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 벌을 받는 게 틀림없다. 자꾸만 이 땅을 ‘헬조선’ ‘지옥불반도’라 불렀더니, 진짜 지옥 같은 더위가 찾아오지 않았나. 그런데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지옥에서 나타난 슈퍼히어로가 있다. 거대한 덩치에 시뻘건 몸뚱이, 머리에는 뿔이 나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렸으며, 망치처럼 크고 단단한 오른손을 가졌다. 그는 왜 지구에 나타난 걸까?

 

 

〈헬보이(Vol.1)〉 마이크 미뇰라·존 번 지음, 홍지로 옮김, 시공사 펴냄

 

때는 1944년 12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독일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패망이 확실하다. 히틀러는 기적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려 했다. 나치는 초자연현상 팀을 만들어 전세를 역전시킬 어떤 거대한 힘을 불러내려 했다.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섬에서 나치는 프로젝트 라그나로크라 이름 붙인 소환 의식을 거행한다. 1916년에 죽었다고 알려진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이 몸소 소환에 나섰고, 의식은 성공한다. 

그런데 아뿔싸! 지옥에서 무언가를 불러내긴 했는데 위치가 틀렸다. 하필이면 나치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챈 영미 초자연 연구자 팀 앞에 소환된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막 지옥에서 온 것 같은 생김새를 하고는 있지만, 고작 어린아이만 한 크기에 불과하다. 별로 위험한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치에 의해 소환된 아이는 ‘헬보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B.P.R.D.라는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조직에서 살아가게 된다.

설화와 민담을 만화에 접목하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초자연현상을 쫓아다니며 악령이나 퇴치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헬보이.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헬보이가 아버지처럼 따르던 브룸 교수가 수수께끼 개구리의 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개구리의 존재를 추적하던 헬보이는 자신을 

지구로 불러낸 라스푸틴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라스푸틴은 오직 자기만이 헬보이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다면서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라 요구하고, 우주의 심연으로부터 지구를 멸망시킬 일곱 마리 용, 오그두르-자하드를 불러내려 한다.

인간들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모른 채 살아온 헬보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헬보이의 정체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헬보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마블이나 DC와는 결이 다른 슈퍼히어로다. 마블과 DC는 저작권을 회사가 소유하고 작가를 고용해 작품을 만들지만, 〈헬보이〉를 출판한 다크호스는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 그래서 원작자 고유의 스타일이 작품에 훨씬 충실하게 반영된다.

저자 마이크 미뇰라는 각종 설화와 민담, 이른바 오컬트를 만화에 접목했다. 그는 거의 20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해 헬보이 이야기를 완성했다. 특출한 콘셉트와 강렬한 명암의 그림체,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 절제된 연출 등이 어우러진 〈헬보이〉는 슈퍼히어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5권까지 나오고 절판되었다가, 지옥에서 되돌아오듯 재출간되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무사히 완결되기를.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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