난민 인정 소송에서 아빠는 3심(대법원)까지 모두 패소했다. 엄마와 나디아와 동생은 현재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불인정 판결이 나도 돌아갈 곳이 없다. 나디아의 밝은 표정과 달리 이 가정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나디아네 집은 불안정한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일용직으로 근근이 돈을 벌어오던 아빠는 지금 몸이 많이 아파서 일을 나갈 수 없다. 두 달째 복통이 이어지고 체중이 많이 줄었다. 한국어를 꽤 잘 구사하는 엄마는 한 수녀의 도움으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 학원에 가고 실습을 나가며 공부한다. 월세도 밀리고 벌어놓은 돈도 동났다. 당장 들어오는 수입은 없지만 열심히 간호조무사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엄마가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지만 나디아는 아프면 안 된다. 건강보험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이다. 나디아가 태어났을 때 나디아 엄마는 진료비 영수증을 받아들고 한참을 울었다. 아이는 예정일보다 3개월 일찍 태어났다. 갑자기 태동이 안 느껴져 병원에 확인하러 갔더니 아기가 뱃속에서 숨을 잘 쉬지 못한다며 당장 꺼내야 한다고 했다. 수술비와 입원비, 아기 인큐베이터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다행히 사연을 접한 종교기관과 시민단체에서 힘을 모아 병원비를 마련해줬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나디아나 에피아가 감기에 걸리면 엄마는 고향에서 배운 민간요법으로 마사지를 해준다. 효과가 있지만, 소아과 진료가 아쉬울 때가 많다. 벌써 코앞에 닥친 겨울이 걱정이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월세방은 두 시간 동안 난방을 틀어야 겨우 방바닥에 따뜻한 기온이 돈다. 아침 어린이집 등원길 찬바람에 “추워, 추워” 하더니 나디아는 벌써 콧물이 그렁그렁하고 기침을 한다. 엄마는 ‘다른 아이들처럼 따뜻한 덮개가 있는 유모차에 앉아 가면 감기에 안 걸렸을 텐데’ 싶어 마음이 아프다.

나디아와 에피아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보육비를 지원받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 덕에 친구도 사귀고 한국어도 많이 늘었다. 아이들을 맡길 데가 생겨서 엄마도 취업 준비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또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자매가 누리는 것들이 매우 부족해 자꾸 엄마 마음에 밟힌다. 나디아는 요즘 친구들이 자주 먹는다는 피자, 햄버거, 치킨, 초콜릿을 사달라고 조른다. 얼마 전에는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며 사흘을 울었다. “예쁜 옷 사줘요, 공주 옷 사줘요”라고 조르다가 “엄마 돈 없어요?”라고도 묻는다. 엄마는 가슴을 친다.

난방 기운도 없고, 장난감도 공주 옷도 없이 세간이 텅텅 빈 집에서 나디아는 계속 빙글빙글 춤을 췄다. 지난해 겨울 어린이집에서 열린 재롱잔치 동영상 속에서도 나디아는 춤을 추고 있었다. 색동 한복을 입고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팔을 흔들었다. “완전 한국 애 같죠?” 나디아 엄마는 ‘갑순이’가 되어 춤을 추는 나디아를 바라보며 웃다가 한숨짓다가를 반복했다.

ⓒ시사IN 조남진
모린(2)과 모린 엄마는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에서
2심까지 지고 3심을 기다리고 있다.
■ 엄마에게 ‘곰 세 마리’ 가르쳐주는 아이

모린(2)은 마지막 소송 판결을 앞두고 있다. 상대는 대한민국 정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에서 2심까지 졌다. 3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모린과 엄마는 3개월마다 한 번씩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스탬프(일시적 체류 연장)’를 받아야 한다. 최종 난민 불인정 판결을 받으면 모린은 엄마와 함께 나이지리아로 돌아가야 한다. 모린 엄마에게 그곳은 고향이지만 동시에 죽음의 땅이다. 전쟁과 정치적 탄압으로 다섯 형제가 그곳에서 죽었다. 한국에서 추방당하면 모린을 데리고 공항에서 노숙을 할지언정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법적 신분이 가냘프게 연명되는 동안 모린은 하루가 다르게 자신이 태어난 땅, 한국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지역 이주민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엄마 품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던 모린이었다. 지난 7월부터 세이브더칠드런의 보육비 지원 사업으로 집 가까운 어린이집에 다니며 모린은 엄마 말고도 좋아하는 것이 많이 생겼다. 어린이집 버스가 오면 “엄마, 차! 엄마, 차!” 하며 팔짝팔짝 뛴다. 영어가 모국어인 엄마에게 두 살배기 모린은 가끔 한국어 선생님이 돼준다. “하루는 ‘엄마, 앉아’ 그래요. ‘앉아가 뭐야?’ 물었더니 설명해줘요. ‘Sit down, sit down’.” 모린 엄마가 한국어 동요 ‘곰 세 마리’를 유쾌하게 부를 줄 아는 것도 모린이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등 한국 음식이라면 뭐든지 잘 먹는 모린 덕분에 엄마는 부지런히 한국 요리를 배우고 있다.

모린에게 한국은 아직 따뜻한 곳이다. 신생아 시기 반지하방에 살면서 얻은 천식 때문에 엄마의 근심이 컸는데, 인근에 이주민 아동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는 소아과가 있어서 걱정을 덜었다. 길거리에 나가도 “아유, 귀여워라”하며 예뻐해주는 한국 사람들을 모린도 모린 엄마도 좋아한다. 오래도록 이곳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이 따뜻한 곳에서 모린이 계속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모린 엄마는 매일 기도한다.

■ 교육권과 건강권, 난민 아동에겐 그림의 떡

한국이 1991년에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자신 또는 그의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20~21쪽 기사 참조). 여기서 언급하는 아동의 권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건강권’과 ‘교육권’이다. 건강권은 물론이고, 교육권 역시 아동에게 생존과 직결되는 기본권이다. 제대로 배워야 현재 환경을 극복할 기회를 얻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이 두 가지 중요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동이라 할지라도 난민 신청자에게는 건강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난민 인정을 받는다 한들 그 결정까지 기다리는 데 보통 1년은 걸린다. 길어질 경우 3년도 넘어간다. 부모들은 그저 그동안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다 아이가 아프면 빨리 낫기만을 기도한다. 난민 아동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자녀가 아팠을 때 병원에 가지 못했다”라고 답했다(15쪽 <표 4> 참조) “치료비가 비싸서(49.2%)”거나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모르고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18.1%)” 또는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18%)”였다(세이브더칠드런, <난민 아동 지원 성과 평가 및 지원 방안에 관한 연구>, 2018). 병원 문은 늘 열려 있다. 하지만 난민 신청 후 6개월까지 취업이 불가능하고 생계비 지원 신청과 수급도 쉽지 않은 부모의 경제 여건상, 난민 아동에게는 병원 앞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15쪽 <표 5> 참조).

교육권도 마찬가지다. 난민법과 초중등교육법상 난민 아동도 국내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수 있다. 아직 무상교육이 도입되지 않은 고등학교도 수업료 등을 내면 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난민 부모의 의지와 형편에 달렸다. 아이를 꼭 교육시키겠다는 의지로 부모가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사정하고 부탁해야 학교장이 입학을 허락해준다. 학교에서 다른 학부모 반대 등의 이유로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도 딱히 제재 방안이 없다. 학교들은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많이 난감해하는 편이다. “우린 외국인 학생이 없는데” “애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며 난민 아동 입학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이 안 된 아이를 받는 게 낯설고, 무슨 서류를 받아야 하는지 몰라서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난민 아동의 교육권은 종종 다른 권리의 부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올해 한국에 입국한 난민 아동 마흐무드(11)는 동생들과 함께 편도 1시간45분 거리의 초등학교를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갈아타며 통학한다. 부모가 취업 허가를 받아 돈을 벌어 월셋집이라도 얻으려면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숙소는 최대 숙박 기간이 한두 달밖에 안 된다. 임시 숙소를 옮겨 다닐 때마다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 또 학교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면 멀더라도 처음 다니던 학교로 통학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주거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아동의 실질적인 교육권이 흔들리는 것이다.

법적으로 난민 신청 아동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기회에 유아교육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고 싶으면 월 최소 30만~40만원의 원비나 보육비 전액을 내야 한다. 한국에서 보편복지 정책으로 시행되는 영유아 보육비·양육수당 지원을 난민 신청 아이들은 받을 수 없다.

초등학교 진학 전까지 일반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와 지내며 언어와 사회성을 익혀도 그만이다. 하지만 난민 아동은 다르다. 이들에게 유아교육이 주어지느냐의 여부는 실질적인 생존과 발달을 좌지우지한다.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부모와 집에만 있게 되면 자신이 사는 곳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기회가 없다. 출발선에서 뒤진 아이는 나중에 법적 난민 인정을 받더라도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다. 나디아나 모린처럼 어린이집에 간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한국 문화와 정서를 습득한다. 어린아이들을 맡길 곳이 있어야 부모가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부모가 경제활동을 해야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그 선순환의 고리를 알기에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보호 단체들이 난민 아동 보육비 지원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간의 지원은 한계가 분명하다. 후원금에 의존하는 재정도 한정적일뿐더러, 주로 성향이 적극적이고 외부와 교류할 의지가 있는 난민 아동 부모만이 지역센터와 연계돼 보육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지원을 받는다. 언론이 접촉 가능한 가정도 주로 그렇게 바깥세상과 긴밀히 소통하는 집에 그친다. 시민단체, 종교기관의 후원은 모든 곳으로 뻗어나가지 못한다.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한 난민 가정의 아동이 정확히 얼마나 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알지 못한다.

■ 난민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6월20일 ‘국내 난민 아동 지원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유엔 설립 후 최초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의 난민’이었습니다. 유엔 한국 재건단(UNKRA)은 구호 물품 지급뿐 아니라 집 없이 사는 한국 피난민을 위해 집을 지어주었고, 노천 영어 교습소를 열어 학구열에 불타 있는 피난민 학생들에게 영어를 비롯한 각종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중략) 당신이 난민이 된다면, 하루아침에 모든 선택은 삶과 죽음에 직접 관련된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어느 누구도 난민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 경기도교육청이 제작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다. 난민이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정규 교육과정이다. 올해 경기도 내 학교 8곳만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채택해 가르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행정소송, F-2 비자… 실제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이런 어렵고 복잡한 ‘어른의 언어’에 난민 아이들의 마음은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난민 인정 소송에서 져도,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어도 아이는 꿈이 있고 친구들과 재밌으면 인생이 즐겁다. ‘향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난민 아동 54명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은 ‘아이의 언어’로 답했다. “공부를 하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어서” “친구들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맛있는 게 있어서” “사계절이 있는 한국 날씨가 좋아서” “한국이 야구를 잘해서” “남산타워가 있어서” “문방구에 좋은 것을 파니까”…(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난민 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 2017).

난민 아동들이 느끼는 가장 큰 상처는 또래 친구들에게서 당하는 차별이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니가 한국에 있는 게 망신이야” “이 흑×아, 병×아, 꺼져, 이 흑돼지야” “왜 살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니?” 지난 6월20일 열린 ‘국내 난민 아동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한 한 난민 여고생은 학교 책상 위에 빼곡히 적혔던 이런 무서운 말을 기억했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는데도 부모가 쓰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익숙하고 한국 찌개나 탕 음식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 아이는 사람들 앞에 나서 직접 쓴 발표문을 또박또박 읽었다. “여군이 되어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 나라가 계속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내고 싶습니다. 신기한 게 가나의 난민 캠프에 있을 때는 꿈이 없었는데, 한국에 오고 나서 꿈이 생겼어요. 함께 있으면 즐거운 나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변의 좋은 이웃과 지금처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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