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충남 서산의 한 도축장에서 네 살배기 암소가 사람을 들이받고 달아났다. 도축업자 등 두 명이 다치고, 한 명은 숨졌다. 달아난 소는 여섯 시간 뒤 도축장에서 1.5㎞나 떨어진 야산에서 발견됐다. 마취 총을 맞고 잡힌 소는 그날 바로 도축됐다.

가축의 ‘마지막 날’은 참혹하다. 평생 좁은 우리에서 갇혀 살던 소·돼지·닭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낯선 트럭에 올라탄다. 가축에게 트럭은 그 자체로 공포다. 더럽고 차가운 바닥, 차량 진동, 눈높이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등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난 그들의 목적지는 거의 축산물 공판장이다. 맨 먼저 당도하는 곳은 공판장 내 ‘계류장’이다. 도축장에 들어가기 전 가축이 대기하는 곳이다. 이곳은 어쩌면 지옥이다. 먼저 죽어간 동물들의 피비린내, 전기 충격기를 맞고 도축장으로 끌려들어가는 가축의 비명이 뒤섞인다. 이곳에서 동물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도축장 상황에 따라 온종일 기다릴 때도 있다. 죽음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는 운명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 슈퍼돼지가 맞닥뜨린 풍경 그대로다. 이따금 앞서 말한 소처럼 도축장(정확하게는 계류장)에서 탈출하는 가축이 생기기도 한다.

ⓒ시사IN 포토서울 가락동 축산물공판장에서 돼지들이 도축장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하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9조(동물의 운송)와 제10조(동물의 도살방법)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운송 중인 동물에게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급격한 출발·제동을 금지할 것, 전기 몰이도구 사용을 금지할 것 등이다(9조). ‘기절 및 도살’과 관련해서는 ‘가스법·전살법(電殺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10조). 가스법은 이산화탄소를 이용하고, 전살법은 전류를 흘려 기절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복지 도축’에 관한 논의는 역사가 길지 않다. 관련 법 규정에 따라 동물복지 도축장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14년 1월이다. 부경축산물공판장과 김해축산물공판장이 각각 1호와 2호 동물복지 도축장으로 지정됐다. 물론 도축이 동물복지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사육 단계에서부터 수송과 도축까지, 동물복지 기준을 만족해야 고기에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 마크를 붙일 수 있다.

동물복지 도축장으로 지정되는 조건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동물도축 세부규정 고시에 따른다. 전기 몰이도구 사용 금지는 물론이고 하차 시 동물의 추락이나 미끄러짐을 방지할 것, 계류장 넓이를 축종별로 충분하게 확보할 것, 계류 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할 것, 급수기 및 오염물질 제거를 위한 분무·샤워 장비를 설치할 것 등 6개 조항을 충족해야 동물복지 도축장이 될 수 있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사항이다. 그만큼 국내 도축 현실이 열악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사실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돼지의 운송·계류·유도·기절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줄이지 않으면 희고 무른 고기가 생산된다. 일명 ‘물퇘지(PSE:pale soft exudative)’ 현상이다. 육즙이 고기에서 빠져나와 퍽퍽해질 뿐 아니라 무게도 줄어든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생산물의 품질 향상 등의 이유로 도축장에 동물복지 개념을 적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도축장이 72.7%였다. ‘어떻게 하면 돼지가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을까’는 동물보호단체와 축산업계의 공통된 관심사다. 유럽 등 동물복지 규정이 엄격한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동물복지 도축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통계청 ‘도축장별 도축 실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돼지의 경우 전국 71군데 도축장 가운데 4곳만이 동물복지 도축장이다(아래 표 참조). 2017년 전체 돼지 생산량(약 1661만 마리) 가운데 10% (약 163만 마리)만 동물복지 도축장에서 생산됐다.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유다. 

ⓒ시사IN 최예린

‘동물복지’ 시설투자 어렵게 하는 산업구조

문제는 돈이다. 가축을 기절시킬 때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기절법(가스법)’의 경우 설비 도입에 적잖은 돈이 든다. 연간 돼지 도축 수 21만 마리를 기준으로 국산 기기 도입에는 약 6억원, 외국산 기기 도입에는 약 12억원이 고정 비용으로 들어간다(42쪽 기사 참조). 여기에 계류장 면적 확보 비용(3억6000만원) 등도 더한다.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도축장이 수익을 가져갈 수 없는 산업구조는 시설투자를 어렵게 만든다. 선진적이라고 평가받는 해외 도축장은 농장으로부터 돼지를 구입한 뒤에 도축-가공-유통까지 직접 하는 패커(Packer) 형태다. 설비가 좋으면 이익으로 돌아온다. 국내 도축장은 농장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도축만 대리해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좋은 설비를 갖출 유인이 생기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동물복지 도축과 경제성을 모두 확보한 축산업협동조합 소속 도축장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언급한다. 동물복지 도축장은 폭력적인 몰이 방식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시간당 생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협동조합 소속의 도축장들은 회원 농장들의 물량을 받기 때문에 출하예약제를 통해 계류 시간을 조정하고, 미리 생산계획을 세울 수 있다. 동물복지 도축장 지정을 추진하기 전부터 직원 교육을 통해 작업 방식을 바꾼 결과 최근에는 생산성도 보통 도축장의 90%까지 따라잡았다. 부경축산물공판장과 김해축산물공판장 등 동물복지 도축장 4곳 중 3곳이 농협 소속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축산업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국내 최대 닭고기 기업인 하림의 계열사가 경기도 안성에 대규모 도축장을 짓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돼지 4000마리, 소 400마리를 도축할 수 있는 규모다. 수도권 축산물 유통시장을 쥐락펴락할 수준이다.

문제는 하림 측 도축장 예정지 인근인 충북 음성에 이미 농협 도축장이 있다는 점이다. 2011년 서울 가락시장 도축장이 이전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로 자리 잡은 음성 도축장은 수도권 축산물 경매 시세를 좌우해왔다. 하림 측 도축장이 현실화될 경우 기존 도축장의 경영 악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축산 농가에도 하림 측의 지배력이 강해질 우려가 있다. 경기·인천 지역 축협 회원들은 하림이 양돈·한우에까지 사업을 확장하면 국내 축산업의 기업 종속이 심화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한다.

동물복지 이슈와 맞닥뜨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관련 설비를 갖추는 데에 투자 여력이 큰 대기업 도축장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림은 최근 가스법을 이용해 도축한 닭고기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동물복지 사업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장용준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