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는 과거 9차례 비상계엄을 설명하며, 각 계엄의 선포 기간과 선포 지역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각 사건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기무사는 1948년 제주 4·3 사건을 가리켜 ‘제주폭동’이라고 적었다. 1948년 여순 사건은 ‘여수·순천 반란’으로, 1960년 4·19 혁명은 ‘4·19 학생의거’로 적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도 기무사는 ‘부산소요사태’라고 표현했다.
합참이 만든 ‘2016 계엄실무편람’의 표기와도 다르다. 심지어 합참은 가장 최근 계엄 사례인 10·26 사건 직후 계엄을 ‘10·26 사건 및 12·12 반란’이라고 표기하며, 당시 계엄이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탈취로 이어졌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반면 기무사는 ‘10·26 사태’라고만 표기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종 발표문의 ‘샘플 문서’도 기무사의 입맛에 맞는 것들로 골라두었다. 계엄선포문 샘플은 1979년 10월27일 최규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발표한 내용을 첨부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샘플이라는 점도 있지만, 당시 최규하 총리가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을 임명했다는 것도 부각했다. 계엄사령관 담화문, 통행금지 및 언론·출판 검열을 발표하는 포고문도 1979년 육군대장 정승화의 발표문을 그대로 옮겨왔다. 계엄 과정에서 합참 대신 육군참모총장을 내세우려 했던 기무사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사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979년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은 정승화 대장은 계엄 정국에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기무사 전신)에 의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이등병으로 강등당한다. 2017년에 대입하면,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올라선 후 두 달도 못 돼 기무사령관에 의해 축출되는 셈이다.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서 12·12 군사 반란이 언급되지 않은 데에는 기무사의 이런 역사적 오점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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