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우리 안의 보노보 침팬지

침팬지는 초기 인류 모델로 가장 설득력 있게 등장한다. 수컷 연대, 집단 사냥, 집단 폭행 등은 현대 인간의 공격성과 닮아 보인다. 하지만 ‘보노보’ 침팬지에게서는 다른 경향이 나타난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11월 10일 토요일 제581호
댓글 0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8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인간의 여명(Dawn of Man)’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약 10분 동안 계속되는 이 장면에서는 시커먼 털로 뒤덮인 유인원이 인류의 조상으로 등장합니다. 침팬지처럼 생긴 이들은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맹수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집단끼리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 뼈를 발견합니다. 슈트라우스의 연주곡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인류 조상은 뼈를 사용하여 동물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됩니다. 인류의 조상은 드디어 두 발로 걸으면서 커다란 뼈를 들고 다닙니다. 뼈를 사용하지 못하고 아직 네 발로 다니는 집단과 맞부딪치자 두 발로 일어선 유인원은 뼈를 휘둘러서 상대를 죽이고, 쓰러진 이를 돌아가면서 뼈로 난타합니다. 네 발로 걷던 이들은 도망가고, 손에 뼈를 들고 두 발로 선 인류의 조상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면서 뼈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립니다. 던져 올린 뼈는 인공위성이 되어 지구를 돕니다. 매우 강렬한 장면입니다.
ⓒGoogle 갈무리
보노보 침팬지가 서로 입을 맞추는 모습. 보노보에게서는 교감을 위한 섹스, 혈연을 넘어선 사회성 등이 보인다.

인류가 자랑하는 문명의 이기는 침팬지처럼 생긴 인류의 조상이 뼈로 만든 단순한 도구에서 기원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구의 기원은 바로 살상무기로 시작했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류 조상은 폭력적인 유인원의 모습입니다.

큐브릭 감독이 영화를 만들 당시 고인류학계는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유인원을 인류의 조상으로 가정한 ‘킬러 유인원 가설(Killer Ape Theory)’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킬러 유인원 가설은 이제 지지받지 못하지만 이 가설에서 그려내는 초기 인류의 모습은 고인류학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끈질기게 이어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곳곳에 그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1950년대에 제시된 킬러 유인원 가설

킬러 유인원 가설은 레이먼드 다트가 1950년대에 제시했습니다. 다트는 타웅 아기(Taung Baby: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를 발견한 고인류학자입니다. 다트는 1920년대에 타웅 아기를 발견하여 최초의 인류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최초의 인류로 여겨지던 필트다운인에 가려져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조그만 두뇌의 볼품없는 타웅 아기에 비해 큰 두뇌와 큰 치아(이빨)가 있던 필트다운인은 최초의 인류가 위협적인 존재였음을 시사합니다. 아마 우리가 원하던 ‘멋진 조상’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필트다운인이 가짜임이 판명된 1950년대에 다트는 컴백을 합니다. 그동안 축적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화석을 통해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으며 뼈, 이빨, 가죽 등을 이용해 사냥하던 위협적인 존재였다는 킬러 유인원 가설을 내놓습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위협적인 포식자로서 기원했다는 킬러 유인원 가설은 <아프리카 창세기(African Genesis), 1961)> 등 잇단 대중 과학서를 히트시킨 로버트 아드리를 통해 영향력 있는 인류 기원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1968년에 개봉한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킬러 유인원 가설에서 모델로 삼은 침팬지는 오랫동안 고인류학에서 초기 인류의 모델로 사랑받아왔습니다. 초기 인류는 현재 살아 있지 않습니다. 멸종한 그들은 단지 뼈와 치아만이 극소수의 화석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뼈와 치아 조각으로 살아서 숨 쉬던 생물체의 모습을 그려내려면 모델이 필요합니다. 현대에는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임이 밝혀졌습니다. 침팬지는 초기 인류의 모델로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인간과 침팬지를 비교해서 발견하는 공통점은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이 가진 특징이라고 볼 수 있죠. 그 공동 조상에서 분리되어 내려온 것이 초기 인류이고요. 마치 저와 제 사촌을 비교해서 우리 조부모를 추정해보는 것과 비슷합니다(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침팬지가 인간보다 고릴라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도 침팬지는 초기 인류의 모델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다른 유인원은 생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포획과 사냥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던 고릴라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인간에게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서커스와 동물원에서도 인기를 누린 침팬지는 인간에게 친숙했습니다. 그렇지만 침팬지와 같이 살면서 그들의 자연 상태를 연구한 제인 구달 덕분에 침팬지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침팬지의 모습은 공격적인 수컷입니다. 그런데 암수의 몸집 크기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수컷끼리의 경쟁이 심할 경우, 몸집이 큰 수컷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컷 간의 경쟁이 심할수록 수컷의 몸집이 평균적으로 커지고 암컷의 몸집과 차이가 커집니다. 암수의 몸집 차이를 보면 수컷끼리의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죠. 수컷 간의 경쟁이 치열한 고릴라는 암수의 몸집 차이가 상당해서 수컷이 암컷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이상 큽니다. 고릴라는 수컷끼리 경쟁에서 이긴 소수의 수컷이 비로소 가임기의 암컷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의 공격성은 같은 집단의 수컷끼리 경쟁하는 데 쓰이지 않습니다. 침팬지의 경우 수컷 간의 경쟁이 심하지 않고 수컷끼리 연대를 이룹니다. 침팬지 수컷은 태어난 집단에 머무릅니다. 암컷은 성숙하면 태어난 집단을 떠나 새로운 집단에 합류합니다. 그럼으로써 근친 교배를 제어합니다. 침팬지 집단의 수컷은 서로 친연 관계를 이루고 연대합니다. 수컷 연대는 무리를 이루어 집단 사냥을 하기도 하고, 다른 집단의 일원을 표적으로 삼아 집단 폭행을 가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암컷을 폭행하며, 반항하는 듯한 암컷에게 강제로 교미를 하기도 합니다.

친연 관계가 있는 일원끼리 연대를 이루어 서로 챙겨주는 모습은 진화생물학에서 해밀턴의 법칙으로 어렵지 않게 설명됩니다. 해밀턴의 법칙은 친연 관계에 있는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내용입니다. 언뜻 자기희생인 듯 보이지만 자기가 사라져도 유전자는 퍼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침팬지가 수컷 연대를 통해 집단 사냥을 하여 사냥감을 나눠 먹는 행위 역시 친연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갈등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수컷들은 연대하여 공격을 통해 해결합니다. 수컷들은 암컷을 괴롭히고 강제로 교미하며 그를 위해 유아 살해도 불사합니다. 침팬지 수컷에서 보이는 집단 사냥, 집단 폭행, 동종 살해, 강제 교미 등은 초기 인류에 대한 가설을 세울 뿐만 아니라 현대 인간의 폭력성, 특히 강간과 연결하게끔 했습니다. ‘폭력은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명제가 힘을 받게 된 것입니다. 리처드 랭엄은 저서 <악마적인 수컷(Demonic Males), 1996)>에서 남성 우위 사회 및 폭력적인 남성성은 500만 년 동안 수컷이 수컷다움을 행사하는 역사의 지속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보노보는 느긋하고 평화적

그런데 알고 보니 침팬지만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계통이 아니었습니다. 침팬지속에는 두 종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보통 침팬지(Pan troglo-dytes)이고, 또 하나는 보노보 침팬지(Pan paniscus)입니다. 보통 침팬지(‘침팬지’)와 보노보 침팬지(‘보노보’)가 계통적으로 갈라진 것은 150만 년 전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침팬지 계통이 인류 계통과 갈라진 것이 500만~800만 년 전이니까 그보다 훨씬 뒤 침팬지 내에서 계통이 갈라진 셈입니다. 인류의 처지에서 보면 둘 다 똑같은 사촌입니다. 보노보보다 보통 침팬지가 더 가까운 것도, 더 먼 것도 아닙니다.

보노보에 대한 연구는 뒤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침팬지보다 앞에 나서지 않고 공격적이지 않아 인간의 관심을 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노보의 연구 결과는 알면 알수록 흥미롭습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침팬지가 공격적이라면 보노보는 평화적입니다. 침팬지는 수컷 연대로 유명하지만, 보노보는 암컷 연대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노보의 암컷은 친연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보노보 역시 암컷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고 수컷은 태어난 집단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수컷들끼리 친연 관계에 있습니다. 암컷은 서로 친연 관계가 없는데도 연대를 맺습니다. 보노보 암컷 연대는 늙은 암컷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이들의 연대는 특별히 수컷이 젊은 암컷을 공격할 경우 찾아가 보복성 공격을 합니다.

침팬지가 폭력적이라면 보노보는 느긋하고 평화적입니다. 침팬지 사회는 수컷이 주도하면서 갈등과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 공격합니다. 보노보의 저력에는 교감을 위한 섹스가 큰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보노보는 갈등 상황에 처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스를 합니다. 먹을 것이 생겨서 즐거워도 섹스를 합니다. 새로운 집단을 만나도 섹스를 합니다. 이들은 가임기와 관계없이 섹스를 하며, 특히 암컷끼리 서로 비비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동안 초기 인류의 모델로서 인류학계에서는 침팬지에게 집중했습니다. 인간 남성의 공격적인 남성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져왔습니다. 과연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폭력성, 동종 살해 등이 침팬지에게서 보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교감을 위한 섹스, 혈연을 넘어선 사회성 등은 보노보에게서 보입니다. 침팬지와 보노보 중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유용한 모델일까요?

침팬지도 보노보도 인류의 조상이 아닙니다. 인류가 500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만큼 침팬지와 보노보 역시 그들의 역사를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도, 평화적인 모습도 모두 인류 안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