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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30년, 232년…. 11월4일 치러진 미국 대선의 역사적 의미를 상징하는 숫자들이다. 버락 오바마 당선이 시대를 바꾼 혁명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어떤 시대를 바꾸었냐고 물으면 관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8년’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다. 네오콘과 이라크 전쟁, 일방주의 외교, 경제위기로 얼룩진 시대였다. ‘8년의 종말’이라고 하면 미국 민주당이 이른바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클린턴 시절을 그리워하는 뉘앙스가 있다.

오바마의 당선 의미를 정권 교체에 국한시키는 것은 좁은 시야일 수 있다. ‘30년’이란 신자유주의가 창궐했던 기간이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는 미국 사회를 지배했다. ‘30년의 종말’이라고 하면, 루스벨트에서 시작해 2차 대전 이후에도 지속된 케인지언 풍조의 재림을 뜻한다.

시야를 최대로 넓히면 오바마 당선은 미국 건국 이래 232년간에 걸친 백인 통치를 끝냈다는 의미를 지닌다.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오바마는 1787년 채택된 미국 헌법 전문의 ‘더 완벽한 통합’이란 문구를 인용해 명연설을 남겼다. 이 연설을 요약하자면, 미국 헌법은 인종 문제를 정리하지 못해 221년간 불완전한 상태로 남았고, 이 오랜 숙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오바마 당선으로 미국은 221년 혹은 232년 만에 좀더 완벽해지고 격이 높아졌다.


오바마 당선이 던지는 다양한 의미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다. 특별히 ‘40’이란 숫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11월4일 밤 흑인 지도자 제시 잭슨 목사는 오바마 당선의 의미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 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다”라고 말했다. 1960년대는 흑인 민권운동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성해방 운동 등 정치·사회·문화 곳곳에서 진보의 동력이 뜨겁게 분출하던 때였다. 한국 386세대 전성기와 비견되는 미국의 1960년대는 원리주의 복음주의자에게는 ‘끔찍한 시대’이기도 했다.

11월5일 저녁 시민단체 희망제작소와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개최한 미국 대선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반도 전문가 찰스 암스트롱 교수(미국 컬럼비아 대학)는 ‘40년 담론’을 제기했다. “1968년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고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해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대중은 허탈과 허무에 빠졌다.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보수 쪽으로 이동했다.” 뉴욕 타임스 흑인 칼럼니스트인 보브 허버트도 오바마를 ‘마틴 루터 킹+로버트 케네디’로 해석한 적이 있다. 이 두 사람은 ‘1968년의 오바마’였다.

‘40년 담론’은 ‘8년 담론’이나 ‘30년 담론’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클린턴 시대는 부시의 등장으로, 케인지언은 레이건의 등장으로 후퇴했지만, 1960년대 진보운동은 스스로 무너졌다.

1968년은 영웅의 시대였다. ‘정치 영웅을 통한 사회 개혁’이 무너지자 개혁 세력 전체가 몰락했다. 이는 똑같은 68혁명을 일으킨 유럽 개혁 세력이 진보의 에너지를 제도 변화로 승화시킨 것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영웅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후유증도 심했다. 이는 2008년 11월 지금 버락 오바마 지지자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영웅이 사라진 시대의 새 영웅이 되려 한다. 오바마 지지자의 열광은 매케인이나 다른 정치 지도자 팬들과는 양과 질 모두에서 비교가 안 된다. ‘오바마니아’(Obama+ mania)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오바마 유세장은 종교 집회를 방불케 했다. 종교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은 오바마 캠프였다. 그들은 유세장 분위기를 대형 교회 부흥회와 가깝게 꾸미고 가스펠 송을 연상시키는 ‘오바마 송’을 퍼뜨렸다. 오바마 특유의 박자와 운율을 맞추는 연설 리듬은 목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AP Photo1963년 8월28일 흑인 민권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D.C에서 역사적 평화행진을 이끌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11월7일 방송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정치 스타일에 대해 “미국 국민이 안고 있는 여러 고통과 고난을 일거에 해결해줄 것처럼 많은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해 감동을 주는 메시아형 리더십이다”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메시아 현상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반체제의 목소리〉 공동 편집자인 조슈아 프랭크는 “사람들은 마치 오바마가 새로 강림한 메시아인 것처럼 말한다. 핼러윈 시즌에 사람들이 일종의 오바마 좀비처럼 되어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오바마에 대한 열광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1월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하다’는 응답이 47%로 매케인 쪽(29%)보다 크게 높았다. 10월22일 갤럽인터내셔널이 비슷한 조사를 했을 때 미국을 제외한 세계 평균 오바마 선호도가 30%였던 것에 비교하면 한국인의 오바마 사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Reuters=Newsis버락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가 합쳐진 인물로 평가된다. 11월3일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는 버락 오바마.


한국 진보 세력, 오바마에게 큰 기대

특히 한국 진보 세력이 오바마에게 거는 기대는 국내 정치인에 대한 기대보다 더 높아 보인다. 오바마가 내세운 세금 공약은 한나라당이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한 기준으로 보면 명백하게 ‘좌파’로 분류된다. 진보 진영은 오바마 정책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좌파 혐오증을 완화해주리라 기대한다.

미국 대선 직후 벌어진 ‘오바마 좌파’ 논쟁도 이런 맥락이다. 우익 논객 조갑제씨는 11월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오바마를 좌파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에 질세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도 11월5일 ‘미국에 좌파는 없다’라는 글에서 “오바마는 결코 좌파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감이 좌파에 대한 기대감으로 옮아갈까봐 걱정하는 듯 보인다. 한편 주대환 사회민주연대 공동 대표는 ‘오바마는 미국 좌파다’라는 글에서 “오바마가 ‘변화’를 슬로건으로 했던 만큼 앞으로 미국의 사회·경제정책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노선 쪽으로 한발 다가갈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주장했다.

오바마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 투영하는 흐름도 발견된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11월5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쓴 글에서 2008년 오바마 현상과 2002년 노무현 현상을 비교했다. “같은 비주류 출신으로, 변화 또는 개혁의 선봉장이 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선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꽤 화제가 됐다.

 

 

 

ⓒReuters=Newsis오바마는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다른 개혁도 이룰 수 있다. 위는 10월 주가 폭락 때 뉴욕 증권거래소 모습.

물론 노무현과 오바마를 동일시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 상황이 다른 데다 최초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을 노무현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하지만 2002년의 ‘노사모’와 2008년의 ‘오바마니아’는 놀랍도록 흡사한 면이 있다. 인터넷에 기반한 자발적인 대중 동원, 풀뿌리 모금 열풍 등이 그렇다.

오바마를 노무현에 비교하기 시작하면, 오바마 현상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없다. 김종배씨는 같은 글에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질서를 바꾸고 미국의 세계전략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본다”라고 오바마를 향한 미국인의 기대와 오바마를 향한 세계인의 관심을  언급했지만, 그는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속단할 수 없다’라는 ‘유보’의 표현으로 냉정하게 거리를 두려 했다. 그는 결론에서 “‘은마’는 오지 않고 ‘백마 탄 왕자님’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 그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다. ‘한국의 오바마’는 강림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만들어지고 육성되는 것이다. 정치에 ‘메시아’는 없다”라고 썼다.

‘아프가니스탄의 늪’에 빠질 수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이 말은 11월5일 미국 대선 토론회에서 찰스 암스트롱 교수가 오바마의 미래를 두고 한 말이다. 오바마 후보 앞에 놓인 현실은 마냥 장밋빛이 아니다. 4년 뒤 오바마 정부가 지지자를 낙담시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외부 요인일 수도 있고 오바마 스스로 자초할 수도 있다.

 

 

 

 

ⓒReuters=Newsis오바마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위)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도전은 경제위기 극복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을 닮으려 하지만 루스벨트가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금융위기는 이미 실물경제로 전이된 상태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부시 행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남겼다. 만약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조세 개혁과 의료보험 개혁도 맞물려 좌절된다.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할 오바마 참모는 대다수가 빌 클린턴 행정부 인사다. 11월6일 오바마 당선자는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차기 비서실장에 내정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존 포데스타 등을 임명했고 재무장관은 서머스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오바마가 선거 기간 내내 외친 ‘변화’란 클린턴 정부로의 회귀였을까? 이들은 월가에 대한 금융 규제를 완화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던 사람들이다.

중동 문제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는 이라크 철군 의사를 밝혔지만, 정확한 철군 시점이 오리무중일 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는 오히려 병력을 늘릴 계획이다. 자칫하면 아프가니스탄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요청해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예측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 사회 흑백 통합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희망제작소 국제팀장인 홍일표 박사(사회학)는 “오바마가 흑인 혼혈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가 흑인 또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쓰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소수자 우대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백인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경제위기로 불법 체류자에 대한 감정이 나빠진 것은 오바마 후보를 난처하게 할 것이다.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는 여전하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캘리포니아 주는 동성 결혼 금지 법안을 가결했고, 사우스다코타 주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안을 부결했다. 미국 일방주의에서 벗어난다지만, 외려 ‘아메리카’를 외치는 오바마니아들 사이에 애국심과 미국 중심주의는 더 강화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앙정치 경험이 짧은 오바마의 약점을 공화당이 물고 늘어질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연구위원은 클린턴 정부의 사례를 말한다. “1992년 클린턴이 집권하자 공화당은 클린턴 정부의 사소한 문제를 집중 공격하며 부풀렸다. 군대의 동성애자 커밍아웃을 옹호하는 발언 등에서 꼬투리가 잡혀 1994년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 다수를 차지했다. 공화당 의회는 클린턴 정책에 번번이 퇴짜를 놓았고 개혁은 실패했다.”

김응택 숭실대 경제학과 방문교수는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했다고 해서 오바마가 안심할 수는 없다. 남부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 린든 B. 존슨 때처럼 민주당 의회가 민주당 대통령 발목을 잡은 사례는 많다”라고 말했다.

물론 오바마 정부에 충분히 기대할 만한 것도 많다. 케냐·인도네시아 등 다국적 문화 속에서 자란 환경이 보여주듯, 그가 부시 정부보다 유연한 외교를 펼칠 것은 분명하다. 네오콘은 퇴조할 것이고 최소한 MD 문제로 냉전 직전까지 갔던 러시아와의 관계는 회복되리라 보인다. 북한과 직접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신자유주의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세계 최악의 의료보험 제도는 어떤 형태로든 보완될 것이다. 환경친화적 에너지에 대한 연방 정부의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까. 오바마의 모델이 될 만한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첫째는 루스벨트의 길이다. 역대 최고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루스벨트처럼 경제 공황을 극복하고 세계인에게 미국의 비전을 제시한다면 그는 바람직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존 F. 케네디의 길은 불길하다. 아일랜드계 구교도라는 핸디캡을 딛고 젊은 대통령으로 희망과 기대를 모았지만, 1963년 암살로 그의 개혁은 좌절됐다. 미국 흑인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다. 40여 년이 지난 아직도 흑인 가운데는 오바마의 최대 위협은 암살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의 가장 큰 업적은 대통령 당선?

클린턴의 길은 절반의 성공이다. 미국 체제의 근본적 변화까지는 아니지만, 공화당이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경제를 회복시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노무현의 길을 말하는 것은 가장 엉뚱하게 들릴 것이다. 개혁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정책 혼선 속에 말 실수가 적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민심을 잃는다. 2012년에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준다. 기대만큼 큰 실망과 후유증을 진보 세력에 안기는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한 직후였던 2003년 1월, 저술가 고종석씨는 〈인물과사상〉에 쓴 글에서 “(코리안 드림이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가장 큰 업적이라는 평가는 대통령 김대중보다는 대통령 노무현에게 내려질 때 더 적절할지 모른다. 이런 예단 역시 대통령 노무현의 역량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가 대통령이 된 사실을 그만큼 무겁게 여겨서 나온 것이다. 그가 임기 중에 어떤 업적을 쌓더라도 그 업적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비기면 빛이 바래기 쉬울 것이다. 우선 그의 지지자들부터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그가 자신의 임기 중에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순순히 인정해야 한다”라고 썼다.

새 미국 대통령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오바마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고, 그것은 그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바마가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당선 자체의 역사적 의미가 너무나 크고 중하기 때문이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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