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색다른 여름휴가 여행지를 소개한다. 인도의 라다크, 남태평양의 사모아, 탄자니아의 초원과 잔지바르 섬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는 하다. 시간이 꽤 필요하고 비용이 제법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이 아니라도 언젠가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색다른 여행가들이 이 색다른 여행지를 소개한다. 라다크를 안내하는 여행 작가 환타(〈시사IN〉 ‘소소한 아시아’ 필자)는 여행지를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가다. ‘귀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표방한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의 진행자, 최고의 여행 입담꾼 탁재형 PD가 남태평양 사모아의 수평선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디스이즈아프리카’를 운영하는 젊은 여행가 박다애씨는 우리를 킬리만자로로 안내한다. 

“아프리카에는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연인이자 서쪽으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 베릴 마크햄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54개 국가, 남한보다 300배 넓은 면적, 다양한 기후와 다채로운 식생은 아프리카를 경이롭고 독보적인 여행지로 만들어낸다. 빛나는 만년설 킬리만자로,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 삶과 죽음의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 초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협곡인 피시리버 캐니언, 코끼리 23만 마리가 사는 초베 강, 칼라하리 사막의 보석인 삼각주 오카방고델타, 그리고 지상낙원 세이셸과 모리셔스 등 아프리카에는 지루함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있다.

만약 아프리카 54개국을 각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면, 가장 먼저 케냐와 탄자니아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꿈꾸고 상상하던 아프리카를 맛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에서 수십만 마리의 생명이 내뿜는 에너지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당한다. 유럽 여행자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입문자 코스로, 인기 있고 감동이 보장된 곳이 바로 케냐와 탄자니아다. 

ⓒ디스이즈아프리카 제공
아프리카 케냐에 위치한 ‘기린 장원 호텔’. 동물 애호가 부부가 멸종 위기에 처한 기린을 보호하기 위해 저택을 야생동물 체험 호텔로 개조했다.

카렌 블릭센의 소설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케냐다. 이 제목은 라틴어 경구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인 케냐 마사이마라의 초원과 구릉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면 숨을 멈춘 듯 고요하다. 그러나 사파리 차량을 타고 대지를 달리다 보면 우르르 땅을 헤집어놓는 몽구스 무리의 분주함을 만나게 된다. 나무 위에 늘어진 레오파드의 까딱거리는 꼬리, 긴 회초리와 마른 발바닥을 타닥거리며 소떼를 모는 붉은 마사이인들, 갓 태어나 절뚝이는 와일드비스트 새끼를 보며 생동하는 아프리카의 가쁜 숨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샴페인이 제공되는 열기구를 타고, 초원을 빼곡히 메운 수만 마리 누 떼와 얼룩말들 사이를 자유로이 비행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물을 찾아 캠핑장으로 놀러온 집채만 한 코끼리가 옹달샘 동요에 나오는 토끼처럼 물만 먹고 사라지는 장면은 아프리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동화이다.

ⓒ디스이즈아프리카 제공
아프리카 최고봉인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로 향하는 길. 정상 등반에는 보통 5박6일이 걸린다.

케냐를 가면 이웃 나라 탄자니아도 가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빛나는 흰 산’이라는 뜻의 킬리만자로가 있기 때문이다. 높이 5895m로 정상부인 우후루피크에 만년설이 쌓여 있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이다. 정상 등반에는 보통 5박6일이 걸리지만, 힘 들이지 않고 킬리만자로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1박2일도 충분하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며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은 ‘뽈레뽈레’일 것이다. 언뜻 ‘빨리빨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로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다. 걸음이 아무리 느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 지기 일보 직전인데 산장까지 거리가 한참 남았을지라도 킬리만자로의 길잡이들은 다정하고 유쾌하게 ‘하쿠나마타타(걱정 없어) 뽈레뽈레’라고 말할 것이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운무 가득한 킬리만자로를 그들의 흥겨운 콧노래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산장에 도착한다. 킬리만자로의 밤은 더욱 특별하다. 인공적인 불빛이라고는 없는 이곳의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하다. 코끝 아린 찬바람과 피로가 녹는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떠오르고 지는 수만 개의 별은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마크 트웨인은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하고 난 뒤 천국을 만들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모리셔스를 만들 그 즈음에 세이셸도 만들고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도 만들었던 게 분명하다. 인도양을 나눠 쓰고 있는 이 세 섬은 가히 지상낙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모리셔스와 세이셸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신혼여행자들 사이에서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면, 답은 잔지바르다. 

잔지바르는 끝없이 펼쳐진 하얗고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빛 투명한 바다로 인도양의 흑진주라 불린다. 세이셸이나 모리셔스의 3분의 1정도밖에 안 되는 저렴한 여행 경비도 매력적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동쪽 해변은 윈드서핑, 카이트 같은 해양 스포츠 성지로 온 해변이 건강한 구릿빛 젊음으로 반짝이고, 북쪽 해변은 아름다운 리조트가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다.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수프에 빗대면 이슬람 2스푼, 인도 1스푼, 유럽 반 스푼을 넣고 잘 섞어 만들어놓은 곳이 잔지바르다. 4개 종교가 작은 섬 안에 공존하지만 분쟁이 없고, 사람과 나귀와 돌고래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이곳은 자유로운 보헤미안들의 성지이다. 

흔히 아프리카를 ‘여행의 끝판왕’이라 부른다. 드넓은 세상을 돌며 쌓은 온갖 경험의 끝에서 아프리카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마지막 페이지에 꼭 담겼을 아프리카는 애석하게도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지붕이자 빛나는 흰 눈으로 대륙을 어루만지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정상에 20m 넘게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85%가 녹아 사라져버렸다. 평균 수천 년을 살아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바오바브나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최근 연이어 죽어가고 있다. 올해 4월 케냐 올 페제타 보호구역에서 마지막 수컷이 죽고 난 뒤 세계에 단 두 마리 남은 암컷 북부흰코뿔소는 더 이상 번식이 불가능하여 이대로 멸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푸르른 초원과 흙먼지 가득 날리던 아프리카에는 반듯한 철도, 깨끗한 도로와 지하철이 생겨나고, 물밀듯 밀려들어 온 자본들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여 물가 또한 급격히 오르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아침을 알기 전까지는 아침에 눈뜨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서른네 살에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했다. 비행 중 아프리카의 사막에 불시착한 서른다섯 살의 생텍쥐페리는 우거진 바오바브나무와 별이 쏟아지는 사막을 보고 〈어린 왕자〉를 그려냈으며, 앙드레 지드는 스물넷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스스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신의 활력이 고갈되고 마음이 앙상해짐을 느낄 때, 또는 반복되는 삶 속에 반짝이는 영감이 필요한 순간에 아프리카는 그 답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아프리카가 마지막이 아닌, ‘바로 지금’ 이어야 하는 이유다.  

자세히 보기 〉〉 https://travel.sisain.co.kr/2019africa.html
기자명 박다애 (디스이즈아프리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