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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자에 숨겨진 우리 시대의 노동

샛별 배송, 로켓 배송, 신데렐라 배송…. 택배 업계는 무한 속도로 경쟁 중이다. 빠른 배송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하루살이 노동을 양산하는 형태로 굴러가고 있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8년 09월 03일 월요일 제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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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35분 사진 한 장과 함께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03시34분55초, 고객님이 주문하신 신선한 상품을 집 앞에 배달하였습니다.” 지난밤 10시께 퇴근길에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며 주문한 식재료였다. 그 덕분에 아침 식사 걱정을 덜었다. 이 업체뿐만 아니라 다른 온라인 커머스 업체의 배송 속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수와 세제가, 라면과 햇반이 빠르면 반나절 만에 현관문 앞에 놓인다. 소셜 커머스 업체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 배송’을 시작으로 이제는 익일 배송을 넘어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는 ‘신데렐라 배송’까지 택배 업계는 무한 속도로 경쟁 중이다.

물류산업총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연간 택배 이용 횟수는 국민 1인당 39.6건, 가구당 96.1건이다. 1998년 5975만 개에 불과했던 택배 물량은 2016년 20억4759만 개로, 매출액 규모도 1998년 2196억원에서 2016년 4조7444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아래 표 참조). 택배 물량은 35배, 매출액은 21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택배 물량의 60%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 택배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도 지금의 택배처럼 고속버스 등을 활용한 ‘도어투도어(Door to Door)’ 방식의 배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련법 미비로 불법 소화물 취급과 탈세 등 논란 끝에 금지되곤 했다. 1991년 자동차운수사업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일관수송업(일명 택배업)이 제도화됐고, 이듬해 6월 한진이 국내 최초로 일관수송업 허가를 취득하며 ‘파발마’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1997년에는 관련 규제가 완화되어 택배업이 법정 허가 업종에서 해제됐다.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허가 없이도 시장 진입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에는 한때 60여 개의 택배 업체가 난립하기도 했다. 현재는 중대형 16개사로 감소했으며, 상위 5개 택배사(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한진·로젠·우체국)의 시장점유율은 85.5%로 압도적이다. 

급성장한 택배 시장은 열악한 노동환경 위에서 위태롭게 유지된다. 택배업 도입 당시만 해도 택배 기사는 직접고용 형태로 초대졸(2~3년제 대학 졸업) 사원 급여를 기본급으로 각종 수당을 더하면 관리자 수준의 수입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였다. 그러나 현재는 택배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특수고용 형태가 다수를 이룬다. 그마저도 본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는 형식이 아닌, 대리점을 중간에 끼고 있는 다단계 계약(택배사-대리점-택배 기사) 구조다. 예전에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던 기업 간 거래 물량이 다수였던 반면, 기업-소비자 간 거래로 택배 산업이 재편되면서 물량의 불안정성을 대리점 혹은 택배 기사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유지해온 셈이다.

택배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박스)당 평균 단가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택배업 도입 초기 4000원대였던 택배 운임은 1997년 4700원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6년에는 2100원대에 불과했다. 택배 기사는 월급이 아닌 수수료 방식으로 보수를 지급받는다. 건당 운임을 2500원으로 가정했을 때, 대략 800원 정도의 수수료가 대리점에 배분된다. 여기서 부가세(10%, 80원)와 소득세(3.3%, 26원), 대리점 수수료(약 5%, 40원)를 빼면 택배 기사가 가져가는 돈은 한 건에 600~700원 정도에 불과하다. 택배 요금은 단 한 차례도 인상된 적이 없으며 택배 운임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택배 기사는 종전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자발적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7년 서울 지역 택배 기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3시간 이상, 주 6일간 근무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250개 물량을 배송한다. 명절 등 성수기에는 배송 물량이 평균 380개로 치솟는다.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으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3848시간 일한다. 한국의 평균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고, OECD 평균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764시간이다.

‘빠른’ 배송 위해 약한 고리 쥐어짜기

ⓒ연합뉴스
‘지옥의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물류터미널 상·하차 노동은 단기 노동 인력으로 굴러간다.
위는 명절을 앞둔 한 물류센터.

그나마 택배 기사의 불합리한 노동환경은 뒤늦게나마 조사되고, 데이터화되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작 ‘빠른’ 배송은 더 약한 고리를 쥐어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택배업은 ‘꿀알바’라는 이름 아래 틈새 노동시장을 일구고 있다. 이 틈새 노동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하루살이 노동과 ‘제로 아워(zero hours)’ 노동을 당연시하는 형태로 굴러간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5분 대기조’처럼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6% 정도로 집계되는데, 이들을 이른바 ‘제로 아워’ 노동자라고 부른다. 근무시간을 명시하지 않고 고용주가 원하는 시각에 나와 고용주가 원하는 시간만 일하는 고용 형태를 말한다. 최저 근무시간 기준이 0시간일 수도 있다는 의미의 제로 아워다. 한국도 집계되지 않았을 뿐 제로 아워 노동자가 없는 게 아니다. 한 소셜 커머스 업체가 빠른 배송을 위해 도입한 ‘워크맨’(30~32쪽 기사 참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하는 시간을 당일 오전에야 알 수 있다. 

8월6일 택배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감전 사고로 숨진 현장도 마찬가지다. 택배사는 택배 기사와 마찬가지로 상·하차 인력 역시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택배사와 계약한 도급업체가 인력을 모집하고, 일당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른바 ‘지옥의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물류터미널 상·하차 노동은 단기 노동 인력으로 굴러가며, 안전 교육은 쉽게 무시된다.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운수창고통신업의 재해자 수는 4237명으로, 이 중 절반이 자동차운수업 및 택배업, 퀵서비스업에서 발생했다. ‘운 좋게’ 사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근골격계 질환이 다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는 숫자로 잡히지도 않는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고민은 사치라는 듯 세상은 일자리를 얻는 것조차 힘겨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받은 택배 상자에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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