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는 텅 비어 있었다. 토스트 가게, 밥버거 가게, 라면 가게 모두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겨 있었다. 24시간 편의점 문에도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방학 기간 휴점합니다. 8월27일(개학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는 공지만 붙어 있었다. 원룸 건물 1층의 우편함에는 주인 떠난 방마다 고지서들이 뭉텅이로 꽂혀 있었다.

지방대생은 방학이 되면 지방을 떠난다. 지난 7월26일 찾은 충남 천안시 안서동은 ‘대학가 공동화’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인근 ㄱ대학 졸업생 서해나씨는 “방학이면 이곳은 완전히 유령 도시가 된다”라고 말했다.

천안시 안서동은 5개 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 밀집지역이다. 2000년 천안시는 시의 자랑거리 80가지를 꼽은 〈천안 기네스북〉에 안서동을 ‘대학이 5개나 있는 세계 최다(最多) 대학 보유 동네’로 기록했다. 학기 중에는 동네에 활기가 흐른다. 대학 캠퍼스 주변마다 형성된 원룸촌에 학생들이 드나들고 정거장에는 셔틀버스와 택시를 타려는 학생들이 빼곡하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대학가 상인들이 비수기 생계 방안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대학가에 인적이 끊긴다. 토스트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 김선의씨는 “학기 중 매출이 100이라면 방학 매출은 10 정도이다. 공과금을 내려고 하루 몇 시간 문 열어두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대학가 내 한 분식집 주인은 방학 기간에 택시 운전을 병행한다.

ⓒ시사IN 신선영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지방대 인근 원룸촌에서는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한 대학교 주변 버스 정류장의 한산한 모습.
지방에서는 ‘스펙’을 쌓을 수가 없어서

대학생에게 방학은 ‘스펙’을 쌓고 학기 중 시도해보기 힘들었던 여러 기회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기다. 그런데 지방대생은 자신이 거주하는 대학가에서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문화예술을 전공하는 서해나씨의 동기들은 방학이면 대부분 서울로 올라간다. 전공 지식을 쌓으려면 미술 전시와 공연 등을 많이 접해야 하는데 천안에서는 그런 경험을 쌓기가 힘들다. 학교에서 인턴 프로그램으로 연계해주는 기업도 모두 서울에 있다. 공부와 진로 준비뿐 아니라 놀이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ㄴ대학에 재학 중인 임 아무개씨는 “방학 중 학교 친구들과 놀 때도 서울에서 만나거나 각자의 본가 중간 지점을 약속 장소로 잡지, 학교 근처에서 만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방학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학기 중 주말에도 도시가 빈다. 천안의 대학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박현정씨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꿰고 있었다. 금요일 3시쯤부터 손님이 줄어든다. 매출이 평소의 30%로 떨어진다. 학생들이 금요일 오전 수업까지 듣고 지역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온종일 손님이 없다가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다시 손님이 든다. 주말에 나갔던 학생들이 돌아오는 덕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말에는 ‘팀플(조별 과제)’을 잡지 않는 게 학생들 사이 불문율이다.  

학교에서 수업만 듣고 떠나버리는 삶은 지방대생에게도 고역이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주로 학교 앞에서 셔틀버스를 탄다. 충청도 소재 ㄴ대학의 경우 죽전·양재·강남·신사·논현 등 서울 주요 지점과 학교를 오가는 셔틀버스의 편도 가격이 7000원, 월 정기권은 75만원이다. 40분에 한 대씩 오는 이 버스에 앉아 있는 시간만 매일 3~4시간이다.

ⓒ시사IN 신선영천안시 안서동 대학가의 24시 편의점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방학 때 남아 있는 학생은 남은 대로 불편하다. 방학 기간 ㄱ대학에 다니는 김 아무개씨는 계절학기 수업을 듣느라 학교 근처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다. 샌드위치 하나를 먹으러 가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김씨는 “살기 위해” 자취방에서 밥을 지어먹었다.

지방대생들이 지방을 떠나는 건 결코 자의가 아니다. 천안에서 나고 자란 서해나씨는 천안 지역에 애착이 있다. 천안 지역의 예술대 학생들과 함께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꾸려보고 싶기도 하다. 서씨는 “지역이 대학이라는 자원을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천안시 안서동을 배경으로 〈안서 아일랜드〉라는 문화 잡지를 발간한 대학생 권용을씨도 “분명히 이 지역 많은 대학들이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다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도 서울 아닌 지역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천안·김세영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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