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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1호 민원’ 결실 맺을까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4명을 태운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31일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했다. 최근 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결정하고 장비 투입을 위한 예비비를 편성했다.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8월 29일 수요일 제5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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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 정부는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해 심해 수색을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심해 수색 장비 투입 관련 예비비 편성안도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전례 없는 결정이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26일 승무원 24명(한국인 선원 8명, 필리핀 선원 16명)과 철광석 26만t을 싣고 브라질 구아이바 항에서 출발했다. 기착지는 중국 칭다오. 출발 5일째인 3월31일,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20분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했다. 길이 311.89m, 선폭 58m로 축구장 3개 면적을 합친 크기인 거대한 스텔라데이지호가 순식간에 침몰했다.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고 22명이 실종됐다(<시사IN> 제536호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기사 참조).


ⓒ시사IN 신선영
3월31일 광화문에서 열린 ‘1년의 기다림’ 문화제에 참석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가족들은 생계를 버려두고 길거리로 나와 선원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선사나 정부 모두 침몰 원인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서울 광화문 세월호 4·16광장 한구석에 마련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거리 서명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에 민원을 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제1호 민원’이었다(<시사IN> 제551호 ‘그들이 주황색 리본을 달고 있는 이유’ 기사 참조). 그 1호 민원이었던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이 드디어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 1등 항해사 박성백씨의 어머니 윤미자씨는 연일 폭염으로 뜨거운 광화문광장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윤씨는 “오늘이 성백이가 실종되고 두 번째 맞는 생일이다. 오늘 하루 190명이나 블랙박스 수거 요구에 서명해주었다. 많이 늦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아서 정말 감사하다. 블랙박스 수거도 중요하지만 역시 실종자들의 생사 확인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국무회의에서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과 함께한 지난 1년5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스텔라데이지호 취재를 시작한 건 지난해 8월이었다.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6개월이 된 시점이라 가족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경주 공동대표는 당시를 “정말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한계에 부딪혔던 상황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지난해 9월 가족들의 요청으로 우루과이로 취재를 떠났다.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을 맡았던 주체국이 우루과이라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비행기를 탔다. 취재는 난항이었다. 그 와중에 우루과이 선원노조로부터 확인한 것이 “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것이 배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건조된 지 25년이나 된 스텔라데이지호의 구조적 결함이 침몰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구출된 필리핀 선원 2명의 최초 진술이 담긴 영상도 확보했다. 필리핀 생존 선원인 호세 씨의 증언에는 침몰 순간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3월31일 점심을 먹고 난 후 배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가 브리지로 달려갔다. 브리지에 도착하자 다른 선원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배는 계속 좌현으로 기울고 있었다. 항해사는 어디론가 ‘메이데이! 메이데이!’라고 구조 요청을 했다. 기관장은 브리지 문을 붙들고 있었다. 선장의 얼굴은 검은빛이었다. 그러던 중 굉음과 함께 갑판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나는 세탁기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구명조끼의 부력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주위를 둘러봤을 때 배는 이미 침몰하고 보이지 않았다.” 이 영상을 곧장 한국으로 보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공개했다.


ⓒ연합뉴스
8월1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이 최종 결정됐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러 프랑스로, 우루과이로


제2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막으려면 그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사고 선박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해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나 정부 관련 부서는 심해 3000m에 가라앉은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 수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심해의 블랙박스를 수거한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2009년 5월31일 승객과 승무원 228명을 태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한 에어프랑스 447편이 대서양 상공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객기가 추락한 지점은 수심이 3000∼6000m나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레모라 6000’이라는 로봇 잠수정까지 투입해 2011년 7월 심해 3900m 지점에서 가로×세로×높이가 40×20×20㎝인 블랙박스를 찾아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에서 에어프랑스 447편 유가족들을 만났고, 당시 사건 조사관이나 에어프랑스 담당자들도 인터뷰했다. <시사IN> 보도 이후, 내가 찍은 영상을 중심으로 MBC <PD수첩>에서도 ‘스텔라데이지호, 국가의 침몰’ 편을 방송했다. 이후 정부는 가족들과 TF를 구성해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의는 매번 난항이었다. 정부가 남대서양까지 가서 심해 수색을 한 전례가 없는 만큼 처음에는 가족들과 정부 담당자 사이 의견 차가 컸다. 하지만 양측은 인내심을 갖고 회의를 거듭하며 간격을 줄여나갔다. 지난 3월31일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1년을 맞았다. 가족들은 몹시 슬퍼했다. 1년이 지났지만, 실종된 가족들의 생사 여부뿐 아니라 침몰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미 제공
ⓒ김영미 제공
우루과이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를 취재 중인 김영미 편집위원(맨 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브라질 해군본부와 MRCC(해난구조대) 앞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 허영주씨(위 사진 가운데)가 해군 병사들에게 희망 팔찌를 나눠주며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벌이 발견되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가족들은 결단을 내렸다. 직접 우루과이를 가고 싶어 했다. 지난해 현지 취재 당시 내가 우루과이 정부를 상대로 스텔라데이지호 구조와 관련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이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난 4월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허영주씨와 함께 다시 우루과이행 비행기를 탔다(<시사IN> 제554호 ‘다시 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기사 참조). 우루과이 언론뿐 아니라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영주씨는 또 한번 스텔라데이지호 가족의 이름으로 우루과이 정부에 스텔라데이지호 구조 작전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을 했다. 아직 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블랙박스에 기록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실이 중요했다. 선원들의 침몰 직전 순간을 알 수 있고, 또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해 3000m에 가라앉은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에어프랑스 447편 블랙박스를 수거한 이들을 확인했다. 바로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였다.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의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하는 기술이 가능한지 검토하는 공청회에 이들을 초청하고 싶어 했다. 지난 4월 세계적인 심해 수색 전문가인 데이비드 갈로 박사와 윌리엄 랭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에어프랑스 447편의 블랙박스를 수거한 주인공이었다. 두 박사는 2박3일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박완주 의원 등이 주최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 장비 투입 검토 공청회’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참석해 성공적으로 끝났다. 정부와 가족들은 남대서양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심해 수색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청회 뒤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수거를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나는 지난 5월 미국으로 떠났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에서 뽑힌 김재복씨(가명)와 동행했다(김씨의 신상 공개로 받을지 모를 피해를 우려해 가명을 썼다).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한국을 찾았던 데이비드 갈로 박사와 윌리엄 랭 박사를 만나 심해 수색 메커니즘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또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넘버 2’ 로런스 메이든 박사를 만났다. 부소장이자 책임연구관인 그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의 방문 소식을 듣고 다른 일정을 취소한 뒤 면담에 응했다. 그를 만나 “한국 정부가 요청해온다면 우즈홀 해양연구소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적극 검토해보겠다”라는 답변을 들었다(<시사IN> 제561호 ‘스텔라데이지호 찾아 미국 우즈홀을 가다’ 기사 참조).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가족들은 심해 수색 장비가 투입되어도 블랙박스는 수거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나와 우즈홀 해양연구소를 동행한 김재복씨도 “심해 수색 장비가 들어가서 침몰된 스텔라데이지호 사진만 촬영하고 나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블랙박스 수거 없는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9월 심해 수색과 관련해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평가한 뒤 10월 계약을 완료할 계획이다. 빠듯하게 진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대서양에서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하려면 11월~1월 초가 최적기이다. 1월이 지나면 태풍이 잦아서 수색 작업이 어렵다.

심해 3000m 속 블랙박스 수거할 수 있을까


전 세계에서 심해 3000m에서 수색을 할 수 있는 업체는 아주 극소수이다. 스텔라데이지 가족들은 심해 수색의 최고 권위기관인 우즈홀 해양연구소가 수색 작업을 총지휘하기를 바란다. 스텔라데이지호 시민 대책위의 황필규 변호사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사회가) 처음부터 제대로 들어 주었더라면 일이 빨리 진행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가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는 선체 갑판과 선교 두 군데에 장착되어 있다. 이 두 개를 모두 수거해야만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문제는 선교에 있는 블랙박스 수거이다. 유인 잠수정이나 로봇 등이 선체 안으로 진입해, 직접 떼어내야 수거가 가능하다. 또 수거한 블랙박스 분석에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다. 심해 3000m에서 건져 올린 블랙박스를 분석한 경험이 우리나라에서는 전무하다. 허영주 대표는 “제대로 증명된 기술 없이 만에 하나 분석하다가 기록이 손상되면 우리 실종 선원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이 끊어지게 된다. 해외 전문 업체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된 기술진이 붙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부 차원의 이번 결정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진행 과정도 취재해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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