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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도 손잡아요, 잘 가요 호빵맨

지혜로운 정치인은 믿게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노회찬은 그런 말이 가슴에 담긴다는 걸 믿는 이였다. 우리는 그를 배웅하며 새삼스럽게 배우는지도 모른다.

김현 (시인)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8월 16일 목요일 제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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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회찬’이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서,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술집에서, 앉아 있다가, 서 있다가, 걷다가, 뛰다가 저 이름 석 자를 들을 때마다 귀를 기울였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한 사람에 관한 말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악의를 가진 이의 조롱 섞인 말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이 선의를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망자를 회고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노회찬 어록’이라고 불리는,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 유명한 ‘삼겹살 불판론’에서부터 삼성 X파일 사건 폭로로 징역형 판결을 받은 직후에 한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말까지 총정리된 그 어록을 보면서 새삼 정치인은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사IN 조남진
진보 정치인 노회찬은 7월23일 영면했다.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의 당 대표 수락 연설문은 그가 ‘말하는 정치인’임을 잘 보여준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라는 구체적인 예시로 시작해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라는 정서적 호소를 거쳐 ‘이들은 아홉 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하고 질문으로 이어지는 연설은 많은 이들을 감격하게 했다. 배워서 다 안다고 떠드는 말이 아니라 ‘경험했으나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고하는 말, 그런 말이 가슴에 담긴다는 걸 그는 어떤 정치인보다도 믿는 이였다. 지혜로운 정치인은 믿게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지난 6월, 한국여성의전화 창립 35주년 후원의 밤에서 보았던 그의 얼굴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식에 거의 매년 참석해 인사의 말을 남겼다. ‘공사가 다망한 가운데’로 시작하는 그저 그런 축사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노회찬입니다. 자신을 밝히는 말이었고, 자기가 후원 회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말이었으며, 무엇보다 여성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연대의 말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인사말을 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식이 끝날 때까지 함께 손뼉 치고 환호했다는 점이다. 그가 후원의 밤에서 보여준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마음의 흐름이 막힌 듯 보이는 얼굴이기도 했다.  웃음이 가셨을 때 한순간 그의 얼굴에서 피로가 엿보였다. 그런 그늘을 보고 나는 그에게도 잠깐 쉼이 필요하겠다, 감히 생각했었다. 그의 말대로 “동지적 마음으로” 그러했다. 그게 그에 대한 마지막 마음 씀씀이가 될 줄도 모르고….

그의 삶이 아름다웠다

부질없지만 그가 만약 죽어서도 살아나서 지금 우리의 회고를 보거나 듣는다면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손사래를 칠 것이다. 모든 죽음은 미화되는 것이라고, 우리를 회고적인 인간이 아니라 미래의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인간이도록 격려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낮추면서. 그러므로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큰 깨달음을 주는 양 떠드는 어느 치의 말은 죽은 말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돌이켜보는 중이기에. 내 친구 보라는 자신이 가장 손을 많이 잡아본 국회의원이 노회찬이라고 말했고, 국회 청소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유일하게 사람 취급한 이가 그라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를 배웅하며 사람답게 손을 잡는 법과 사람답게 손을 놓는 법을 새삼스럽게 배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호빵맨, 그곳에서도 손 내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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