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준페이가 요시오를 구하고 물에 빠져 죽은 지 10년. 매해 기일마다 어김없이 요시오가 찾아온다. 불편하고 죄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돌아간다. 녀석이 다녀간 뒤 아버지가 내뱉는 말은 올해도 같았다.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준페이가….”

작은아들 료타가 어머니에게 말한다. “요시오는 이제 그만 와도 되지 않아요?” 그때 어머니가 내놓은 대답.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준페이가 죽었으니까. 증오할 대상이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 않아. 그러니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 거야.”

그 마음이 궁금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없이 친절해 보이던 어머니가, 그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단호한 유족으로 돌변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 아들 대신 살아남은 아이를 마주하는 엄마의 심정. 10년이 지나도 누그러지지 않는 미움과 회한. 막연하게 짐작은 갔다. 하지만 아무리 더 짐작해봐도 계속 막연한 채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무참한 마음을 막연하지 않게 헤아릴 재간이, 내게는 도무지 없었던 것이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를 보고 나서, 아주 조금, 덜 막연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주 조금 더 가까이, 그들의 황폐한 시간에 다가서게 되었다.

〈살아남은 아이〉의 은찬이도 다른 아이를 구하고 물에 빠져 죽었다. 6개월 전의 일이다. ‘10년이 지나도 누그러지지 않는’ 미움과 회한인데, 고작 반년이 지났을 뿐이니 오죽할까. 어떻게든 남은 생을 살아내려고, 아빠 성철(최무성)은 몸부림친다. 어떻게든 지난 시간을 붙들어보려고, 엄마 미숙(김여진)은 발버둥친다. 그러다 기현(성유빈)과 마주친다. 은찬이가 구해준 아이. 내 아이 대신 ‘살아남은 아이’. 그때부터 이 세 사람의 관계를 매만지는 영화의 손길은 한없이 섬세하고 사려 깊다. 각본·연기· 연출 그 어디에서도 흠결을 찾기 힘들다.

나에겐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또 다른 작품 〈래빗 홀〉의 주인공도 얼마 전 아들을 잃었다. 너무 힘들어서 물어본다. 역시 오래전 아들을 떠나보낸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그때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 “언제부턴가 견딜 만해지더라고.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조약돌처럼 작아지지. 그래서 때로는 잊고 살기도 해. 그러다 문득 생각나 손을 넣어보면 그 조약돌이 만져지는 거야. 그건 뭐랄까, 아이 대신 너에게 주어진 무엇? 그냥 평생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것? 그래, 절대 사라지진 않아. 그렇지만… 또 괜찮아.”

〈살아남은 아이〉 속 부모는 어떻게 될까? 지금 그들을 짓누르는 바위도 조약돌처럼 작아질 날이 올까? 그들의 아이 대신 살아남은 아이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화가 끝난 뒤 나는 다시 막연해졌다. 그들 모두 각자의 매서운 운명 속에서 끝내 살아남기를, 막연하게 바랄 뿐이었다. 이 좋은 영화가 부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막연하지 않았다. 8월 개봉작까지 챙겨 본 지금 시점에서, 나에겐 이 작품이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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