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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물려주는데 꼼수인들 어떠하리

2000년대 들어 목사들은 교회를 노골적으로 세습하기 시작했다. 논쟁이 일면서 몇몇 교단에서 교단 법으로 세습을 금지했지만, 2012년 이후 교단 법을 비켜가는 편법과 꼼수 세습이 빈번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2018년 08월 28일 화요일 제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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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습이 사회적 문제로 처음 불거진 때는 1997년이었다. 그해 충현교회는 김창인 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를 담임목사로 내세웠다. 아들 세습으로 충현교회는 내홍을 겪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에서 세습은 이례적이고 드문 일이었다.

2000년대 들어 목사들은 교회를 노골적으로 세습하기 시작했다. 등록 신자 8만명에 이르는 광림교회가 논란에 불을 지폈다. 2000년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는 아들인 김정석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려 했다. 교계 전체가 들썩였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비롯한 기독교 단체가 즉각 반발했지만, 광림교회는 공개적으로 세습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한국기독교총연맹을 비롯한 일부 단체들도 광림교회에 힘을 실어주는 성명을 냈다. 세습을 둘러싸고 교계는 두 갈래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광림교회는

2001년 3월 세습을 밀어붙였다. 비슷한 시기 구로중앙교회(현 베다니교회) 역시 곽전태 목사의 아들 곽주환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후 10여 년간 기독교계 내에서 세습 반대 움직임은 힘을 얻지 못했다. 수도권 지역과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 세습은 일상화되었다. 대부분 특별한 절차나 편법 없이 아들에게 곧바로 담임목사를 물려주는 식이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교회 세습은 2012년 들어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1997년 아들에게 충현교회를 세습했던 김창인 목사가 양심고백을 하면서다. 2012년 6월 김 목사는 “목회 경험이 없고 자질이 돼 있지 않은 아들을 무리하게 지원한 것은 내 일생일대 실수였다”라는 성명을 냈다. 세습 당사자의 ‘회개’는 다시금 교계 내 세습 반대운동에 힘을 실어줬다. 반발도 만만찮았다. 2006년 아들 김정민 목사에게 금란교회 담임목사직을 넘겨준 김홍도 목사는 신문광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세습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2012년 9월25일 감리교입법의회는 세습금지법을 교단 법으로 통과시켰다. 이전까지 감리교는 개신교 내에서도 교회 세습이 가장 빈번한 교단이었다. 감리교를 시작으로 여타 교단에서도 유사 입법이 이어졌다.

‘교차 세습’ ‘징검다리 세습’ 등 변칙 세습도


세습 시도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2012년 이후 교계에는 교단 법을 비켜가는 편법과 꼼수 세습이 활발해졌다. 소망교회·왕성교회처럼 지교회를 새로 세우고, 이곳에 아들이나 사위가 담임목사로 부임케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규모가 비슷한 두 교회가 서로 상대방 아들을 담임목사로 부임시키는 이른바 ‘교차 세습’도 등장했다.

직계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면 안 된다는 교단 법 조항을 피해가는 방법도 고안됐다. 순천광명교회·전주호남교회 등은 아들 대신 손자에게 물려주는 이른바 ‘징검다리 세습’을 시도했다. 다른 목사에게 잠시 담임목사를 맡긴 뒤, 몇 년 후 자식에게 넘겨주는 변칙 세습도 빈번하다. 2013년 임마누엘교회 김정국 목사가 이런 방식으로 담임목사에 부임했다. 명성교회 역시 아들에게 새노래명성교회를 세워준 후(분리 세습), 아버지가 은퇴하고 2년 뒤 아들이 담임목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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