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연 파티에 참석한 한 병사가 술에 취하자 군인 부부는 그를 소파에 재웠다. 부부는 위층으로 올라가 네 살 아들과 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아내는 잠에서 깼다. 술 취한 병사가 그녀의 질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 남편과 아들이 자고 있었다. 아내는 15분 동안 입을 다문 채 누워 있었다.
여러분이 배심원이라고 가정하자. 피고인 쪽 변호인들은 그녀가 남편을 깨워 병사의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었는데도 침묵을 지켰다며 강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을 변호한다. 자, 이 피고인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이다(존 크라카우어, 〈미줄라〉, 2017).
이 사건의 입증은 검찰이 했다. 검사는 피해자인 아내를 증인석에 앉혔다. 검사는 피해자가 상처받지 않게 조율된 질문을 던졌다. “잠에서 깼을 때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했나요?” 검사는 피해자의 결정적인 한마디를 이끌어냈다. “아, 남편이 깨면 안 돼… 이놈을 죽이고 말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네 살 아들이 그 장면을 본다면 아들 인생이 엉망이 될 거 같았습니다. 내 인생도 엉망이 되고 남편 인생도….”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냈다.
114쪽에 달하는 ‘안희정 1심’ 재판 판결문을 정독했다. 이 사건은 민사가 아닌 형사사건이다.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지 않다. 피고인의 유죄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검찰이 과연 얼마나 그 책임을 다했는지 판결문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피고인은 이 사건 이후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관련 정보를 삭제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휴대전화를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피해자는 휴대전화를 증거로 제출했다. 몇몇 대목에서 SNS 문자메시지 등을 삭제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재판부는 이런 인위적인 삭제를 예로 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입법 지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형법에서 ‘정조에 관한 죄’라는 항목이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뀐 게 1995년 12월이다. 1990년대 중반에서야, 성범죄 처벌 규정으로 보호하려는 대상이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뀐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노 민스 노 룰’과 같은 ‘비동의 간음죄’의 법제화가 더딘 사이, 재판부도 밝혔듯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만 업무상 위력의 행사 등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경우 처벌하기 어려운 공백이 발생했다. 공백의 제거는 입법부의 몫이다. 〈시사IN〉은 이번 판결의 파장을 한 번 보도로 끝내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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