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와 사자가 푸른 언덕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소녀는 사자에게 꽃을 건네며 부탁합니다. 안녕! 우리 집까지 함께 가줄래? 사자는 소녀의 뒤를 따라 걷습니다. 어느 학교 앞을 지나갑니다. 기지개를 켜며 가는 소녀와 달리 거리를 걷던 어른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납니다. 심지어 어떤 어른은 너무 놀라 정신을 잃고 맙니다. 아이들도 제각각입니다. 사자를 반가워하며 달려드는 아이도 있습니다. 물론 아빠로 보이는 어른이 아이를 붙잡고 말립니다. 어떤 아이는 사진을 찍고 어떤 아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맙니다.

주인공 소녀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씩씩하게 집으로 걸어갑니다. 소녀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소녀는 어쩌자고 사자를 데리고 집으로 갈까요?

〈집으로 가는 길〉 하이로 부이트라고 지음, 라파엘 요크텡 그림, 김정하 옮김, 노란상상 펴냄

“집으로 가는 길에 잠들지 않도록 내게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 소녀는 참 이상합니다. 무서운 사자에게 자기 집까지 함께 가달라고 부탁하는 것부터 이상합니다. 소녀는 집으로 가는 길이 사자보다 더 무서운 걸까요? 대체 집으로 가는 길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까요? 여러분도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가던 기억이 있나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소녀는 사자에게 자신이 집으로 가는 길에 잠들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기지개를 한껏 켜면서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는데 소녀는 잠이 옵니다. 소녀는 너무나 피곤합니다.

“우리 집은 아주 멀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해.” 소녀의 말과 행동에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반면 라파엘 요크텡의 그림은 스펙터클한 코미디의 연속입니다. 사자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집으로 데리고 가는 이상한 소녀 때문에 거리마다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는 모습이 아주 볼만합니다. 만약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 본다면 이렇게 신나는 그림책이 없습니다.

아주 이상하고 가슴 찡한 그림책

독자들은 자꾸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우리 집은 아주 멀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해….’ 수수께끼 같은 소녀의 말들이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맞춰집니다. 소녀는 집에서 한참 먼 곳에 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을 하러 온 것 같습니다. 일을 마친 소녀는 당연하게도 피곤해서 잠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에게는 머나먼 길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잠에 빠져 쓰러지지 않도록 말동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너무 힘든 자신을 업어주기도 하고 어떤 위험에서도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자 같은 친구 말입니다.

“서둘러.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이로 부이트라고와 라파엘 요크텡이 함께 만든 〈집으로 가는 길〉은 아주 이상하고 가슴 찡한 그림책입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누구나 사자처럼 무서운 친구와 함께 서둘러 집으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단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누군가가 함께할 수 있다면 삶은 꽤 견딜 만하겠지요.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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