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권리 측면에서 ‘출산 과정’을 본다면
최근 들어 병원 안팎에서 ‘인권 분만’ 이야기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자연주의 분만에는 추가비용이 들고, 하는 곳도 드물다. 무통주사를 맞거나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데는 수가가 책정돼 있지만, ‘하지 않는’ 방향의 상담은 시간이 많이 들면서 수익도 내지 못한다. 병원 처지에서도 선택지를 나열하고 결정과 책임은 환자 몫으로 돌리는 수준에 머무른다. 국내 최대 산부인과 병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 위기에 몰리고, 산부인과 지원자는 점점 줄고 있다. 내가 속한 종합병원도 분만실을 운영할 인력이 없어서 분만을 시행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의 경험을 의료인이 조력하는 출산을 위한 인식도 문화도 제도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굴욕 3종 세트’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분만실에서 관행적으로 진행되는 제모, 관장, 내진을 뜻한다. 여기에 출산 순간 질구가 찢어지지 않도록 회음부를 미리 절개하는 회음절개도 더해진다. 물론 각각 이유가 있다. 제모는 회음절개 후 꿰맬 때 염증 감소를 위해, 관장은 감염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내진은 진행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진행된다. 회음절개의 경우 분만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질 입구가 충분히 이완되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한국 분만 시스템에서는 촉진제를 쓰는 데다, 원장님 퇴근하시기 전에 시간도 맞춰야 하니, 충분히 질 입구가 늘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아기를 뽑아내려면 회음절개를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의료진의 편의와 안전(다른 말로 ‘방어 진료’)의 이름으로 ‘굴욕’이 무마된다. 이러한 의료화 과정에서 모성 사망률이나 신생아 사망률이 감소한 성과도 분명하지만, 환자 권리 측면에선 부작용도 만만찮다.
최근 한 축구선수의 자서전으로 논란이 된 무통주사에 이르러서야 산모는 그나마 ‘선택지’ 하나를 갖는다. 2007년 미국에서도 한 유명 조산사가 출산 시 고통이 엄마와 태아의 유대관계를 높인다며 무통주사를 반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생리통을 겪으며 생리를 해야, 고통을 느끼며 출산을 해야 여성이나 엄마가 될 자격이 생기는 걸까. 통증을 회피하는 것은 나 자신이나 아이를 배신하거나 속이는 것이 아니다. 임신은 그 시작부터 이미 통증 이상의 고통과 굴곡이 예비되어 있다. 물론 이를 다 상쇄할 만한 재미와 경이 역시 있다. 그렇지만 보람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출산도, 무통주사도 마찬가지다. 무통주사 외의 옵션(둘라, 마사지, 요가, 침, 호흡과 명상)을 선택하고 준비하기엔 임신 시 단축근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무통주사 처방에 신앙 문제가 고민된다면 기억하자. 하나님이 통증을 주셨다면 진통제도 주셨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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