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나는 이제야 편지를 써. 누나의 투병 소식을 듣고도 쓰지 못했던 편지를, 이제야 써. 몇 번이나 쓰려고 했는데, 두 줄 이상을 쓸 수 없었어. 너무 슬펐어. 너무 괴로웠어. 괘씸한 동생을 부디 용서해줘.

누나를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올라. 누나의 두 눈에는 그리움이 그렁그렁 들어차 있었지. 한국에 왔는데, 뭐가 그리 그리울까 싶었지. 돌아오고 나서도 그리움이 여전히 생생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지. 생각해보면, 누나는 돌아오던 날에 다시 떠날 날을 가늠하고 있었던 것 같아. 누나가 활짝 웃을 때 속으로는 꺼이꺼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어. 만날 때마다 두 눈은 울컥할 정도로 투명했거든.

누나 기억나? 푸근하고 따뜻한 누나의 성품 덕분에, 첫 만남 때 ‘선생님’이었던 누나는 다음번에 자연스레 ‘선배님’이 되었지. 세 번째 마주할 때에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잖아. 서슴없이,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불러왔던 것처럼. 그 호칭이 불쑥 튀어나와서 나도 놀랐는데, 누나가 “이제야 누나라고 부르네!”라고 말해서 우리 둘 다 환히 웃었잖아. 2011년 겨울이었지. 연희동이었고.

ⓒ시사IN 윤무영시인 허수경은 생전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혼자 가는 먼 집〉 등의 시집을 펴냈다.

누나가 한국에 머물렀던 한 달여의 기간, 나는 누나를 네 번이나 만났지. 그때마다 누나는 근사한 말을 많이 들려주었지. 그 말은 토씨까지 죄다 내 가슴에 맺혔어. “한국 많이 변했지?”라고 물었을 때, 누나는 이렇게 대답했어. “한국도 외국이고, 독일도 외국이야. 이젠 외국이 아닌 데가 아예 없어진 거 같아. 낯설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어. 왜냐하면 독일에 살아도 온전하게 독일어로만 사는 게 아니잖아. 돌이켜보니 내 삶에는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이 늘 혼재되어 있었던 것 같아.”

누나의 고향이 진주잖아. 진주에도 다녀왔느냐고 내가 넌지시 물었을 때,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던 장면이 문득 떠올라.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였어. 단호한 쓸쓸함이랄까. “갔었지. 제일 낯선 데가 바로 거기야. 언제나 고향이 제일 낯설지.” 기억이 많은 공간일수록 나중에 다시 찾았을 때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겠어. 공간이 변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달라졌으니까.

누나만큼 후배 시인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저는 언제나 후배 시인들 만나는 게 가장 특별한 경험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도 무척이나 특별하고요.” 갓 출간된 누나의 장편소설 〈박하〉를 읽는 자리에서 누나는 말했지. 자리에 모여 있던 후배 시인들은 사이좋게 고개를 숙였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누나의 후배여서 더없이 기뻤지.

두 권의 시집을 내고, 누나는 돌연 독일로 갔지. 치밀한 계획 없이 떠났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어.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왜 떠났는지 사유하게 되더라. 그때는 잘 몰랐지.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인간의 유형이 바뀌어야 새로운 형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더라고. 나한테는 그게 자신의 모국어로부터 한없이 낯설어지는 것이었고. 모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적인 모든 상황에서 낯설어지게 될 때, 어떻게든 새로운 형식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

‘그립다’라는 형용사는 현재진행형

누나의 말을 듣고, 나는 누나가 고고학을 공부하러 떠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 누나는 시를 쓰러 간 거야. 누나의 시를 쓰러 간 거야.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없어. 새로운 예술 형식은 한 인간의 유형이 변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유형이 낡아졌다고 느끼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때가 닥쳤을 때, 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거고.” 누나의 얼굴에 후회하는 기색은 없었지. 누나는 단 한 번도 누나의 시를 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페르난도 페소아라는 포르투갈 시인이 있어.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나는 포르투갈어로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나로 시를 쓴다.’ 이 말이 내 경우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가 한국어라는 뜨거운 언어 공동체 속에 있긴 하지만, 결국은 ‘나’를 쓰는 거잖아. ‘나’라는 게 바로 언어지.” 누나가 바로 내 앞에 있는데, 누나가, 누나의 시들이 생각났어. 슬픔 직전까지 갔다가 뒷걸음질하는 사람, 혹은 슬픔 너머까지 갔다가 돌아와 물끄러미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이 그려지기도 했지.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날 우리는 손을 잡고 그네를 타듯 걸었잖아. 여기에서 거기로, 거기에서 다시 여기로. 한없이 낯설어지기 위해.

한국이 그리우면 밥을 먹었다는 누나, 시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삶의 내용이라고 말하던 누나, 한국말을 잊어버리는 게 겁이 나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누나…. 하늘이 열린 날, 누나는 별이 되었지. 그날부터 나는 누나의 책들을 다시 읽고 있어. 누나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누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는데, 역설적으로 기억은 정말 생생하다. 생생해서 좋은데, 생생해서 아프다.

“모든 새로운 감각은 친구야, 친구. 적이 아니라.” 누나가 내 손을 꼭 잡고 저 말을 해줬던 날 기억나? 누나가 독일로 떠나기 며칠 전이었지. 햇볕이 제법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이었어. 바람은 몹시 거세게 불었고. 살가죽은 따듯한데 내장은 춥다고 내가 말했던가? 누나는 내 말에 씩 웃고 저 말을 했지. 덕분에 나는 그날 친구를 한 명 얻었네. 따스하면서 거센 친구, 따듯한데 추운 친구.

그제는 〈너 없이 걸었다〉(난다, 2015)를 다시 꺼내 읽었어. “어떤 시간도 혼자 흐르지 않는다. 어떤 시간도 함께 흐르지만은 않는다. 어떤 시간도 절대적으로 고독하여 기어이 불을 꺼뜨리지 않는다.” 혼자 흐르지도 않고, 함께 흐르지도 않는 그 시간을 떠올려. 혼자 있어도 완전히 고독하지는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완벽하게 충만하지 않은 시간을. 그 시간 어디쯤에, 누나는 있었지.

누나, 거기도 가을이야? 어제는 이렇게 물으며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를 읽었어. ‘이 가을의 무늬’를 노트에 필사하기도 했어.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누나가 다녀간 걸 눈치챘어. 비단 눈치만 챘겠어? 누나를 그리워했지. 누나의 글이 있는 한, ‘그립다’라는 형용사는 현재진행형이야.

사랑하는 수경 누나, 오늘은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05)을 읽었어. 뒤표지 글을 보니 이렇게 끝나더라.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꼭 만나자, 어디에선가. 다시, 반드시.

기자명 오은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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