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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로 이어진 ‘비동의간음죄’ 논란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대방의 동의에 반하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부작용을 우려한 반대 의견도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2018년 09월 18일 화요일 제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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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의 출발점은 사법 불신이었다. 여론의 호응을 얻게 된 이 운동은 자연히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성범죄 형량을 늘리거나 수사·재판 절차를 피해자 중심으로 개선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8월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비동의간음죄’를 신설해 피해자의 동의에 반한 성관계를 모두 처벌하는 것이다.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 제언은 사실 ‘강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들 파괴력이 있다.

현행 강간죄의 논란 지점부터 보자. 법 조문상 강간죄 성립은 ‘폭행 또는 협박’을 전제로 하는데, 대법원은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를 요구한다. ‘최협의설’이다. 그 정도는 폭행·협박의 내용, 행사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을 종합해서 판단한다(종합판단설). 이 해석에 따라 폭행이나 협박이 동원된 강제적 성행위라도 피해자의 저항 정도나 전후 태도에 따라 처벌하지 못한다는 판례들이 나왔다(<시사IN> 제548호 ‘성폭력 피해자 울리는 멀고 높은 법’ 기사 참조).


ⓒ연합뉴스
8월24일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자는 측은 이 상황을 일종의 입법 공백으로 본다. 백혜련(더불어민주당), 송희경(자유한국당), 이정미(정의당) 등 원내 5당 모두가 비동의간음죄가 포함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부분은 제안 이유로 최협의설을 꼽았다. 이정미 의원의 개정안에는 최협의설의 대표적 부작용이 열거됐다. “가해자의 폭행·협박에 공포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경우, 저항으로 인해 더욱 강한 폭행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여 저항하지 않은 경우, 수치심에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경우 등에는 강간죄 성립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았음.” 해법으로 이 개정안은 강간죄를 ①명백한 거부의사 표시에 반한 강간 ②폭행·협박에 의한 강간 ③저항이 곤란한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으로 나눴다. ①항목이 이른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이라는 비동의간음죄이다.

왜 ‘동의 여부’를 강간 성립 기준으로 삼자고 할까? 지난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이유정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본질’을 이유로 들었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자유다. 폭행·협박이 없어도 피해자가 공포심이나 수치심에 사로잡혀 저항을 하지 못하거나, 진지하게 거부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성교에 이른 경우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있다고 봐야 한다(<비동의간음죄의 신설에 대한 논의>, 2006).”

일각에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최협의설 문제는 최협의설 폐기로 해결 가능하므로, 비동의간음죄 도입이 필수는 아니라는 취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학자 시절 다음과 같은 ‘협의설’을 주창했다. “피해자의 진지한 거부 의사 표시가 있었음에도 폭행·협박을 통해 간음행위를 하면, 반드시 여성의 반항을 억압 혹은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 아니더라도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사법부가 강간죄 조문의 ‘폭행·협박’을 더 넓게 해석하면 입법 없이도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의미다.

ⓒ시사IN 이명익
8월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가 열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비판적 견해이다. 9월10일 내놓은 <형사법의 성편향(전면개정판)>에서 그는, ‘학자로서’ 비동의간음죄 신설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크게 세 가지 부작용 때문이다. 첫째, 여성의 ‘동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폭행·협박과 달리, 비동의간음죄의 ‘동의’는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 둘째,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좌우될 수 있다. 합의 성교 뒤 관계가 나빠져 비동의간음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예상된다. 부부 사이 강간이 인정되기에 이혼 과정에서도 악용될 수 있다. 셋째,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한다. ‘폭행·협박·위력이 없는 남성의 성교 추구에 연약한 존재인 여성은 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남성의 자기 통제를 요구하고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오히려 가부장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

조 수석이 제안하는 형법학과 여성주의의 교집합은 경(輕)한 강간죄 신설이다. 법원이 최협의설을 고집하는 기존 강간죄는 그대로 두고,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간음(또는 유사간음)한 자’도 처벌하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비동의간음죄의 문제의식은 대부분 흡수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한 판사의 질문


하지만 비동의간음죄의 의의가 성범죄 전반의 입증 책임을 분산하는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다. 실제로 폭행·협박이 있었음에도 성범죄의 특성상 폭행·협박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에 초점을 맞췄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본다면 ‘폭행·협박 없는 강간’이라는 개념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쓰인다.

이유정 변호사는 같은 글에서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 대부분을 전가하는 현행 성범죄 사법 체계를 비판했다. “주거침입죄는 침해 사실만으로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다고 추정되고, 피고인이 무죄의 입증책임-즉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점을 몰랐다, 다른 사람 집인 줄 알았다는 점-을 지게 된다. (중략) 반면 폭행·협박이 없으나 진지한 거부 의사 표시가 있는 간음은 어떻게 취급되는가?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시는 묵시적 동의와 구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비동의간음죄가 신설된다면 사법적으로 무엇이 바뀔까. 5월16일 ‘제20차 젠더와 입법포럼’에서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공백을 없애고, 현행 성폭력법체계 내의 패러다임 전환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비동의간음죄에 해당될 수 있는 사례로, 폭행·협박 없이도 피해자가 공포심이나 수치심에 저항하지 못한 경우, 진지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에 반하여 성교에 이른 경우, 폭행·협박·위계·위력이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신체적으로 저항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지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은 명백한 경우 등을 들었다.

반면 패널로 참석한 한 판사의 상상은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피고인이 술집에서 처음 만난 피해자와 술을 먹고 스킨십을 하다가, 전후 관계에 비춰 ‘이 정도면 피해자와 성관계를 맺어도 될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간음행위에 나아갔다. 피해자는 ‘나는 간음행위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고 “이건 좀…” 혹은 “잠시만…” 등 성관계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성관계 후 피해자는 피고인을 비동의간음죄로 고소했다. (중략) 피고인을 형사처벌해야 하는 법관으로서는 우리 사회의 관행적인 남녀 인식의 간극 사이에서 과연 피해자의 동의를 어디까지로 해석하여 피고인을 처벌해야 할지에 관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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