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휴가 때 강원도 속초에서 삼척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길이 아름답고 평탄해 최고의 라이딩 코스라는 얘기를 익히 들어 별러온 터였다. 폭염 속에서 악전고투했지만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마치 신발을 적시기라도 할 것처럼 가까웠다.

아쉽게도 자전거도로는 해변을 따라 면면히 이어지지 못했다. 종종 내륙의 국도 쪽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바닷가 벼랑이 가팔라서가 아니었다. 재벌이 운영하는 리조트나 직원 전용 하계 휴양소, 군부대나 각종 힘 있는 공공기관들의 연수 명목 건물과 널따란 부지에 가로막혀서였다. 도로는, 대중이 이용하는 혼잡한 해수욕장과 숙박시설은 관통하며 달릴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으로 힘 있는 집단이 웅크린 곳을 통과할 자격은 없었다. 뭇 시선과 발길을 차단한 그곳에서 선택받은 소수는 한가롭게 휴가를 즐겼다. 그들에게 사람에 치이고 바가지요금에 시달리는 휴가지 스트레스는 남의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보다는 소득이나 재산이 훨씬 많을 게 분명한 이들이 제대로 역진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한성원 그림
아름다운 국토를 깔고 앉아 불로소득을 즐기는 이들은 또 있다. 국립공원 내 27곳을 비롯해 도립·군립 공원까지 합친 모두 64곳의 사찰이다. 이들은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관광객에게 1000~5000원을 받는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한 해에 족히 400억~500억원은 되는 돈이다. 개중에는 국립공원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해 사찰에 들를 의사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돈을 내라고 강요해 말썽을 빚는 곳도 있다. 지리산 천은사는 사찰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861번 도로 중간에서 돈을 받는다. 이 도로가 천은사 경내 부지를 통과한다는 명목이다. 나도 지리산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돈을 뜯겼는데 천은사 기와 한 장을 본 일이 없다. 천은사는 성난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낸 두 차례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지만 여전히 길을 가로막고 관광객과 멱살잡이를 하곤 한다. 판결은 소송에 참여한 이에게만 효력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무애와 무소유의 도를 설파했던 부처님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세속의 상식만을 잣대로 삼더라도 낯 두껍기 짝이 없는 일이다. 특정 종교 집단으로서 국가의 명승지에 버젓이 터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황송한 일이 아니던가. 이 절들은 종교단체라고 해서 세금도 내지 않으므로, 관광객이 그곳까지 찾아가는 도로나 편의시설을 건설하는 데 동전 한 닢 보탠 일이 없다. 그들이 들인 비용이라고는 관광객을 위협하려고 고용한 불량배에게 지불한 수고비뿐일 것이다. 조계종은 그동안 벌어들인 막대한 특권 수입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밝힌 적이 없다. 물론 이 소득으로 세금을 낸 일도 없다. 대한민국의 법은, 정부나 지자체도 이런 명백한 불의마저 응징하는 데 무력하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국립공원에 산적이 출몰한다”라는 내용이 올랐겠는가.

헨리 조지는 1877년 3월9일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와 학생 앞에서 경제학이 어째서 이해하기 혼란스러운지 설명했다. 그는 〈영국사〉 5편을 기술한 저명한 역사학자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의 말을 인용했다. “중력의 법칙을 부정하여 금전상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이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도 반대자가 없지 않을 것이다.”

헨리 조지에 따르면 무지에 의해 경제학이나 실물경제 운용이 혼탁해지는 게 아니다. 이해관계와 욕심이 결합하면 억지가 돌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막무가내에 아부해 이득을 누리려는 경제학자는 널렸다. 기득권자들은 입맛에 맞는 이론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결국 경제학은 교과서에서마저 기득권자에게 유리한 곳은 선명하고 불리한 곳은 안개에 휩싸인 듯 어지러운 풍경화처럼 변하고 말았다. 노동자가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려 애쓸 때마다 경제학이란 이름을 가진 궤변이 이를 가로막았다.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 중 일부는 궁핍한 삶을 살도록 하고 일부는 모든 과실과 풍요를 즐기도록 정했다는 신성모독이 경제학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그는 이와 같은 엉터리 이론의 치어리더로 전락한 기독교 성직자를 향해서도 날선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헨리 조지는 경제학이 조금도 어렵지 않다며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담론 가운데 오류가 적지 않다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화로운 마차가 늘어날수록 거지도 불어나는 게 불가피한 현상은 아니며 얼마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는 불로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을 늘려야 비로소 세상을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쳤다.

미국과 유럽의 부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대도시 땅값이 치솟아 다시 지대 추구 욕구가 타오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토지 가격은 전월 대비 0.403% 올라 2008년 8월 이후 11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의 연간 누적 상승률은 2.960%에 달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주택을 가진 미성년자는 2만3991명에 달한다. 그중 4.9%인 1181명이 다주택자였다. 2016년 미성년자 증여 건수가 그 전해에 비해 15.6%나 늘어났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팰리스와 용산구의 한가람아파트 두 채를 소유한 경우 현재 공시가격은 합쳐서 20억원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보유세액을 지금 1200만원에서 800만원이 오른 2000만원 정도 내야 한다. 래미안은 지난해 8·2 대책 이후 7억원이 뛰었다. 17억원이던 아파트 값이 지금 24억원. 한가람아파트도 11억원에서 14억원이 되었다. 초고강도 대책이라고 해봐야 실효세율이 0.5%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1년 만에 가만히 앉아서 10억원을 벌었는데 세금으로 800만원만 더 내라니 고마워할 수준이 아닐까. 뭐니 뭐니 해도 자식들에게 남겨줄 재산으로는 부동산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시가가 백일하에 드러나 있는 아파트 과세가 이 정도다. 이번에 덩달아 값이 뛴 재벌 소유의 비업무용 부동산과 빌딩, 그리고 일반 주택의 토지 공시가격이나 공시지가는 시가의 50%를 한참 밑돈다. OECD 국가의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은 1% 정도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에 ‘백지신탁제’ 도입한다면

전 세계 대도시에서 부동산 값이 치솟으며 사람들은 새삼 헨리 조지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오랜 권위주의와 재벌 중심 체제를 거쳐온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나라에서 경제 전문가들은 세제가 구멍이 많고 낡아빠졌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였던 법과 제도가 누더기처럼 보이게 되었다. 도처에 천은사가 도사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 세계는 지금 21세기에 맞도록 세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했다.

한국에서도 드러나듯이 현행 제도는 지대 추구 제한에 취약하다.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빈부 격차를 줄여야만 한다는 시대 과제에 역행한다. 나이 든 베이비붐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깊은 골짜기를 파놓는다.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젊은이에게서 돈을 빼앗아 보수적인 노인 세대의 주머니에 털어넣는 격이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몰려들지만 내 집 마련은 꿈에서도 이루기 힘들다. 지난번 아파트 값 파동 때 용산처럼 서울의 노른자위 땅에 임대주택을 지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설득력을 얻은 것은 이런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도시에 내 집을 지니고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젊은이들의 자각이 자라면 정치 지형을 바꿔놓을 만한 폭발력을 갖게 될 것이다. 보유세의 확대는 어떤 식으로든 불가피하다.

정부와 여당이 뭉개고 말았지만 이번 정부 핵심 관료들의 집값이 수억원씩 뛰었다는 자유한국당의 지적은 흘려듣기 힘들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관료들에게서 부정의 흔적을 발견하며 한국의 ‘조지스트’들은 고위 공직자의 실수요 이외 부동산에 대한 백지신탁제를 주장해왔다. 정책을 결정하는 공직자의 손이 자기 이해를 위해 굽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다. 신탁 자산은 기본적으로 국가에 귀속되며, 공직자는 임기 만료 시점에 법이 정한 신탁가액 원리금을 받는다. 원리금보다 시가가 올랐으면 차액을 지불하고 부동산을 되찾을 수 있다. 공직 후보는 재산 형성 과정이 위법이 아닌데도 비난받는 억울함을 면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이런 제도를 받아들여야 지대 추구에 과감하게 맞설 동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조세제도는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다국적기업이 실제로 어디서 돈을 버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애플이나 아마존, 그리고 한국의 재벌들은 보이지 않는 자본을 조세회피처에 숨겨두고 어디서나 세금을 너무 조금 낸다. 조세회피처 추적자이며 경제학자인 제프리 색스에 따르면 다국적기업 이익의 40%는 저세율 국가로 옮겨간다. 다국적기업의 수입을 추적하려고 각국의 세법은 점점 복잡해지지만 덩달아 구멍도 늘어나고 있다.

조세개혁은 목적과 규모가 분명해야 한다. 막연히 집값만 잡겠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신성한 노동에 부과하는 세금은 줄여야 한다는 게 헨리 조지의 근본정신이다. 부동산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에서 세원을 짜내는 그만큼 저소득자 근로소득세와 영세 자영업자의 목을 죄는 부가가치세를 낮춰가야 조세 저항을 줄일 수 있다. 그게 소득주도 성장에 걸맞은 정공법이기도 하다. 갑근세 제로 시대. 그동안 소득이 투명하다는 죄로 정부 재정을 거의 떠맡다시피 해온 노동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결코 과분한 보상은 아니지 않겠는가.

참고한 활자: 〈사회문제의 경제학〉(돌베개), 〈특권 없는 세상〉(경북대학교 출판부), 〈이코노미스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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