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들어 정부의 경제정책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의 이 전환에서 주역은 기업이며 수단은 역시 규제 완화다. 경제 성과가 급한 정부의 고민도 이해하고, 정부와 기업이 소통하는 것이 문제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투자를 위해 정부가 재벌에 기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과거와 비슷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최근 크게 늘어난 재벌의 사내유보금 일부를 투자로 돌리려는 방안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된다. 그러나 먼저, 최근 한국 기업의 투자가 둔화되었는지, 그 요인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나아가 진정으로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6년 -1%를 기록한 후 2017년에는 14.6%로 아주 높았다. 하지만 2018년 2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3.9%로 급락했다. 30대 재벌그룹의 투자는 2016년에는 약 18.1% 감소했다가 2017년에 36.3%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크게 늘어났다.

기업의 투자는 기본적으로 매출과 수익성에 반응하기 마련인데, 자동차·조선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 둔화를 배경으로 매출과 수익성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된다. 실제로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오랫동안 하락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며,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전체의 매출액 증가율도 2013년 이후 뚝 떨어져 2014년에서 2016년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약 10%나 늘어났고, 둔화되던 수익성도 꽤 높아졌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같은 극소수 핵심 대기업을 제외한 여러 대기업들의 매출액, 수익성 그리고 투자가 오랫동안 정체되어왔다는 점이다. 결국 기업의 투자는 지난해 매우 활발했으나 최근 급속히 둔화되고, 대기업들 내부에서도 수익과 투자에서 집중과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규제를 푸는 것만이 과연 능사일까.

규제 완화가 생산성 상승과 혁신을 자극할지도 의문이다. 생산성 상승이 성장의 핵심이며 2010년 이후 한국 경제의 생산성 상승이 둔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이 낸 보고서는 기업집단에 속한 재벌기업의 기업 간 자원배분 효율성이 낮은 것이 주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생산성 상승의 원천은 독점의 억제와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제조업 생산과정 내부의 혁신과 선순환하는 산업 생태계의 확립도 중요할 것이다.

 

 

ⓒ연합뉴스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8월29일 정례회동에서 경제정책을 논의했다.

 


신산업이 중요하다지만 정작 승차 공유 서비스 사업의 규제 완화는 이해 집단의 반발에 직면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최근 급속히 추진 중인 인터넷 은행의 ‘은산 분리’ 규제 완화는 논리적으로 근거가 미약하다. 은산 분리를 유지하면서도 인터넷 은행은 발전할 수 있다. 페이 기술이나 핀테크는 은산 분리의 규제 완화와 별 관련이 없으며 고용 효과도 미미하다. 반대로 은산 분리 규제 완화로 인한 위험은 엄청나게 클 수 있다. 어떤 규제 완화가 경제에 도움이 될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규제만 푼다고 투자와 혁신이 절로 따라올까

신기술과 관련된 혁신의 지름길도 단지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에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다. 〈혁신경제에서 자본주의 하기〉라는 책을 쓴 윌리엄 제인웨이는 혁신의 촉진에 정부 역할이 핵심적이라고 강조한다. 총수요가 부족하면 민간의 투자와 신기술 도입이 정체되는 반면, 민간 부문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슘페터가 말한 혁신의 노력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적극적으로 수요를 관리하고 모험투자를 자극하며 기초연구 개발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여러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듯 기회의 불평등을 낮추고 사회복지와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혁신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규제만 푼다고 투자와 혁신이 절로 따라온다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이해를 반영한 것 아닐까. 정부는 혁신성장을 위해 진정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자문해봐야 한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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