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동(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야당 후보의 ‘7·4·7 슬로건’은 모든 정치·사회 문제를 경제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총량적 경제성장이 가져올 국민의 불행을 가리는 숫자 놀음일 따름이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경제사학자이자 뉴라이트 운동의 이론적 지도자인 한 서울대 명예교수가 야당의 정책 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으로 영입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친일 논리로 규정한 후 야당 싱크탱크의 대표자로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는 ‘친일파’를 영입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이것은 과녁을 잘못 잡은 일이다. 오히려 성장의 신화와 대북 보수 담론을 수용·확장하고자 하는 야당의 정치적 선택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를 해석하는 논리 틀인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 당시의 경제성장 덕분에 광복 후의 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역설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그 시기에 경제가 성장하고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식민지 분석에서 ‘방법적 분리’를 감행한다. 그들은 식민 지배하의 모든 정치·사회·문화적 요소를 분석 대상에서 배제한 채, 경제성장만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 자체만으로는 말할 수 있는 바가 그다지 많지 않다. 모든 기본권이 부정되고 어떤 정치적 대표권도 인정되지 않았으며 엄혹한 차별이 지속되었던 식민지 사회에서, 경제성장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일본인 한 명이 한국으로 이주함으로써 한국인 다섯 사람을 외국으로 내쫓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은 일본인도 인정했던 차별의 실례이다. 조선인들의 절대적·상대적 빈곤에 대해서도 그들은 침묵할 따름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를 싱크탱크의 이사장으로 영입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내세우는 슬로건 가운데 ‘7·4·7’이라는 것이 있다. 임기 중에 연평균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야말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실업,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 실업이 한국뿐 아니라 전지구적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이때,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중은 환호한다. 

 조선인 절대 빈곤에 침묵한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이론 틀

난나 그림

정치·사회 문제로부터 경제성장을 분리하고 이를 절대 가치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야당 후보의 경제성장에 관한 공약은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식민 지배하의 경제성장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마저도 분석에서 배제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방법적 분리’라는 수법을 통해 숫자의 마술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사회가 당면한 모든 정치·사회 문제를 경제성장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야당 후보의 경제성장 슬로건이 전제하는 방법적 분리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수행되는 총량적 경제성장이 초래할 불행은 숫자의 마술에서 부터 비롯되는 것 아닐까? 경제성장의 신화가 가진 숫자의 마술을 읽어냄으로써, 식민지 근대화론자를 영입한 야당의 의도를 읽는 것도 대통령 선거의 지형을 읽는 하나의 독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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