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지음, 민음사 펴냄

언제 나이를 실감하시는가. 내가 좋아하는 L선생님의 말씀. “예전에는 나랑 동창인 녀석들이 그라운드를 누볐어. 지금은 그 녀석들이 다 감독이 돼 있더라고.” 어르신들께는 민망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 10년쯤 선배인 분들이 쓴, 삶의 피로가 흥건한 시를 읽다가 ‘어어’ 하면서 와락 공감이 되어버릴 때 나이를 느낀다. 20대였으면 ‘왜 이렇게 징징거려!’ 하고 말았을 것을. 시인 허연의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가 그랬다는 얘기다. 첫 번째 시집 이후 13년 만이다. 왜?

“벽을 보고 누워야 잠이 잘 온다. 그나마 내가 세상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다. 세상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밥이나 먹고 살기로 작정한 날부터 벽 보는 게 편안하다. 물론 아무도 가르쳐준 적은 없는 일이다. 여기는 히말라야가 아니다.”(‘면벽’에서)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 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슬픈 빙하시대2’에서)

생업에 시달리느라 시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죄와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고 시와 그만 어색해진 것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유라서 새삼 더 쓸쓸하다. 김훈은 이렇게 썼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그래서 이 시인의 마음에도 슬픈 신경질이 차곡차곡 쌓였던가 보다. 가끔 술자리에서나 폭발할 그런 신경질. 게다가 신경질 한번 부릴라치면 후배는 얄밉게 말한다. “형, 좀 추한 거 아시죠?”(‘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에서)

쓸쓸하다. 이 쓸쓸함이 이 시집에 흥건하다. 그러나 밥을 버는 일, 그거 하찮은 일 아닐 것이다. 밥을 버느라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희생하고 밥을 벌었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의 쓸쓸함에도 마음이 짠했지만 밥벌이의 준엄함을 인정하면서 삶을 견뎌내는 시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일요일’에서) 체념인가 다짐인가. 나는 그냥 다짐으로 읽어버렸다. 이런 시가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나쁜 소년이 서 있다’에서) 다시 ‘나쁜 소년’이 되겠다는 이 오기가 멋지다. ‘밥과 시’가 과연 상극일지라도, 아니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나쁜 소년’ 선배를 볼 때 후배는 막 살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선배님들, 힘내세요. 푸른 잉크 한 통을 다 마시는 한이 있어도.

기자명 신형철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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