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생은 방학이 되면 지방을 떠난다. 지난 7월26일 찾은 충남 천안시 안서동은 ‘대학가 공동화’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인근 ㄱ대학 졸업생 서해나씨는 “방학이면 이곳은 완전히 유령 도시가 된다”라고 말했다.
천안시 안서동은 5개 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 밀집지역이다. 2000년 천안시는 시의 자랑거리 80가지를 꼽은 〈천안 기네스북〉에 안서동을 ‘대학이 5개나 있는 세계 최다(最多) 대학 보유 동네’로 기록했다. 학기 중에는 동네에 활기가 흐른다. 대학 캠퍼스 주변마다 형성된 원룸촌에 학생들이 드나들고 정거장에는 셔틀버스와 택시를 타려는 학생들이 빼곡하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대학가 상인들이 비수기 생계 방안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대학가에 인적이 끊긴다. 토스트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 김선의씨는 “학기 중 매출이 100이라면 방학 매출은 10 정도이다. 공과금을 내려고 하루 몇 시간 문 열어두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대학가 내 한 분식집 주인은 방학 기간에 택시 운전을 병행한다.
대학생에게 방학은 ‘스펙’을 쌓고 학기 중 시도해보기 힘들었던 여러 기회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기다. 그런데 지방대생은 자신이 거주하는 대학가에서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다. 문화예술을 전공하는 서해나씨의 동기들은 방학이면 대부분 서울로 올라간다. 전공 지식을 쌓으려면 미술 전시와 공연 등을 많이 접해야 하는데 천안에서는 그런 경험을 쌓기가 힘들다. 학교에서 인턴 프로그램으로 연계해주는 기업도 모두 서울에 있다. 공부와 진로 준비뿐 아니라 놀이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ㄴ대학에 재학 중인 임 아무개씨는 “방학 중 학교 친구들과 놀 때도 서울에서 만나거나 각자의 본가 중간 지점을 약속 장소로 잡지, 학교 근처에서 만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방학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학기 중 주말에도 도시가 빈다. 천안의 대학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박현정씨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꿰고 있었다. 금요일 3시쯤부터 손님이 줄어든다. 매출이 평소의 30%로 떨어진다. 학생들이 금요일 오전 수업까지 듣고 지역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온종일 손님이 없다가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다시 손님이 든다. 주말에 나갔던 학생들이 돌아오는 덕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말에는 ‘팀플(조별 과제)’을 잡지 않는 게 학생들 사이 불문율이다.
학교에서 수업만 듣고 떠나버리는 삶은 지방대생에게도 고역이다. 서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주로 학교 앞에서 셔틀버스를 탄다. 충청도 소재 ㄴ대학의 경우 죽전·양재·강남·신사·논현 등 서울 주요 지점과 학교를 오가는 셔틀버스의 편도 가격이 7000원, 월 정기권은 75만원이다. 40분에 한 대씩 오는 이 버스에 앉아 있는 시간만 매일 3~4시간이다.
지방대생들이 지방을 떠나는 건 결코 자의가 아니다. 천안에서 나고 자란 서해나씨는 천안 지역에 애착이 있다. 천안 지역의 예술대 학생들과 함께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꾸려보고 싶기도 하다. 서씨는 “지역이 대학이라는 자원을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천안시 안서동을 배경으로 〈안서 아일랜드〉라는 문화 잡지를 발간한 대학생 권용을씨도 “분명히 이 지역 많은 대학들이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다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도 서울 아닌 지역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서울 청년, 지방 청년 [편집국장의 편지]
서울 청년, 지방 청년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해마다 이맘때 편집국에 연례행사가 있다. 교육생 선발이다. 한때 인턴 기자로 불렸다. 2006년부터 선발 과정에 관여했다. 선발 공고를 내면 지원서가 수북이 쌓인다. 지원 서류 양...
-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꿔야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꿔야
변진경 기자
서울과 미국에서 문화사회학을 공부하고 2005년 대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에 부임한 최종렬 교수(52)는 처음 학생 MT를 따라갔다가 문화 충격을 받았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펼치고 ...
-
거점 국립대 통합 논의, 학생만 ‘쏙’ 빼고?
거점 국립대 통합 논의, 학생만 ‘쏙’ 빼고?
신동민 (〈시사IN〉교육생)
거점 국립대 통합 논의에 대학가도 달궈졌다. 국립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는 ‘(가칭)한국대 통합’ 이야기로 도배됐다. “지방대니 뭐니 해도 나름대로 한국 최고...
-
지방대생의 ‘문제적 삶’을 말하다
지방대생의 ‘문제적 삶’을 말하다
변진경 기자
“지금까지 지방대생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우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대생은 소수자다.” 지방대생의 삶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