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기〉를 서점에서 봤다면 저는 아마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표지 그림이 제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호감이 가지 않는 책을 굳이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림책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오늘의 일기〉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날도 표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표지를 넘기고 본문을 보는 순간, 제게 매력 덩어리 그림책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의 일기〉는 알고 보니 진국이었습니다.
누구나 어릴 때 일기를 써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저도 있습니다. 숙제였으니까요. 곧 그만두었습니다. 더 이상 숙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부모님이 시켜서 억지로 그리고 쓰는 일기는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만날 똑같은 하루 일과를 쓰고 그리다가 방학이 되면 잠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의 대가는 참혹했지요. 개학 전날 하루하루 날씨와 사건을 더듬어가며, 한 달치 밀린 일기를 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의 일기〉의 주인공은 다릅니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자명종은 오늘도 어김없이 6시30분에 울렸습니다(〈오늘의 일기〉 본문 중에서).’
이렇게 글만 읽으면 우리 주인공의 일기가 왜 특별한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보통 어린이들의 일기와 다른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정말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와, 이것은 진짜 그림일기!
글을 읽고 나서 그림을 함께 보면 놀랍게도 글에서 알 수 없었던 주인공의 마음이 보입니다. 와! 정말 이것은 진짜 그림일기입니다!
그림을 보십시오. 우리의 주인공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것은 사실입니다. 자명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작고 아담한 자명종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자명종은 옛날 궁궐에서나 쓰던 거대한 징입니다. 어떻게 매일 6시30분에 징 소리가 들릴까요? 그 징을 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요정이기 때문입니다. 램프의 요정 말입니다.
매일 6시30분 자명종 소리에 일어난다는 평범한 일기가, 램프의 요정이 거대한 징을 쳐서 주인공을 깨우는 그림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일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그림책의 묘미입니다.
〈오늘의 일기〉의 주인공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밥 먹고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 갑니다.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일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놀다가 잠자리에 듭니다. 주인공의 일상은 정말 우리의 일상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보통의 우리와는 달리, 아주 특별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소녀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남과 다른 일상이 아니라 남과 다른 마음입니다. 소녀의 행복한 상상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특별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행복한 상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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