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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 나도 안전하게 살고 싶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27일 금요일 제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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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총기도 금지돼 있고 마약도 금지돼 있고 소위 청정국인데요. 그런데도 여성들이 이렇게 많이 죽는 이유가 뭐냐. 많은 해외 연구자들도 굉장히 궁금히 여기는 점이거든요.”

7월11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말이다. 유엔 범죄통계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남성이 범죄 피해자일 확률이 여성보다 높은데 한국 사회는 남녀 비율이 동등하다.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던 ‘성평등’이 불행하게도 범죄 영역에서는 이루어진 걸까? 그렇다면 누가 여성들을 죽일까? 배우자를 포함한 친족(41.4%)과 애인(14.7%)이 범인인 경우가 56%에 달했다(<범죄통계DB>, 2016). 이 통계만 놓고 보자면 여성에게 가족은 총기나 마약보다 더 위험하고, 사랑도 목숨 걸고 한다.

ⓒ정켈 그림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여성이 매일 만나게 되는 현실은 ‘위험’ 그 자체다. 안전해야 할 공공장소가 여성들에게는 ‘피해 장소’로 둔갑할 때가 많고, 자신의 몸조차 평가와 통제를 당해 혐오와 불법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위험에 관해 많은 여성은 오래전부터 예민하게 감지해왔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하며, 공론화해왔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 “왜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어?” “나중에…” 따위 말은 여성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현실을 ‘내가’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운다고 그게 치워질까?  

지난 5월부터 서울 혜화역에서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 편파 수사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광장에서는 ‘낙태 합법화’를 위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 여성들이 말하는 주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안전. 여성인 나도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도 남성 사회를 위협하는 단어일까? 여성도 안전하게 살도록 함께 연구하며 제도를 개선하라는 시민으로서의 요구가 그렇게 무리한 것일까? 누군가는 ‘○○해’ 등의 구호를 문제 삼는다. 어떤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비판하고 논쟁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그 집회 전체를 부정하는 건, 또다시 여성의 입을 막기 위한 편협한 구실에 불과하다.


지금 가장 위험한 건 무엇일까? 폭력적인 구호가 아니라 서로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 자체다.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권김현영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휴머니스트, 2018)에서 이렇게 썼다. “고통에 대해 ‘말하기’란, 경험이 들리는 자리를 만들고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역사적 지식이 되도록 만드는 ‘정치’다. 이는 얼마나 아픈지, 그 고통이 진짜인지 등 고통 자체의 물질성이 아니라 고통이 놓여 있는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며, 이는 ‘말을 통한 앎’을 중심에 놓는 인식 및 해석 체계를 넘는 새로운 인식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여성들은 왜 거리로 나왔으며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는 ‘말을 통한 앎’ 이상의 새로운 인식론이 필요하다. “여성들은 왜 거리로 나왔으며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여성이 처한 위험한 현실 너머에 있는, 한국 사회가 함께 고민하며 변화시켜야 할 관습·체계·제도의 문제들과 만날 수 있다. 2018년 여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여성들의 말은 단지 개인의 고통을 넘어선 사회적 고통을 드러내고 있다. ‘피해자 되기’를 넘어 누구도 피해자가 되지 않는 정치를 하자고 요청하는, 가장 고통스럽고 논쟁적인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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