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에 문을 연 홍콩 완탕면의 명가 윙와(永華麵家, Wing Wah)가 폐점을 예고했다. 개업 68년 만이다. 한국과 비견될 만큼 바쁜 사회지만, 전통을 보존하는 데 소홀하지 않은 홍콩이라 윙와의 폐점 소식은 꽤 화제였다.
윙와는 내게도 각별한 집이었다. 2008년 홍콩 가이드북을 쓰기 시작한 이래 10년째 한 번도 이 집의 이름을 빠뜨린 적이 없다. 그사이 〈미슐랭 가이드(미쉐린 가이드)〉로부터 별까지 받으며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홍콩 취재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윙와의 완탕면 국물을 마신 뒤에야 비로소 여기가 홍콩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가득하면서도 제법 묵직한 맛을 내는 이 국물은 참 특별했다.
어느 해던가 문득 중국의 지역별 슈퍼마켓 매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져서 중국 내 12개 성을 돌며 취재한 적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광둥 지역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조미료 코너가 유독 작았다. 굴 소스로 세계를 재패한 ‘이금기’의 본고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이와 함께 눈에 띈 것은 광둥의 가전제품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탕기가 눈에 띄었다. 재료를 넣고 타이머를 맞추면 그 시간에 국물을 끓여내는 제품이었다. 타이머는 최대 10시간까지, 약한 불에 오래 끓이는 기능도 있는 제품이었다. 왜 이런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지 물어보니, 집집마다 각자 취향에 따라 국물 요리를 만드는 문화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광둥의 가정 요리에서 국물 요리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사실 ‘대륙의 요리’ 하면 역시 볶고 튀기는 것이다. 국물 요리는 좀 아쉽다. 중국의 탕과 탕면에서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광둥 지역 밖 란저우에서 맛본 우육면 정도가 괜찮았다.
탕면에 대한 갈증은 홍콩에서 풀렸다. 완탕면 국물의 첫인상은 경상도 지방에서 명절마다 먹는, 건어물이 가득 들어간 탕국과 비슷했다. 다만 국물은 아주 맑았다. 윙와의 특징은 상어 뼈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홍콩 사람들은 상어의 뼈가 관절 질환에 특효라고 믿는다. 이 덕에 윙와는 노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완탕면 집이었다. 영화 〈쿵푸 허슬〉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들이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모습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부드러운 완탕 날개의 나풀거림
다른 집들이 기계로 면을 뽑을 때도 이 집은 우직하게 자가 제면을 고집했다. 아침 일찍부터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기다란 대나무 장봉으로 반죽을 편 뒤, 작두로 면을 썰어냈다.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부드러운 완탕 날개의 나풀거림, 그리고 그 국물 맛이 이제 곧 사라질 예정이다.
윙와가 둥지를 틀었던 홍콩 섬의 대표적 구시가였던 완차이는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풍경이 변하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노포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다른 완탕면집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윙와는 거부했다. 동일한 맛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우직함이 좋았건만, 폐점을 앞두고 보니 분점조차 없음이 원망스럽다. 주인장은 너무도 ‘쿨’하게, 이제 늙어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짧게 폐점 소감을 말했다. 가게에는 ‘빛나게 영업을 종료한다’라는 종이를 붙여놓았다. 윙와는 올해 8월 말까지 영업한다. 그전에 홍콩에 간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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