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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게 된 그 이름 ‘헨리 조지’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제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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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1970년대만 해도 참 배가 고팠다. 친구들끼리 캠핑을 가서 라면이라도 끓이면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젓가락을 들고 돌진해 사정없이 밀치며 입천장이 까지든 말든 라면을 최대한 목구멍 안으로 빨리 밀어넣으려고 애썼다. 개중에는 코펠에 침을 뱉는 녀석도 있었다. 더러우면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다 퍼먹을 테니.

나이가 들어서도 동물 세계에서 흔한 ‘형제 살해’와도 같은 살벌한 환경에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형제 살해란 한배에서 태어나거나 한 둥지에서 부화한 새끼들끼리 먹이를 두고 다투다가 약한 개체를 물어 죽이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군에 입대해 훔치는 것부터 먼저 배우지 않았던가. 자기 보급품을 잃어버렸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훗날 잃어버릴 것에 대비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야 했다. 훈련소에서는 주변 동기 것을, 자대에서는 다른 소대나 부대 것을 눈치껏 ‘쌔벼야’ 신상이 편했다. 회전이 눈부시게 빨라서일까. 이렇게 서로 크고 작은 보급품을 마구 훔치는데도 ‘군대 경제’는 이상 없이 돌아간다는 게 신기했다.

ⓒ한성원 그림

사회에 진출해서도 직업 세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사람이 진정한 승자는 아니었다.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공급이 제한돼 있어서 값은 오를 수밖에 없는 토지, 특히 서울의 부동산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승패는 갈렸다. 눈에 불을 켜고 주택청약에 가입하고, 현장 추첨을 받으려고 서로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거나 밤샘을 하는 정도는 그나마 합법적이었다. 행정이 전산화되기 전 부동산 담당 공무원 매수, 통장 전매, 명의 도용, 무주택 증명 위조 등 전형적인 부동산 사기꾼이나 저지를 법한 불법행위를 평범한 사람들마저 예사로 했다.

1986년 한국기자협회에서 서울 일원동 기자아파트를 지을 때 상당수의 기자가 주민등록등본을 칼로 긁어 유주택을 무주택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일도 있다. 그렇게 서류를 위조한 기자 가운데 나중에 들통나서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한 사람은 없다. 당시 분양가가 40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일원동 아파트는 지금 실거래가가 20억원이 넘는다. 그때 강북에 오막살이라도 지니고 있던 사람 중에 주민등록등본을 칼로 긁을 만한 용기가 없었던 이들은 지금도 땅을 친다. 기자 사회에서는 특종을 했거나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그때 아파트를 장만한 이가 진정한 ‘위너’라고 말한다.

가방끈이 길고 짧고는 상관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기꺼이 도둑 되기를 불사하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그동안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다 엄격하게 의법 처리했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 지금 국민의 절반은 전과자가 돼 있을 것이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고위 관료 후보자들이 제출한 서류에 얼룩진 적나라한 부동산 투기의 흔적은 그동안 지식인이란 사람들마저 얼마나 열심히 라면 그릇에 가래침을 뱉어왔는지 알려주는 씁쓸한 증거이다. 학벌이라는 제한된 공급에 목을 매는 이상 교육열, 내부 거래로 경쟁을 차단하고 손쉽게 몸집을 불려가는 재벌의 탐욕과 더불어 이처럼 작은 노력을 기울여 크게 보상받으려고 사회 전체가 부패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지대 추구(rent seeking)라고 한다던가.

1860년대 미국 언론인 헨리 조지는 1980년대 한국 기자들보다 훨씬 양심적이었다. 그는 뉴욕을 여행하다 당혹감을 느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부를 자랑했지만 서부 해안가에 비해 훨씬 많은 빈민층을 끌어안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도시에 인구가 몰리며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에서 나오는 모든 이득을 땅주인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땅은 점점 자본이 많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던 지주들이 과실을 홀로 따먹었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는 미국의 건국이념인 자유와 평등이 실현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주에게 목을 맨 숱한 빈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행위는 지주에게 권력을 갖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예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노예 주인에게 주는 것과 같다. 당연히 인권을 논할 계제가 아니게 된다. 자기의 권리를 되찾아 경제적으로 독립한 유권자만이 보통선거를 제대로 치러낼 능력이 있지 않겠는가. 토지세 도입을 기본으로 하는 세제 개혁만이 이런 정치 혁명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그는 믿었다.

그에게 국채와 같은 공공부채나 간접세는 악이었다. 후손에게 빚을 떠넘기는 공공부채나 상품 생산을 하느라 바친 고된 노동에 오히려 벌을 가하는 간접세는 토지사유화가 만들어낸 악독한 두 개의 발명품이라고 그는 비난했다. 중세 봉건시대에는 토지를 신으로부터 위탁받은 영주가 공공비용을 댔지만, 토지가 사유화된 뒤에는 모든 비용 부담이 약자에게 전가되었다. 어느덧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린 공공부채나 간접세가 근대국가의 독재자들에게 전쟁이나 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자금을 댔다. 그는 공공부채를 용인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독립전쟁,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쟁 중 열에 아홉은 막을 수 있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토지세가 모든 매듭을 일시에 끊어버릴 알렉산더 대왕의 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불로소득,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노다지에 제대로 세금을 매기기만 한다면 다른 세금은 필요 없어지리라고 단언했다. 여타 세금을 거둬들이느라 비대해진 정부도 훨씬 날씬해질 것이다. 독재를 지탱하고 정부를 부패시키며 민중을 수탈하는 공공부채와 간접세도 없앨 수 있다고 그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대도시 부동산은 날개를 달았다


신이 모두에게 내린 선물인 토지에서 나온 이득을 소수가 독점하면 독재를 용인하고 정치가 부패하게 된다는 그의 통찰은 정확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 뼈저리게 경험한 일 아니던가.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땅이나 집을 차지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도덕적 해이는 군인이 쿠데타로 번번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문제의식을 무뎌지게 만들고 말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성공한 쿠데타’는 합법이었다. 또한 손에 피를 묻히는 ‘더러운 수고’도 하지 않은 그 후손들마저 당당하게 과실을 누리는 걸 방치 혹은 방조해오지 않았던가.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촛불혁명은 처음으로 정치에서의 ‘지대 추구’를 제대로 징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거의 문화로 굳어져버린, 사회 전반에 만연한 지대 추구 의식을 몰아내는 것이다. 정치 분야와 달리 이해가 상충하는 플레이어가 너무 많아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문턱도 채 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골목 상권을 먹어치우고 갑질에 이골이 난 재벌을 길들이며 평범한 사람들의 뇌리에까지 깊이 각인된 ‘성공한 쿠데타 근성’을 씻어내야만 적폐 청산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토지에 세금을 매긴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담은 헨리 조지의 기념비적인 저작 <진보와 빈곤>은 1890년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전 세계의 지성인이 토지세 하나로 세계가 안은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에 열광했다. 그의 열렬한 팬 가운데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같은 유명인도 있었다. 토지사유제를 완강히 사수해온 보수주의자들마저 그의 논리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쩔쩔맸다.

명성에 비해, 그의 생각은 제도로서 전 세계로 멀리 퍼져나가질 못했다. 노동조합은 토지세보다는 노동자의 권리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다. 정책 입안자들은 스탠더드오일처럼
시장 점유력이 뛰어난 대기업의 주주들에게 축적되는 과도한 이익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2차 세계대전 후 개혁가들은 의료보험이나 공공연금과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건설에 더 열을 올렸다. 수십 년간 조지의 아이디어는 대서양 양편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어느덧 누구나 아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

최근 들어 진보주의자들과 경제학자들에게 묵직한 숙제처럼 남아 있던 그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 상승 기세가 심상치 않은 탓이다.

미국의 오클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대도시 집값은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한 22개 도시(서울은 포함되지 않았다)에서 지난  5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평균 34% 뛰어올랐다. 7개 도시에서는 50% 이상 급등했다. 건축과 모기지론 붐과 함께 터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반동이었다. 경제위기 때 이들 지역의 집값은 평균 22% 하락했다. 샌프란시스코는 42%, 더블린은 62%나 추락했다. 모든 도시가 그때의 최저점에서 평균 56% 올랐다. 14개 도시는 위기 전의 최고점을 한참 추월했다. 평균 45%.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깎아내린 서울의 집값 상승은 예고된 일이었던 셈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호언했지만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 세계 대도시의 부동산 값은 날개를 달았다. 점점 더 대도시로 일자리가 몰리고 인구가 집중하는 등 몇 개의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세제, 금융, 공급 등 모든 분야를 다 건드린 유례없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구닥다리 처방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헨리 조지의 시대처럼 ‘노동 없는 돈벼락’을 맞는 사람이 늘어나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는 형국이다(제579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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