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면 동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물원’을 소개합니다. 목이 기다란 기린을 배려한 키다리 식탁, 방귀 냄새가 지독한 스컹크를 위해 강력 탈취 시스템을 갖춘 청결한 화장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수달을 위한 수상 주택, 몇 대가 모여 사는 미어캣을 위한 공동주택…. 각 동물의 특징과 생활 습관을 섬세하게 고려해 설계한 건물과 시설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동물들. 하루 종일 놀기만 해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 부럽기만 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멋지게 집 소개를 마친 동물들이 아직 할 말이 남은 걸까요. 돌아서지 못하고 정면을 바라봅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진주·진경 지음, 고래뱃속 펴냄

이 책에 나오는 동물들은 사람 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그림 속 동물에 쉽게 감정이입이 됩니다. 그림 속 동물의 모습에 점점 흐뭇해지고 ‘나도 저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정색이라도 한 듯 우리를 응시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동물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은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갇혀 있어야 하는 동물원이 아니라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숲과 강이 있는 자연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흠칫 놀랍니다. 우리가 그리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 집〉은 각 동물의 특성과 생활 습관을 고려하여 설계한 가상의 동물원을 배경으로, 동물원 자체의 의미와 동물의 진짜 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이끕니다. 또한 동물원 안 동물의 모습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어쩌면 스스로를 ‘우리(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안에 가두고 억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기자명 김구경 (고래뱃속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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