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벽에 아들 대학교 졸업 사진을 걸겠다는 엄마 얘기에 기겁했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어이 실천에 옮긴 고집에 또 한 번 기겁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내 졸업 사진을 볼 때마다 매번 기겁한다. 무릇 엄마(어머니가 아니라!)란 그런 사람들이다.

〈오다기리 조의 도쿄타워〉는 누구네 엄마처럼 아들 대학 졸업장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추는 엄마의 인생역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기겁하던 아들이 뒤늦게 눈물로 회개하는 참회의 사모곡을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안에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게 만드는 힘. 차마 신파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 영화의 기운 센 저력이다.

영화는 일본 도쿄 한복판, 창백한 병실 창 밖의 도쿄 타워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가족은 뒷전,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즐기는 아버지와 이별한 뒤 홀로 아들을 키워낸 엄마. 하지만 미술을 공부하겠다며 도쿄로 상경한 아들 ‘나’(오다기리 조)는 언젠가부터 가족은 뒷전, 자유롭게 자기 인생 즐기던 아버지 인생을 닮아간다. 어영부영, 술과 담배와 여자와 마작으로 보낸 허송세월,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시작한 일러스트레이터 일로 정말 먹고살 만큼 살림살이가 나아지던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를 도쿄로 모셔 함께 살기 시작한다. 매일같이 들이닥치는 친구들에게 매번 거하게 한 상 차려주시던 자상한 어머니. 그러나 무심한 아들 몰래 홀로 아픔을 견뎌내던 엄마가 당신 몸속에 암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때부터 영화는 마음 한구석 찌릿찌릿 저려오는 짠한 결말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간다.

‘나’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 어머니…

〈오다기리 조의 도쿄타워〉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요 근래 이렇게 기막힌 제목은 본 적 없다(영화의 원제 역시 원작 소설과 같지만 한국에서는 배우의 이름값에 기대기 위해 제목을 바꿨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 ‘수시로’가 아니라 ‘때때로’ 드러나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괴짜 작가로 알려진 원작자 릴리 프랭키는 실제 자기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영화가 비록 소설의 디테일을 살리는 데는 부족함이 있을지언정 적어도 원작의 진심을 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한마디로 〈도쿄타워-감동과 눈물, 때때로 유머〉로 바꿔 불러도 좋을 영화. 행복해서 슬프고, 또 슬퍼서 행복한 그런 영화다.

서울의 남산 타워처럼 도쿄 타워도 수십년간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어머니 살아생전 함께 도쿄 타워에 오르지 못한 걸 후회하는데, 엄마라는 존재가 꼭 그런 도쿄 타워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코찔찔이 아들내미’가 어느덧 장성해 찍은 대학교 졸업 사진을 어루만질 때, 엄마가 쓰다듬은 건 실은 아들 얼굴이 아니라 그 액자 유리에 비친 당신의 주름진 얼굴인 것을. 여태껏 그 애틋한 진실을 눈치채지 못하던 이 못난 아들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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