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만 벗어나면 비핵화 회의론이 태반이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가 8월2일자 칼럼에서 제기한 지적이다. 북·미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극소수 최고위 인사를 제외하면 워싱턴 외교가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믿는 관리나 핵과학자, 동북아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북한이 올해 들어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서해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왔지만 회의론자들은 좀처럼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8월3~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폼페이오 장관이 “궁극적인 비핵화 시간표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정할 몫이다. 앞으로 몇 주일 혹은 몇 달간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확언했으나 회의론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FP PHOTO8월4일 ARF 외교장관 회의장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대화하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 유력 매체들이 정보 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잇달아 인용 보도하면서 비관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때로는 정보기관들이 같은 정보에 대해서도 달리 해석하고, 이런 상황이 언론으로 새어나가면서 미국 내의 불신과 혼란을 더욱 부추긴다. 정보 관리들이 어떤 정보를 언론에 흘리느냐에 따라 비핵화 분위기가 춤춘다.

지난 7월30일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평양 외곽 산음동의 한 공장에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비밀리에 제조하고 있다는 보도로 비핵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정보 당국이 최근 몇 주일간 촬영한 위성사진 등 증거를 확보하면서 북한이 액체연료형 ICBM을 최소 1기 이상 제조 중이라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상의 출처를 국가지리정보국(NGIA)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 직후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고위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관련 사진과 적외선 영상을 보면 문제의 시설에 차량들이 들락날락하는 건 맞지만 미사일 제조가 얼마나 진행됐느냐 여부는 보여주지 않는다”라며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평가절하했다. 특히 이 관리는 “사진을 보면 북한이 운반 트럭을 덮개로 가리고 있다. 무엇을 운반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는 여러 정황을 근거로 한 추정일 뿐 확정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다. 핵 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박사도 “영상만으론 북한이 실제로 ICBM을 제조 중인지 확인할 수 없다. 사진에서 식별되는 붉은색 트레일러는 ICBM인 화성 15형 부품을 운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화물을 나르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앞서 NBC 방송은 지난 6월 말 ‘복수의 정보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비밀 장소에서 핵무기 연료를 증산했다고 전했다. NBC는 다만 “중앙정보국(CIA) 분석가들은 북한이 핵연료를 증산한 것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라고 전해 관심을 끌었다. 정보의 진원지가 적어도 CIA는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 NBC 보도와 관련해서 “CIA는 논평 자체를 거부했고, 국무부는 확인을 거부했다”라고 전했다. CIA는 내부 부서인 코리아미션센터(KMC: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 총괄)의 앤드루 김 센터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수행했으며, 북한 측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한다고 알려진 만큼 대북 정보 누설에 각별히 신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보 누설 진원지로 자주 등장하는 DIA

반면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방정보국(DIA)은 요즘 북한 정보 누설의 진원지로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최근 CNN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소한 현재로선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라는 DIA 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CNN은 “DIA 분석 내용에 대한 다른 정보기관들의 동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문서가 회람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른 정보기관들도 DIA 분석에 동의할 경우 해당 문서는 이른바 ‘정보 완성품’으로 격상돼 대통령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외교 안보 최고위 실무자들에게 공유된다.

ⓒREUTERS7월30일 〈워싱턴포스트〉가 ICBM을 비밀리에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한 북한의 산음동 위성사진.

현재 미국 연방정부 산하에는 모두 17개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기관은 CIA와 DIA 외에도 감청 전문인 국가안보국(NSA), 국가지리정보국(NGIA), 국가정찰국(NRO), 정보조사국(INR) 등이 있다. 국무부 산하인 INR을 빼면 DIA, NSA, NGIA, NRO 등이 모두 국방부 산하다. 연방정부에 속하지 않은 독립 정보기관으로는 CIA가 유일한데, 산하의 코리아미션센터는 북한 정보의 총집합소로 유명하다(〈시사IN〉 제553호 ‘트럼프를 움직인 CIA 대북 라인 실세들’ 기사 참조). 그밖에 국토안보부 산하에 정보분석실(I&A), 재무부 산하에 테러 및 금융정보국(TFI), 법무부 산하에 국가안보정보국(ONSI), 에너지부 밑에는 주로 핵과학자 집단인 정보방첩국(OICI) 등이 있지만, 대북 정보에 관한 한 CIA 혹은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에서 DIA 등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들이 CIA보다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이를테면 DIA는 북한이 최대 60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는 데 비해 CIA 등 다른 정보기관은 12~20개로 파악한다. 과거 CIA, INR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마크 로언솔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군 정보기관과 민간 정보기관 간에는 전형적인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DIA는 군사 정보 분야에 치중하다 보니 다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IA는 나름대로 많은 증거를 모아 판단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변호사처럼 꼼꼼한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DIA가 기관의 성향으로 인해 과거 한동안 북한의 핵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당시 DIA 국장이던 로널드 버지스 중장은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탄두 미사일 장착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다른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가졌다고 DIA에서 확정한 시기는 버지스 전 국장의 증언보다 12년이나 늦은 지난해 7월이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증대된 만큼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가 업데이트될 수밖에 없고 기관별로 평가가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확정적이지 않은 정보가 공개될 경우 실제 이상으로 사실을 부풀릴 수 있으므로 오히려 혼란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시사지 〈애틀랜틱〉은 최근 북한의 신형 ICBM 개발설과 관련한 여러 기관의 다른 평가를 두고 “같은 정보에 대해서도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너선 폴록 선임 연구원은 “정보 당국의 기밀 누설로 불안감과 정치적 압력, 심지어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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