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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재판’을 비판하는 세 가지 이유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 나온 첫 번째 판결인 만큼 후폭풍도 거세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8년 08월 29일 수요일 제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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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무죄.” 8월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제기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 10개의 공소사실(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강제추행 5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시작된 1심 선고공판은 30여 분 만에 끝났다. 핵심 쟁점은 ‘위력 행사’ 여부였다. 재판부는 “수행비서 및 정무비서 업무상 수직적, 권력적 관계로 인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지위·직책·영향력 등” 위력이 존재함은 인정했다.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력의 행사, 즉 위력과 간음·추행 사이 인과를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 정혜선 변호사는 판결 직후 “사건의 사회적 의미나 무게감에 대한 고민 없이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원칙에 너무 쉽게 의존해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8월14일 1심 선고공판 직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을 비판했다.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근대 형법과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기본 원리다. 판사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되지 않으면 유죄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또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형벌권의 자의적 남용을 막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해당 행위에 대한 법률이 없다면 범죄가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 재판부 역시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는데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는 입법정책적 문제”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을 비판하는 세 가지 이유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더라도, 판결 자체에 ‘이견’이 발생할 수 있음은 이 틈에서 발생한다. 법은 시대 변화를 웬만해서는 좀체 따라잡지 못한다. 판결 직후 거센 후폭풍 역시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의 지체’를 지적하는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재판 당일 오후 7시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민 500여 명은 이날 재판을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그릇된 성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판결로 규정했다. 특히 이번 재판이 ‘미투 운동’과 관련해 나온 첫 번째 판결인 만큼, 앞으로 열릴 다른 재판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을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여성계는 이번 재판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한다. 먼저,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 과정에서 재판부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통상적’ 성폭력 피해자와 달랐고, 가해자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간음을 당했다는 몇 시간 이후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아 아침식사를 하려고 애쓴 점, 피해 당일 저녁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숍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을 지적하며 피해자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8월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오진영씨(32·가명)는 “재판부가 성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보는지 잘 드러냈다고 본다. 일도, 삶도 다 포기하고 ‘망가진 인형’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괘씸했던 걸까?”라고 되물었다.


ⓒ시사IN 이명익
안희정 전 지사가 1심 선고공판 직후 기자들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는 위력의 범위를 한정지었다는 점이다. 현행 강간죄는 ‘최협의설’, 즉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할 정도의 폭행이 있었는지의 여부로 결정한다(형법 제297조). 검찰은 안희정 전 지사와 피해자 사이 폭력·협박 대신 ‘위력’이 존재한다고 판단해, 형법 제303조 1항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했다. 이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내용으로 낮은 법정형 규정상 대부분 약식기소되어 하급심 판례가 많지 않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해 위력의 범위를 ‘강간 최협의설’과 마찬가지로 폭력·협박에 한정지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위력의 경우 실제적인 저항 행위가 없었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고려해 인과관계를 판단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7월27일 ‘권력형 성범죄’를 이유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재판부는 7월6일 비공개 증인신문 당시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역시 재판 당일 입장문을 내고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간이든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든 성범죄 피해자가 성인 여성일 경우 ‘평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작동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에 대해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라거나, “여성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이 당연하고, 이러한 여성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해석은 오히려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고 나아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은 여성이 독자적인 인격체이기 때문에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 침해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단속하거나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무결한 피해자’는 없다.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샤론 램은 자신의 저서 <The Trouble with Blame>(1999)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이 일부 있다 해도, 가해자에게 현실적이고 완벽한 방법으로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을 기억하자”라고 적었다. 서울서부지검은 8월14일 입장문을 내고 “항소심에서 충실히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1992년 발생한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이 5년여의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승소하며 남녀차별금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규정을 만든 것처럼, ‘안희정 사건’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까.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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