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는 총 67쪽, 21개 항목에 걸쳐 계엄 프로세스와 단계별 선포문, 의회·언론·시민사회 통제 방안을 미리 짜두었다(전문은 〈시사IN〉 제568호 ‘별책부록’ 게재). 이미 정식으로 존재하는 ‘계엄 매뉴얼’과 비교해보면 기무사의 기획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국군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조직 내 계엄과를 두고, 2년에 한 번씩 ‘계엄실무편람(이하 매뉴얼)’을 제작한다.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이 만들어지기 직전인 2016년 4월, 합참은 이미 ‘2016 계엄실무편람’을 제작해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계엄이라는 카드가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절차를 통해 전개되어야 하는지 안내했다.
‘터키 쿠데타’ 벤치마킹한 기무사
기무사는 기존 매뉴얼에 짜놓은 계엄사령부 편제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합동수사본부(합수부) 편성과 계엄위원회 축소·누락이다.
합수부는 계엄 정국에서 기무사에 중요한 기구다.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합수부의 가장 꼭대기(기무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음)에 위치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계엄 정국에서 기무사는 경찰·국정원·헌병을 모두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합참이 정기적으로 만드는 기존 매뉴얼에서 합수부는 “필요 시 설치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매뉴얼대로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이 되고 따로 합수부는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경우, 계엄 정국에서 기무사는 통상적인 기능 외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무사는 계엄 정국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합수부가 꼭 필요한 것처럼 제시해두었다. 이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존재는 같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다. 기무사는 합참 매뉴얼에 없는 “국정원 2차장을 계엄사로 파견시켜 계엄사령관을 보좌토록 조치한다”라는 대목을 덧붙여 사실상 계엄 정국에서 계엄사령부와 기무사가 모든 정보·수사 기구를 통제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합참 매뉴얼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과도한 기본권 침해는 피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합참 매뉴얼의 기준대로라면, 계엄 정국에서 특정 언론사를 폐쇄하거나, 특정 인사의 SNS 계정을 없애는 일은 과잉 대응에 속한다. 합참은 SNS 등은 현실적으로 검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후 감시해야 할 대상이라고도 명시한다. 그러나 기무사는 합참과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는 보도 검열 지침을 위반하는 언론사의 등록을 취소(방송)하거나 발행을 정지(신문)시킨다고 명시되어 있다. 유언비어 등을 유포하는 인터넷 포털 및 SNS 계정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폐지하겠다는 지침도 뒤따른다.
기무사는 정보망 통제를 ‘계엄의 성공을 판가름할 조건’으로 삼는다. ‘벤치마킹’한 사례가 SNS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는 두 차례 2016년 터키 군부 쿠데타 사례가 등장한다. 9번 항목 ‘국방부 비상대책 회의’에서 기무사는 계엄 선포 전에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보안 사항이 누설될 경우, 시민에 의한 계엄군 진입 차단 등이 우려된다고 적시한다. 21번 항목 ‘보도매체 및 SNS 통제 방안’ 항목에서도 “터키 군부 쿠데타 시 계엄군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접촉 차단”이라는 내용이 달려 있다.
이 대목에서 기무사 계획은 모순에 봉착한다. 벤치마킹 대상은 애초에 ‘계엄’이 아니라 ‘실패한 쿠데타’였다. 2016년 7월15일, 세속주의파인 터키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서둘러 방송과 위성망을 장악했다. 그러나 휴가 중이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SNS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고, 지지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6시간 만에 쿠데타가 진압되었다. 당시 군부는 기무사가 언급한 것처럼 일시적으로나마 인터넷망을 차단했지만, 터키인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메시지를 문자로 교환하며 정보를 나누었다. 기무사가 터키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는 건 사실상 국가 통신망 전체를 단절시키겠다는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다. 쿠데타를 사례로 든 점도 논란거리다.
기무사가 단독으로 이 정도 계획을 수립하는 게 가능했을까.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발표할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사령관의 대국민 담화문(기무사는 이 문서에서 발표자인 계엄사령관을 육군대장으로 명시한다), 통행금지 및 언론 검열을 발표하는 포고문 등이 첨부돼 있다.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의 선포문을 기무사가 직접 작성하는 건 월권 논란이 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애초 청와대 차원에서 선포문 작성을 두고 기무사와 조율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자연스럽게 ‘윗선’이었던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도 수사 선상에 오른다. 7월23일, 국방부는 기존 특별수사단 외에도 검찰과 공조해 군·검 합동 수사기구를 구성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문건 작성 당시 핵심 당사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황 전 총리와 김 전 실장도 모두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이다.
당장 1순위 수사 대상은 기무사 내부 인사다. 7월25일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기무사 문건 작성 TF에 속했던 15명의 사무실 및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TF를 이끌었고, 최근까지 기무사 개혁 TF에 속해 있었던 소강원 참모장(문건 작성 당시 3처장),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 작성 책임자인 기우진 5처장 등이 핵심 수사 대상이다.
그러나 기무사 계엄 대비 문건까지 공개되면서, 지금까지 논의되던 수준으로는 여론과 청와대·여당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기무사 개혁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영달 전 의원도 7월12일 “새로운 상황(문건 공개, 특별수사단 수사)이 전개되기 때문에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기무사 미래 방향을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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