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간호사 입사 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올해 초 병원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학교 선배 관련 사건이 있었는데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나”와 같은 질문을 했다. 해당 질문을 받은 지원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황스럽고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했는지 질문 의도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병원 근무환경에 대해 외부인 의견을 듣고 개선점을 찾아보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박선욱 간호사가 목숨을 끊은 지 반년이 지났다. 지난 4월 보건의료 및 시민단체 17곳이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울아산병원은 유족과 대책위의 공식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박씨의 어머니 김 아무개씨는 딸의 죽음을 오래도록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섯 달 만에야 딸의 사망신고를 했다. 어머니 김씨는 사망신고를 한 7월10일 서울아산병원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달라고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산업재해 여부도 다툴 예정이다.
사건 직후 유족은 박씨의 죽음이 ‘태움’ 때문이 아닌지 의혹을 제기했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간호사 간 괴롭힘을 가리키는 은어다. 서울아산병원은 태움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경찰은 유족과 동료 등 17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박씨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CCTV 영상을 분석했다. 사망 한 달 만인 지난 3월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폭언, 폭행, 집단 괴롭힘 같은 직접적인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다.
박씨의 죽음 이후 서울아산병원은 내부에 ‘자긍심 TF’라 불리는 조직을 꾸렸다. 정식 명칭은 ‘간호사 교육체계 및 근로여건 개선 TF’다. 현장 간호사 의견을 들어 개선책을 만드는 태스크포스다. 이 팀의 제안으로 서울아산병원은 신규 간호사가 사수 간호사로부터 독립한 직후 원래 돌보는 환자 수의 50~70%만 담당하는 기간을 2~3주 신설했다. 신규 간호사가 바로 독립해 환자를 보는 부담을 줄여주는 조치다. 전체 병동에 교육을 전담하는 간호사 12명도 배치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 현직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새로 만든 2~3주 적응 기간이 개인 근무일로 따져보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노동조건 개선책도 냈다. 서울아산병원은 8월까지 간호사 110명을 늘릴 계획이다. 병원 전체 간호사 3500명의 3% 수준이다. 서울아산병원 2년차 간호사 이지영씨(가명) 부서에는 지난해에 비해 신규 간호사 2~3명이 추가 투입됐다. 그러나 이씨는 “업무 부담은 여전하다”라고 말한다. 인력이 조금 늘어나도 그만두는 간호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력난은 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로 23년 근무하고 현재 노조 상근직으로 일하는 김경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새서울의료원분회장은 “올드(경력자)도 일이 많은데 신규까지 끌어안고 가려니 말 한마디 곱게 나오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인력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규 간호사 김민정씨(23)는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교육을 받고 있다. 김씨는 중환자 2명을 맡았다가 최근 3명을 돌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고 박선욱 간호사도 중환자 3명을 돌봤다. 김민정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 열린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에 모두 참석했다. 김씨는 “그래도 지금까지 힘든 게 내 탓인 줄 알았는데, 박선욱 간호사 사망을 계기로 주변 간호사들도 애초에 중환자 3명을 봐야 하는 구조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병동 특성 반영되지 않는 법적 기준
국회는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직후인 지난 2월27일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업종(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기존 26개에서 육상운송업(노선버스 제외)·항공운송업 등 5개로 줄였지만, 보건업은 그대로 특례업종에 남겨뒀다. 병원도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 중인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특례업종으로 유지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간호 수가 지원을 확대해 병원이 추가로 받는 수익의 70% 이상을 간호사 고용과 처우 개선에 쓰도록 하는 대책 등이 포함됐다. 돈을 더 줘서 사람을 더 뽑게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병원들이 수익을 남기면서도 의료 인력을 확충하지 않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서울아산병원 등을 운영하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2017년 매출 1조8860억원에 당기순이익 789억원을 기록했다. 김동근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의료기관이 충분한 수익을 내더라도 의료 인력의 노동조건 향상에 사용하지 않는 게 문제다. 법적 간호 인력 기준을 높이고 지키지 않으면 처벌해서 간호사들의 노동조건 자체를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중환자실 간호사 1명이 환자를 2명 이하만 담당하도록 법으로 규정해놓았다. 영국은 인공호흡기 적용 환자는 간호사 1명이 환자 1명을 담당하고, 체외막산소화장치(ECMO) 적용 환자는 간호사 2명이 환자 1명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보통 환자 3~4명, 많게는 5명을 맡는다(〈시사IN〉 제546호 ‘나이팅게일의 꿈이 재가 되기까지’ 기사 참조). 법적으로 강제된 간호 인력 배치 기준은 1962년 의료법 시행규칙 제정 이후 현재까지 동일하고(1일 입원 환자 2.5명당 1명),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등 병동 특성도 반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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