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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라는 마술

나는 최근 들어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화초를 들여다보면 뭔가 조금씩 변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심보선 (시인·경희사이버대학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9월 07일 금요일 제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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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한나 아렌트의 행복론이 떠올랐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행복에 대한 보편적 요구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불행”은 인간이 노동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에게 행복은 노동의 고통에서 임시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보석 상자와 침대, 탁자와 의자, 개와 고양이, 그리고 꽃병 등에서” “작은 행복”을 구하는 현대인을 개탄한다. 아렌트에게 현대인의 소확행 추구는 “커다란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공동체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공적 주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이다. 아렌트에게 소확행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은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복종적인 존재의 표본이다.

그런데 작은 행복이 그토록 무가치한가? 아렌트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먹다가 잃어버린 기억을 회상하고 삶의 무의미를 극복하려는 주인공도 한심하게 여길까? 교도소에서 재소자가 비누를 공들여 깎아 조각품을 만들고, 그것을 자기 존엄의 귀중한 상징으로 여긴다면 아렌트는 혀를 끌끌 찰까?

나는 고고한 판관의 표정으로 현대인을 내려다보는 아렌트에게 반발심이 든다. 물론 많은 경우, 소확행은 말 그대로 소소한 확실성에 머문다. 이때 보상이란 성취 자체가 아니라 이루지 못한 수많은 거대한 꿈들에 대한 비교 우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이거 하나는 확실히 이뤘잖아.”

하지만 작은 것이 작은 것 너머로 이동하는 마술이 일어날 때가 있다. 확실성에서 불확실성이 발견될 때도 있다. 이때 불확실성은 불안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설레는 모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학자 제프리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에서 전체주의에 저항한 시민혁명은 때때로 미시적인 상황들, 예컨대 “저녁 식탁, 서점, 시낭독회”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혁명 같은 거창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최근 들어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겠다는 작심은 없었다. 그저 집안에 초록이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침에 화초를 들여다보면 뭔가 조금씩 변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녀석은 새잎이 돋았고 어떤 녀석은 시들기도 했다. 잘 자라는 것은 더 잘 자라라고, 시든 것은 기운을 내라고 돌봐줬다.

ⓒ시사IN 조남진


나는 화초 덕에 거창하게 말하면 ‘생명’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생명은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것이고, 그 반복 속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차이가 한 개체의 고유성을 빚어내기도 한다.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면 비슷한 형태의 잎사귀가 새로 난다. 그러면서 나무의 모양새가 새로워진다.

화초의 뿌리처럼 얼키설키 확장해간 생각들


나는 매일 아침 생명체의 생명력을 확인하며 일희일비한다. 내게는 아침을 맞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나는 아침마다 전날과 오늘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화초를 키우면서 생명력이란 생명체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쪽으로 이루어지는 데 나의 노력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금세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이어졌다.

“내가 화초 하나는 확실히 살리고 있잖아”라는 자기 위안은 “내가 화초 말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나는 자문자답했다. 나의 능력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려는 억지 시도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내가 화초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조차 오만과 망상에 가까울 수 있다. 이렇듯 숱한 생각들이 화초의 뿌리처럼 얼키설키 확장해갔다.

내게 소확행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요상해지는 것이었다. 작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컸고,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보다 불확실했다. 그 요상함이 나는 꽤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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