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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만의 속도로 개척한 또 하나의 길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9월 13일 목요일 제5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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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양한모

요즘 황보를 여러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어 반갑다. 본인은 ‘카페 운영하면서 일 있으면 (방송국에) 나온다’고 말하지만, “카페를 한 달에 네 번만 열었다”라고 한 걸 보면 방송 일감이 꾸준한 것 같다.

그는 매력적이다. 그를 캐스팅하고 1세대 걸그룹 ‘샤크라’로 프로듀싱했던 이상민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황보를 보고 오디션도 없이 발탁했다고 한다. 황보는 그룹의 메인 보컬을 담당할 만큼 출중한 실력자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데뷔한 이래, 그는 가수에서 방송인이 되어서도 여기저기에서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타고난 매력이 그를 찾게 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꽤 내성적인 사람이라 말한다. 여성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무한걸스> 시절에는 개인 클로즈업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면마저, 짜인 방송 흐름과는 다른 자유로운 멘트를 하는 그와 적절히 섞여 ‘일반인(딱히 적절한 단어는 아니나 해당 방송에서 쓴 단어이므로 그대로 옮긴다)’이라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이쯤 되면 무얼 해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적이 있었다. 2013년 그는 방송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홍콩으로 떠났다. 우울한 날에도 편히 울거나 쉴 수 없고 카메라 앞에서 웃어야 하는 직업에 큰 피로감을 느꼈다고 한다. 막상 일을 쉬어보니 인기는 줄었는데 인지도는 그대로여서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사람들이 자기를 모를 만한 곳으로 떠났다. 오랜 꿈이던 외국살이와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영어로 자유롭게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다. 고생은 했지만, 그는 홍콩에서 지낸 1년 반의 시간이 몹시 좋았다고 한다. 최근 남보라와 짝을 이뤄 출연하고 있는 JTBC4의 <비밀언니>에서 이런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황보는 나이 차가 있는 여성 연예인 두 명을 짝지어주고 친목을 도모하는 <비밀언니>의 취지에 딱 맞는 출연자였다. 남보라는 다자녀 가정의 장녀다. 황보는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큰 남보라에게 깊이 공감하면서도 자기 경험을 근거로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는 언니다운 언니였다. 남보라의 속 깊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권위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자기 삶을 후회 없이 살아온 건강한 연장자의 모습이었다. 비단 남보라에게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1세대 걸그룹으로서 그는 보고 따라갈 지표가 흔치 않은 여성 아이돌에게 또 하나의 길이자 분명한 롤모델이다.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 쫓기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

<비밀언니>에서 남보라에게 무얼 하라고 강요한 적 없던 그가 딱 한 번, 지금 빨리 하라며 재촉한 일이 있었다. 엄마에게 사과하는 일이었다. 황보 본인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고 가장 후회한 것이 그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도 미루지 않는다고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도, 마음속의 바람에 귀 기울이고 행동하는 것도. 20대보다 30대가 즐거워서 40대의 자기 삶이 기대된다고 말하는 그의 좌우명은 “If not now, wh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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