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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었기에 하루가 꽤 괜찮아졌다

올해도 여름을 앞두고 많은 소설이 출간되었다. 문예지 편집진이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한국 소설 여섯 권을 소개한다. 여름은 소설이다.

서효인 (시인·<릿터> 편집장)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7월 18일 수요일 제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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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파이팅.’ 필자 중 한 명이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다행히 여름은 문학과 친한 계절이다. 극단적인 날씨, 몰입하기 좋은 소설이 특히 그렇다. 올해도 여름을 앞두고 많은 소설이 출간되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한국 소설 여섯 권을 소개한다. 문예지를 만드는 작가·평론가·시각문화연구자가 각각 삶을 버티게 하는 소설, 나 자신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소설, 끔찍함을 보여주는 소설을 추천해왔다.


ⓒ윤성희


아침부터 종일 일이 너무나 많았다. 도서전 준비에 동원되어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어떤 저자로부터 꽤 날카로운 메일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인데, 앉을 자리가 없는 경의선 전철에서 나는 의외로 쉽게 무너졌던 것 같다. 어두운 차창에 비치는 내 얼굴이 유난히 바스락거려서 문지르면 모든 표정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어쩌면 내일까지도, 끝을 알 수 없는 어떤 시간까지 다 폐기될 것만 같았다. 애써 가슴팍 쪽으로 멘 백팩에는 다행히 <경애의 마음>이 있었다. 작가인 김금희는 물론이고 표지로 쓰인 안소현의 그림을 좋아한다. 괜히 표지를 쓰다듬으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읽고 싶은 요량에 자리가 나기만 간절히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서 중력에 조금 덜 저항하는 자세가 되고서야 경애와 상수를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인천으로 가는 1호선 열차는 아니었지만, 홍대입구역 지나는 경의선에서 인천에 갔던 어린 경애와 상수가 되어본다. 상수를 따라서 ‘나에게 무심했던 것’과 ‘내가 열정적이었던 것’을 기억해본다. 경애를 따라 ‘내가 잊지 못하는 것’과 ‘결국 떼어내야 하는 것들’을 헤아려본다. 전철을 가득 메운 북부 경기인 거개가 그러하겠지만, 경애와 상수도 지쳐 있긴 하나 무너지지 않는다. 문득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주임이니 과장이니, 그게 아니라면 그냥 선생이니 할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버티고 있었다. 애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용기를 내는 마음, 그 마음들을 헤아리는 마음들을 연료 삼아 버티는 것이었다. 그 마음들을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꽤 괜찮아졌다. 짧은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마음을 다해 썼다”라고 했는데, 그 마음이 감사해서 마음으로부터 울음이 나왔다. 경애가 말을 걸어준다면,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소설은 이미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고, 나는 이 마음을 긴히 간직하는 것으로 하루를 또 잘 지낼 수 있겠다 싶다. <경애의 마음>은 그런 마음을 주는 소설이다. 버티는 마음, 잘 지낼 수 있는 마음.


집에 도착하니 깊은 밤이었는데, 아이들은 아직 말똥히 깨어 있었다. 아내는 낮잠 타이밍이 좀 어긋났다 싶더니 여태 이러고 있다고, 설명인지 변명인지 모를 투로 말했다. 내게 어떤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오늘 하루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바깥의 내가 아닌 집 안의 당신이었을 텐데, 내가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아내는 그 외의 많은 것을 감당한다.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 것인지 감히 묻지 못한다. 그저 괜찮겠지 넘겨짚으며 나 좋을 대로 행동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이 모종의 본능으로 인해 아빠가 아닌 엄마만을 찾을 때, 아들은 일하느라 바쁠 테니 안부 전화는 어련히 며느리가 할 것이라 여기는 부모를 대할 때,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 때 거실이 깨끗하면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다소 언짢아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렇다.


구병모의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은 이런 심리를 식탁 위로 가져와 포크와 나이프로 죄다 찢어발겨 놓는다. 나는 그 앞에서 내 살이 그런 듯 아프고 부끄러웠다. 아내는 이른바 독박 육아 중인데, 육아도 육아지만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이러저러하게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를 꽤 불편해했다. 그러나 그저 엄마이기 때문에 남 보기에 적절하고 아이 키우기에 적당한 위치로 스스로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네 이웃의 식탁>에는 보다 본격적인 제한이 있다. 다출산을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는 공동주택. 사실상 고립된 곳에서 외관상 긴밀해질 수밖에 없는 이웃과의 관계.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이룰 수 없는 취지를 바탕으로 시작된 공동육아…. 사각형의 식탁처럼 딱 들어맞는 제한 안에서 더욱 쪼그라드는 자는 역시 엄마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경력은 끊기기 쉽고, 육체적 노동은 물론이고 감정 노동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지금도 버티고 있을 것이다. 내 곁에 가장 가까운 나의 아내도 버티고 있다.


<네 이웃의 식탁>을 읽고 나면 그 마음의 불편함을 확연한 모양새로 마주할 수 있다. 대충 넘어갔던 순간의 마음을 그나마 짐작할 수 있다. 조금은 까끌까끌할 것이다. 다소 예민해질 것이다. 마음이란 게 원래부터 둥글둥글한 건 아니니까. 엄마의 마음도 마찬가지니까.

아이들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까무룩 잠들었다. 아내도 함께 잠든 듯하다. 나는 아직 뒤척이는 큰아이 가슴께를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책의 뒷면을 다시 쓰다듬는다. 어떤 소설은 우리를 버티게 한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경애의 마음>과 <네 이웃의 식탁>을 읽었기에 올여름은 잘 버티며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다하여 김금희·구병모 두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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