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여 명이 빠져나가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공연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 훌쩍대며 사람들의 뒤통수로 빽빽한 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걸음을 떼는 와중에 본의 아니게 뒷사람의 전화 통화를 엿들었다. “응, 여보. 이제 끝났어. 애들은? 다 자? 그래 고생했어….” 공연장에 온 그가 보낸 이 하루가 얼마만큼의 큰 위로와 휴식이었을까, 뭉클했다.

17년 만의 콘서트였다. 10월14일 ‘2018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 Concert’에 다녀왔다(상표권 문제로 H.O.T.라는 그룹명을 공식적으로 쓸 수 없었다). 어렵게 표를 구해놓고도 마지막까지 가기를 망설였다. ‘오빠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을 하거나 기량이 예전 같지 않으면 소중한 추억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무대에 선 가수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여러분이 실망하실까 봐 정말 노력했다”라고 말하던 장우혁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다섯 멤버 모두 ‘현역 아이돌’ 같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17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최고의 가수’ 자리에 그들의 이름을 놓는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추억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에 존재해줘서, 팬으로서 고마웠다.

멤버들은 팬을 ‘소녀’나 ‘여자’ 혹은 ‘엄마’로 싸잡아 대하지 않았다. 공연 중 객석과 나누는 대화는 정중했고, 기다려준 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은 덕분에 정확하게 객석에 도착했다. 공연 기사를 전하는 언론의 구태의연함이 도드라진 까닭이다. 물론 공연이 열렸던 잠실주경기장 입구에는 미아보호소 부스가 설치되거나 가족이 함께 온 관객이 눈에 띄었다. 실제 많은 팬들이 기혼자가 되었고, 자녀를 두기도 했다. 나 역시 공연이 끝나고 귀가를 알리는 대상이 엄마에서 짝꿍으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팬덤 전체를 ‘엄마 부대’니 ‘며느리 부대’ 같은 말로 뭉뚱그리는 건 얼마나 손쉬운 방식인가. “아이는 어쩌고 왔느냐?”라든지 “시댁이 허락해주던가?”라는 질문에는 질문자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편견과 힐난이 담겨 있음을 이제는 알 때도 됐다. 30~40대 여성이라면 응당 결혼하고 엄마가 됐을 거라는 편견이야말로 ‘추억’이 되어야 할 그 시절의 유물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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