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교양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9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세 번째 시즌에는 익숙한 얼굴들 사이로 좀 낯선 물리학자가 한 명 등장한다. 김상욱 교수(49·경희대 물리학과)다. “혼자 하는 강의는 곧잘 하는데, 〈알쓸신잡〉처럼 밀도 높은 인문학적 대화가 빠르게 오갈 때, 양자역학으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그러니까 이 물리학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양자역학 이야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전자 입자 하나가 구멍 두 개를 동시에 지나가고, 그런데 또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한 개로 돌아온다는 그 학문.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는데, 그게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다는 그 학문. 인간의 직관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면서 “그냥 물리법칙이 그렇다”라고 말하는, 그 정신 사나운 양자역학 이야기를 예능 프로에서 하겠다고?

ⓒ시사IN 조남진

그의 이력을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는 팟캐스트에 나가서 일반인 상대로 수식 하나 없이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극한의 도전에 기꺼이 나서곤 했다. 최근에 낸 교양서의 목표는 아예 ‘동네 할머니도 이해하는 양자역학’이었다.  

여전히 최전선의 연구자인 그가 양자역학 대중화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팩트나 디테일은 몰라도 됩니다. 과학이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아는 게 우리 삶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물리학자들도 양자역학을 얼마나 믿기 싫어했는데요. 하지만 엄밀한 과학적 방법을 따라 이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오니까, 그때부터는 받아들이거든요. 과학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보다 잘 보여주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원자 레벨이 아니라 고전역학이 작동하는 세상에 산다. 그런데도 양자역학이 우리 삶에 주는 깨달음이 있을까. 이 질문에 김 교수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자역학은 원자의 움직임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동기나 목적이 없다고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저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인간이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양자역학은, 그 가치가 세상의 근본 원리가 아니라고, 가치의 뿌리는 사람들의 합의라고 알려주지요. 그러므로 가치가 인간을 괴롭힐 때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못하게 막는 물리법칙은 없거든요. 양자역학은 허무주의로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보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이 물리학자의 입버릇 중 하나는 “양자역학을 알고 난 후에는 그것을 몰랐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다. 한 시간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양자역학이라는 렌즈를 먼저 낀 사람의 눈에 세계는 어떻게 달리 보일지 궁금해졌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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