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랩스유럽’은 프랑스에서 제일 큰 인공지능 연구소다. 모기업은 한국 인터넷 업체 네이버다. 이 연구소는 지난 7월 초 프랑스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남부 그르노블 지역에서 인공지능 학술대회 ‘PAISS 2018’을 열었다. 44개국에서 청중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인공지능 구루(guru)’로 불리는 얀 르쿤 페이스북 수석 AI(인공지능) 과학자, 카네기멜론 대학 로보틱스 연구소장인 마셜 허버트 교수, 기계 번역 부문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조경현 뉴욕 대학 교수 등 전문가 15명이 열강을 펼쳤다. 네이버랩스유럽에서는 줄리앙 페레즈(머신 리딩·machine reading) 및 디앙 라르루스(컴퓨터 비전) 연구원이 강사로 참여했다.

네이버랩스유럽은 지난해 6월 네이버가 미국 제록스의 유럽 거점 연구소인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해 설립한 인공지능 기술개발센터다.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네이버는 XRCE를 인수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연구자 80여 명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었다. 〈시사IN〉은 ‘PAISS 2018’을 조직하고 행사를 관장한 플로랑 페로닌 네이버랩스유럽 연구개발이사를 만나 인공지능 기술의 현재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조남진인공지능 학술대회 ‘PAISS 2018’을 주관한 플로랑 페로닌 네이버랩스유럽 연구개발이사는
인공지능 기술의 경쟁력은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XRCE에서 네이버랩스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변화가 있었다면?

제록스는 (주로 다른 기업과 거래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업체지만 네이버는 일반 소비자와 바로 대면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 기업이다. 네이버가 XRCE를 인수한 뒤, 우리 연구자들 역시 ‘소비자(유저) 중심의 혁신’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에서 일하게 되었다. 송창현 네이버랩스 대표의 말 그대로 ‘한 클릭 차이로 경쟁의 승부가 결정되는’ 부문인 듯하다.

네이버랩스유럽에 대해 소개해달라.

네이버랩스유럽은 규모가 꽤 큰 인공지능 연구소다. 상주 연구원과 기술자가 70~80명에 이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인공지능 연구센터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고객들이 집과 차량, 일터 등 생활 곳곳에서 활용 가능한 생활환경지능(Ambient Intelligence)으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XRCE 연구자들이 인수 파트너로 네이버를 선택한 것 역시 생활환경지능이라는 비전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 일터의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활인을 도와 재미있고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PAISS 2018을 직접 조직했으니, 인공지능에 대해 총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현 단계에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이해’는 대충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단계는 ‘지각(perception)’이다. 예컨대 누군가 ‘어린이와 개, 공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는 경우, 각각의 개체를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문자 그대로 ‘저기 어린이와 개와 공이 있구나’). 이 정도의 수준이 ‘지각’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계는 추론(reasoning)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지각으로 입수한 세 가지의 정보(‘아이가 있다’ ‘개가 있다’ ‘공이 있다’) 사이에 있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인지해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이가 공을 갖고 개와 놀고 있구나!’ 이게 바로 추론이다. 이해의 세 번째 단계에서는, 지각과 추론에 기초해서 복잡한 계획을 구조적으로 세워 실행한다(예컨대 ‘같이 놀자’고 하거나 혹은 놀이 장소가 자기 집 앞마당인 경우엔 ‘나가라’고 소리칠 수 있다).

지금의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것은 ‘지각(이해의 첫 번째 단계)’이다. 음성이나 영상을 지각하는 부문에서는 인간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다만 상당히 투명하거나(영상), 조용하고 잡음이 없는(음성) 환경이어야 한다.

네이버랩스유럽 연구원인 줄리앙 페레즈는 기계에게 텍스트(문장 및 문장의 집합인 글)를 이해시키는 ‘머신 리딩’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글을 읽고 이해하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글에 포함된 여러 정보 사이의 관계, 글이 겉으로 표명하지 않으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 등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는 뻔한 질문 외에는 답변하기 힘들다. 추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어린이와 개와 공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린이가 공을 갖고 개와 놀고 있다’는 것은 모른다).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게이머는 다양한 정보를 모아 추론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기계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인간 생활에 실질적 도움이 되려면 (2단계인 추론을 넘어) 이해의 3단계 수준에 도달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필요한 제도적 조건은? 프랑스는 어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확보다. 네이버랩스도 프랑스까지 와서 인재를 구했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테크 자이언트’들도 최고 전문가들을 고용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교육 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을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박사 과정 학생이 해당 기간의 절반까지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관련 자금을 정부에서 조달해주는 제도가 있다. 또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은 엔지니어들이 민간 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페이스북 AI 연구소장인 얀 르쿤은 뉴욕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선 대학교수가 기업 업무를 함께 맡는 데 제약이 많다. 또한 스타트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유럽연합(EU)에서는 지난 5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시행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유럽의 인공지능 발전이 지체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중국의 경우, 체제 특성상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인공지능 훈련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 수 있어서 관련 기술이 급격히 발전 중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EU의 GDPR과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2011년 제정)은 기본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한국의 기술혁신이 2011년 이후 멈춘 것이 아니라면, GDPR로 유럽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억제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GDPR은 기술자나 전문가 커뮤니티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제안되어 법제로 만들어졌다. 기술을 통제하기보다는 투명성을 높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기업 측도 그런 조건을 받아들여 혁신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 연구소의 에지 컴퓨팅 팀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클라우드에 전송할 개인정보 데이터의 종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사용자들의 요구 덕분에 혁신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과학자인 동시에 산업 연구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산업에 줄 충격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한때 산업의 중심이 석탄인 시기가 있었다. 이후 에너지가 석탄에서 전기로 바뀌면서 모든 산업에서 엄청난 변혁이 발생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운송 수단의 주류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한 어떤 업체든 원자재 구입·제조·운송 등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는데, (그 업무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발전 덕분에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기업 구조가 많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제조업은 물론이고 농업·운송·에너지·의료 등 전체 산업 부문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기자명 그르노블·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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